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진지충은 이런 고민을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진지충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by 정필

나는 ‘진지충’이었다. 왜? 진짜? 이런 질문을 달고 살았다. 대학교 2학년때도 인간 실존에 대해서 한참 고민했다. 인간은 왜 태어나는 걸까. 왜 죽는 걸까. 나는 누구지 같은 질문들. 가까운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공감대 형성이 잘 안 됐다. “얘는 진지충 중에서도 중증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덜 진지해지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그런 문구도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게 심각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고민은 많았지만 매번 답을 구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진지충의 길을 포기하고 주어진 것 열심히 하면서, 딴생각 안 하고 살았다.


인생은 이미 주어져 있었다. 복잡한 고민은 잊고 학생으로서 공부하다 보면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하고 그렇게 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전공 선택을 중요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적었고 다들 대세를 따라 금방 결정했다. 더군다나 나처럼 답도 없어 보이는 문제를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했다. 기업 공채를 보고 수십 개 기업에 각각 맞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다행히 불러주는 데가 있어서 그중에 괜찮은 곳으로 취업했다. 계속 뭐가 주어지긴 했다. 직장도 주어졌고, 직책도 주어지고, 업무도 생겼다. 10년간 연애한 여자 친구와 결혼도 했다. 다 좋았다. 보기에는 완벽했다. 근데 아주 가끔, 아득한 소리로 마음속에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마치 마음 안쪽에 철로 만든 두껍고 기다란 문이 있어서 보통 때는 안쪽의 소리가 잘 안 들리지만 아주 가끔 안에서 큰소리가 나면 미세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회사는 이상적인 곳일 수 없으니까, 그리고 사직서 하나쯤은 누구나 품에 가지고 다니니까. 그러려니 하고 다녔다. 그런데도 답답했다. 평생 착실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대로 이렇게 그냥 살면 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도 했고, 바라던 취업도 했다. 아마 큰돈은 못 만지더라도 먹고 사는데야 별 문제없을 것이다. 결혼도 했으니 이대로 살면 되는 걸까.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이렇게 쭉 사는 것도 괜찮아야 하는데, 어쩌자고 자꾸 마음속에 답답함 같은 게 느껴졌다.


생각이 이쯤까지 왔을 때, 지난날을 떠올려 보았다. 파릇파릇한 새내기 시절에 품었던 ‘나는 누구지’, 전공 선택을 할 때 ‘나는 어떤 일에 흥미가 있고 잘하지’, 직장을 고를 때, ‘이 일이 내게 의미와 보람을 주는지’ 같이 대답하지 않은 질문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덮어두고 넘어가면 마음 안에 갇힌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함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이 까닭 없는 답답함, 공허함이 뭔지 찾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 안쪽에 갇힌 목소리를 꺼내 듣기 위해서.




내가 대답했어야 하는 것은 내가 정의한 ‘좋은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마라톤처럼 살고 있었다. 정해진 트랙을 다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그중에서 선두를 차지하려고 했다. 실제로는 그 트랙이 내가 달려야 할 트랙이 아닌데, 거기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트랙 위에 있으니까, 트랙 밖으로 모험을 하기보다는 트랙 안에서 열심히 달리고 경쟁하면 선두 자리 하나쯤은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무리 속에 숨었고, 내 삶도 대세를 따라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비겁했다. 나는 없었고, 표준의 삶이라고 하는 허구의 기준만 남았다. 설령 이후에 다시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더라도, 나는 나 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삶을 정의해야 했다. 누군가가 옳다고 하는 길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자 하는 길을 살아야 했다.


잠시 트랙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길로 다닐지,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는지, 내 인생 앞에 서야 했다. 무작정 뛰는 건 그만둬야 했다. 대부분 퇴사를 반대했다. 직장 다니면서 고민해 보라고 했다. 아마 다니면서 고민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다행히 나를 가장 잘 아는 두 여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멈춰본 적이 없다. 쫓아오는 건 없는데, 쫓긴다고 생각했다. 맹수가 쫓아오는데 길 옆에 핀 꽃이 보이겠는가. 쫓기듯 살며 인생을 지나쳐 왔구나 싶었다. 아무도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는 멈추고 나서야 알았다. 잠시 시간을 갖고 내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쩌다가 이렇게 멋진 인생이 내게 왔는지 모르지만 뭘 위해서 살지 고민도 한다. 몇 마디 말로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남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과 달라도 된다. 어쩌면 남과 달라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 나만의 길을 정의하고 그 길을 가야 한다. 타인이 정의한 길에서는 나의 인생을 발견할 수 없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중이나 무리가 되려고 하기보다 나다움을 찾아 사는 것이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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