잘 사는거, 저절로 되는거 아니더라.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독립된 성인으로서 살아가려면 자기 입에 떠 넣을 밥숟갈 정도는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그뿐인가, 가족이 생기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책임도 생긴다. 집에 돈을 쌓아두었다고 해도 그 돈이 있으니 ‘먹고 사는 것쯤이야’ 하는 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고, 나와 생을 함께 하는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먹고사는 일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었다. 아무리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지만, 밥을 먹자고 영혼까지 팔아치울 수는 없지 않은가. 일을 해서 땀을 흘려 밥 먹고 사는 게 당연한 도리지만, 잠깐 굶더라도 이렇게는 못살겠다 싶어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꿈’을 좇는다느니 예술을 하겠다느니 그런 거창한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다만 미적지근한 물에 몸을 오래 담그고 있자니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미치지 않는 나에게 적응해 버릴 것 같아서 그게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발전 없는 업무, 사람이 힘들었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의 부서는 크게 세 개, 밑으로는 세분화된 팀이 있었다. 팀 내 업무는 조금 과장하면 석 달이면 모두 익힐 수 있는 반복적인 일뿐이었다. 실제로 세 부서 모두에서 근무했었는데, 일을 꽉 짜내면 석 달 남짓한 시간에 모두 익힐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반복되는 일뿐이었다. 반복되는 일을 발전시키고자 애쓴 적도 있지만 혼자 팔을 휘저어 봐야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에게 변화는 불편한 것이었고, 그냥 하던 대로, 문제만 없으면 된다는 안일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업무를 잘 모르는 새로 온 여상사는 “문제없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물었다. 일은 내가 했고, 보고 내용을 들어도 잘 모르겠으니 문제없냐는 질문으로 퉁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몇 년이 흘러도 발전이 없었다. 10년 만에 원래 몸 담았던 부서로 발령받아온 또 다른 상사는, 늘 “예전이랑 똑같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바뀐 것들이 있으면 버릇처럼 ‘라떼는’ 으로 시작하는 말을 해댔다. 회사는 평균 근속연수가 길다는 점을 늘 자랑했으나 그 덕택에 물은 점점 고여 갔다. 70명 남짓 되는 회사의 직급별 인원 구조는 역피라미드 모양이었다. 20년 차 상사들은 가장 수가 많았지만, 가장 적게 기여했다. 예전에 많이 했으니 이제는 늦게 들어온 너네가 좀 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업무가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거의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3년 차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무리가 전부 관리자 역할만 자처한다는 점이 납득이 안 됐다. 번거로운 일은 모두 아랫사람의 몫이었고, 업무상 개선점을 이야기해도 20년 차 동기들이 회사의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었다. ‘실제 업무에 개선이 있는가’가 중요한 척도가 아니라 ‘관련자들, 다시 말해 그 동기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가’가 중요했다.
그 와중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유부남들은 매일 회식을 핑계로 저녁마다 있는 자리 없는 자리를 만들어 냈다. 부서 내 회식도 대화라곤 없고, 그저 고주망태가 되도록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일뿐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진솔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려나 생각했지만 한 두 번만에 모든 기대를 버리게 되었고, 새벽 내내 술을 마시고 다음날 출근해서 내게 일을 미루는 것을 보고는 조금 남아있던 희망마저 거두게 되었다.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래처와의 만남에도 회사의 이익이나 상품 경쟁력을 주제로 한 대화가 아닌 술과 여자 접대가 늘 따라다녔다. 유별나게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신생아를 키우는 아버지였다. 거래처 입장에서야 이런 식으로 몇 번 접대하고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 거래처에서 고마워서 접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에 더 이익을 남겨도 자기에게 떨어지는 것은 없으니, 이익이나 조금 나눠주고 밥도 얻어먹으면 좋으니까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하려고 했다면 그런 자리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내가 먹은 음식과 술이 전부 거래 영수증 상에 청구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을 텐데 말이다. 늘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경쟁사에게 밀리는 것도 브랜드 파워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고, 내가 가진 권한이 적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이었다. 사주는 술을 거절하기에는 미안하다면서, 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에겐 아무렴 회사의 이익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나니 지쳤다. 하루 걸러 회식이랍시고 저녁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싫었고, 너절한 인간관계에 나를 맞추는 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들에겐 세상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꾹 참고 받아들여보려 했지만, 이렇게 밥 벌어먹고 살아야 된다면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한 번은 업무 관련 자격증을 응시한 적이 있다. 