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녔어
세 번째 부서는 영업지원 부서였다. 손님을 만날 일이 없었다. 개인 손님이든, 거들먹거리는 거래처 사장이든, 손님을 만날 일이 없었다. 상품의 입고 와 판매 후 과정을 책임지는 부서에 몸담게 되었다.
이런저런 술자리를 전전하다가 저녁에 혼자 있는 방에 들어왔을 때 그 적막이 싫었다. 텅 빈 내 방 화장실에서 거울을 볼 때면 바다 건너까지 와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몇 잔 마시고 나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면서, 아무도 없는 컴컴한 방 한구석에서 깊은 외로움과 마주했다. 열심히 일하고 싶었는데, 그뿐이었는데 일은 너무 알맹이가 없고, 일 외적인 것들에 점점 지쳤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새로 옮겨온 부서는 관공서 직원들이나 물류의 이동과 관련하여 협력업체와의 만남이 많았으므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일이 전혀 없었다. 전화통화를 하고, 가끔 커피를 나눠 마시는 정도였고, 그보다 더 가끔 회의를 위해 만남을 갖는 정도였다. 새로 맡은 일도 재미있었다. 영업활동과 관련하여 법과 관련된 사항을 검토하고 지침이 바뀌는 게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많았다. 코로나로 인하여 바뀐 업무도 많았으므로 나 스스로 책임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아무 권한도 책임도 없었고 지루한 술자리만 따라다녔던 지난 부서와는 많이 달랐다.
10년 차, 20년 차 상사와 팀원들과 함께 일했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기에 업무 관련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하고, 팀에 더 기여하고 싶었다. 영업활동을 하는 데에 자격을 가진 사람의 책임도 필요했으므로 의욕적으로 공부했다.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서 공부하고, 다른 부서의 업무까지도 의욕적으로 많이 배웠다. 1년여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자격증을 따고, 업무도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열심히 하는 덕에 다들 나를 좋아해 주었고, 신뢰받는다는 느낌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팀원들의 업무까지 내가 맡게 되었다. 팀원 중 10년 차, 20년 차 직원들은 내게 업무를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하나씩 하나씩 업무를 넘겨주었고, 나중에는 그 일이 자연스럽게 내 일이 되었다. 나만이 하는 업무는 있었지만, 다른 팀원만이 하는 독자적인 업무는 없었다. 내가 하루종일 서류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어도, 사무실 구석에서 이어폰을 꽂고 영상 시청을 하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곤 했다. 나의 점심시간은 30분이었지만, 그들은 편하게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11시에 나가서 1시에 오는 일도 허다했고, 팀장이 오면 적당히 둘러대 주는 게 내 일이 되어버렸다. 퇴근 시간이 덜 되었음에도 골프 약속이 있어 먼저 나가는 사람도 있고, 몸이 좀 안 좋으니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병원 대기실에 앉아 두 시간이 넘게 대기하다가 사람이 많아서 진료도 못 받고 왔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용할 때는 사무실 구석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차에 다녀온다며 30분씩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흡연하러 간 사람이 오전 내내 밖에 앉아있기도 했다.
여러 업무를 하다 보니, 나를 찾는 사람은 많아졌다. 근무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휴일에도 자주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열심히 하고 자격도 따고, 능력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짐을 혼자 지려니 재미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자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싫었다. 업무량이 많으면 나눠져야 하고, 연차가 오래될수록 업무 종류도 달라지고 책임도 달라져야 하는데 모두가 같았다. 4년 차인 내가 하는 일과, 10년 차 직원의 일이 같았고, 20년 차 부서장의 일이 같았다. 그러니 누구라도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각자 영역이랄 게 없었다. ‘나는 그동안 많이 했으니 너네가 해라.’라는 식으로 업무는 점점 내게 쏠렸고, 일이 어렵고 힘들었다기보다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 일들 속에 쌓여서, 점점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자격증은 사내에서 몇 년간 한 번에 취득한 사람이 없었음에도 은근한 투로 무시받았다. 부서를 옮기면서 한동안 견딜만했는데 부서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5년 뒤, 10년 뒤, 15년 뒤에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부서장은 늘 ‘문제없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처리했냐’는 물음만 되풀이했다. 문제없이 처리만 되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었으리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돌아온 부서장의 대답은 회사 사정도 어려운데 출장비는 알아서 아껴야 되지 않겠냐 하는 것이었다. 부서장의 생각이 그러니, 아무리 열린 취지로 교육을 기획했다 하더라도 결재를 받을 수가 없었다. 부서장은 일을 안 하고 많은 보상을 받는 게 미안했던지, 이따금 회식이랍시고 밥을 사주었는데, 시간을 써야 되는 것도 싫었고, 이미 마음이 떠나고 있는데 하하 호호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10년 차 직원은 투잡을 시작했다며 자기 근무 일정상의 편의를 봐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서 희생해야 하는가 싶었다. 무서웠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나를 잃어 가게 될 것만 같았다. 내가 꿈꾸었던 ‘취직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그렇게 한 줄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그저 그런 직장인의 삶을 평생을 살고 나면, 나중에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삶을 돌아볼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적당한 대기업에 속해 남들 사는 것처럼 밥벌이하고 살았으니 참 좋았다고 회상하게 될까?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그때가 되어서 아무리 후회를 숨겨 본들, 후회할 수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런 게 아니었다. 모범생이면 좋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꾸 나를 여러 틀에 맞추다가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어떻게 살 것인지 내게 물어야 했다. 겁내야 할 것은 당장 잃을 수도 있는 급여 몇 푼이 아니라, 인생을 통째로 잃는 것이었다. 미지근한 물에 담긴 개구리는 물이 끓어도 한참을 알아채지 못한다. 물이 끓으면 그때는 이미 늦는 것이다. 몇 푼 안 되는 급여가 주는 안정성과, 허물어진 종신고용제가 상징하는 회사의 허름한 울타리 안에 언제까지 머물 수는 없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모험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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