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나온 지 삼 개월이 되었다.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는 학교에 가야 했다. 일과를 모두 보내고 집에 오면 늦은 밤이었다. 학교에서 열심히 본분을 다 하려고 노력한 대가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도 해야 하는 것들을 열심히 했다. 대학을 떠나서도 어디론가 소속되기 위해서 애를 썼다. 회사에 소속되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 생각해 보면 늘 어딘가 주어진 틀 속에 들어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퇴사 이후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생경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기도 했다.
처음에는 당황도 많이 했다. 일단 호기롭게 회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경제적인 효율성을 생각해 왔던 터라 틀을 깨기가 힘들었다. 항상 ‘결과’가 보이는 일을 해야 했고,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더군다나 글쓰기처럼 품은 많이 들지만 당장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때로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기 돈이 됩니까?’라는 질문과 매번 씨름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와 대화하려고 애썼다. 왜 불안하다고 느끼는지,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려면 오늘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다. 글을 쓰고 싶기는 하지만 무슨 글을 쓸지 몰라 당황했고,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회사까지 나와 방에 박혀 있는가 하는 생각과도 싸웠다. 거의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인생이 아닌가. 시작부터 100% 확신을 가져다주지 못하더라도, 글을 써 가면서 내가 선택한 인생에 점점 확신을 가져가고 싶었다. 직장이 주는 안전망은 없지만, 나는 흔들리면서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한편으로는 큰 바다에 나온 돛단배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게 좋았다.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만의 답을 찾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별 것 아닌 글이지만 읽어주는 분이 생기고 함께 글을 쓰는 분들도 한 둘 씩 늘어났다.
글을 썼고, 나머지 시간에는 읽었다. 쓰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타인의 인생에도 애정을 갖게 되었고 모두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것에서 많은 위로도 받았다. 석 달간 100편 이상의 글을 썼고, 육필로 나눈 나와의 대화도 노트 한 권을 모두 채워가고 있다. 어림잡아 책도 100권 가까이는 읽은 것 같다.
나를 찾아온 갈증을 똑같이 만나고 자신을 찾아 떠난 분들과도 몇 분 만나게 되었다. 셋째가 태어나던 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현재는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 40대 중반에 문득 직장생활에 갈증을 느끼고 ‘나도 관중석에서 박수만 치지 말고 무대로 한번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 ‘나다움’을 찾고 타인의 나다움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에 인생을 걸고 계신 교수이자 기업 엑셀러레이터 등 각자의 삶의 씨앗을 찾아 싹 틔우고자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직장인으로 살고 주어진 인생을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때는 내 주변에 다 나와 같은 사람들뿐이었다. 트랙을 열심히 달려서 그런지, 내 주위에는 트랙을 달리는 사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트랙을 나와 보니 저마다의 길을 가는 사람을 몇몇 만날 수 있었다. 각자 길은 달랐지만, 그 길로 들어서는 초입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길은 자신만의 색깔로 반짝거렸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비록 지금 시작은 흔들리고 불안하나, 나는 선택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다시 초보자로 돌아왔다. 얼마나 대단한 글을 지어서 글로 밥을 지어먹고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글 쓰는 내가 좋다. 설령 뜻대로 안 되더라도 평생 글을 쓰며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내가 참 좋을 것 같다. 솔직히 가끔 불안하기도 하다. 여럿이 함께 뛰던 큰 트랙이 아니라 이 길은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이 길 위에서 행복하다. 걱정될 때면 ‘혹시 직장에 남아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여전히 그 생활을 반복했다면 좋았을까? 백 번을 물어도 대답은 ‘No’다. 도를 넘어 불안해하는 건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직장이 주는 안정감도 갖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해진 길을 가면 트랙을 이탈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어진 것에 의무를 다 하면 된다. 그러나 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길을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확신을 품고 점차 확신을 더 키워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인내도 필요하다. 주어진 삶을 사는 것보다 어렵고 위험부담이 있는 길이다. 그러나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며 인생 최고의 실패는 나만의 인생을 찾아 살아 내지 못한 것이다. 좀 덜 먹고, 좀 더 고생해도 괜찮다. 밤낮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인생, 더 나은 글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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