나는 경험이 부족하니 공부라도 해서 간극을 빨리 메우고 싶었는데, 네가 자격증을 아무리 따도 내가 경험이 많다.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다는 말을 따기 전부터 어찌나 하는지, “그럴 거면 자격증을 따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개중에는 매년 1회 있는 시험에 몇 년째 응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매년 회사의 지원금은 꼬박 받아갔다. 최초 응시자에게만 교통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험도 없는 내가 한 번에 시험에 붙기는 어려우니 적당히 하라고 했다. 나는 한 번에 합격했다. 내 돈 써가며, 퇴근 후에 시간 써가며 자격증을 갖췄다. 대단한 인정까지 바란 것도 아니지만, 은근히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싫었고 비용처리를 해야 한다며 예산 어쩌고 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뭘 해도 좀 뜨거운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서 지금 물이 끓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여기가 좋소’라며 눌러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처리하면 되는 매일의 업무,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현상유지가 제일의 미덕인 분위기, 문제가 생기면 해결보다는 책임전가하는 분위기 속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때 되면 칼같이 퇴근하고, 때가 안돼도 일찍 퇴근했다. 늘 골프 치고 술 먹은 얘기만 들었다. 제일 적게 기여하고 제일 많은 권리를 누렸다. 내가 회사를 떠나온 지 두 달이 채 안되었지만 그 두 달 상간에 나를 포함 4명이 나왔다.
같이 좀 타오르고 싶었다. 돈이 좀 적고 일이 고되면 어떤가. 비를 좀 맞으면 어떤가. 그런 건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같이 비를 맞을 사람은 없고 우산 쟁탈에 여념이 없는 사람만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같은 부서 내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있어도 자기 알바가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아서 영상시청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만 처리하는 업무도 없으면서 결국 일은 다 떠넘기고 하루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곤 출근하는 일뿐인 인생이었다. 월급은 좀 더 받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이미 죽은 인생이었다. 도무지 재미가 없어서 나왔다. 여기보다 조건이 좀 못한 데 가서 박박 기더라도 이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잃을 것은 몇 푼 안 되는 월급뿐이었지만, 얻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무한했다. 까짓 거 돈 몇 푼이 대수가 아니었다. 뭘 하든 벌 수 있었고, 그리고 좀 더 일하고 싶었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이고, 별다를 것 없는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누군가는 바라던 직장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직장인에게 활력이라든가, 열정이라든가 하는 말은 사치일 뿐인 것 아닌가. 열심히 공부했고, 능력껏 학위를 받아서 그에 걸맞은 기업에 입사해 어떻든 견디며 살아가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아닌가. 위의 이유를 모두 말하지 못했지만 ‘좀 더 일하고 싶다.’ 거나 ‘내 일을 하고 싶다.’며 얘기하며 퇴사의사를 밝혔다. 밖은 지옥이라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를 훔쳐와 협박인지 회유인지 모를 말들을 했다. 부서를 옮겨 주겠다. 아니면 휴가를 주겠다.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나는 정말 내 일을 찾고 싶었고, 불타오르고 싶었다.
내 일, 내일 찾기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금으로서는 글로 밥 먹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글이라곤 써본 적 없다가 갑자기 글로 밥을 먹기는 좀 어렵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있다. 그래도 글을 계속 쓸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는 글로 밥을 먹는 날도 올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오늘로 회사를 그만둔 지 두 달이 되었다. 휴가기간까지 고려하면 석 달이 조금 못 된다. 먹고살려면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팔아먹을 글을 써놓은 것도 아니고, 팔릴 글을 쓸 재주도 없으니 일단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겠지. 일해서 먹고살면서 글도 열심히 쓰자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 쓰다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겠지. 그 안쪽을 실컷 탐험하고 돌아와서 글을 쓰고 싶다. 멀리까지 다녀오고 싶다.
일을 해야 하긴 하지만, 결국에 일을 하면서 글을 쓰게 되겠지만 마음의 양팔저울에 일과 글을 올려놓고 무게를 재어야 한다. 어느 쪽을 좀 더 무겁게 둘 것인가. 실은 글을 써보고 싶다. 글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 글이 확연히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좀 글에 기울여 둔 채로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앞으로 흘러가게 될지. 언젠가 내 글을 앞에 놓고, 모든 걸 바쳐 써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써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