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irth), D(Death)사이 C(Choice)

산다는 건

by 정필

‘이게 맞나’라는 작은 회의가 던진 돌멩이가 마음에 파동을 몰고 왔다. 지난날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았다. 입으로는 인생이 소중하고 한 번 뿐이라는 둥,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며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선물처럼 삶이 주어져 있었지만 어떻게 내가 지금 시대에, 이곳에 태어나 살아가는지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먹고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회에서 직장을 갖고, 자기의 역할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을 곱씹어 보았다. 삶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나의 태어남에 내가 영향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태어나는 일시, 시대, 성별, 능력 그 어떤 것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졌다. 심지어 내게 생명을 전달해 준 부모님도 나라는 존재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은 이렇듯 신비롭게 주어져 있다. 삶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선택할 수 없다. 삶의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채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너무 아깝다. 삶과 죽음의 때를 선택할 수 없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이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모든 인간은 이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은 쉽게 답을 내어 주지 않는다. 평생을 안고 살다 보면, 질문을 품은 내가 곧 인생을 통해 답에 근접해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야 한다. 고민해야 할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매번 정해진 급여로 어디에 투자할지,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차를 구매할지 고민하기 이전에, 더 가지기 이전에 나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그 길을 가야 한다. 인생은 고유한 것이다. 단 하나도 같은 모양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무리에 숨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야 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걸고 해내고 싶은 일을 가져야 한다.


현대 사회는 빠른 정답을 요구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요구한다. 이 풍조를 한 마디로 정리한 말이 ‘그거 돈 됩니까?’라는 물음일 것이다.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이 돈 버는 일에는 전문가지만 물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잘 묻지 않는다. 당장 드러나는 결과도 없고, 돈도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이 쫓기듯 인생을 살아 치운다. 그러나 인생은 쫓고 쫓기는 경주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도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 진즉 물었어야 했다. 품이 많이 들고, 티도 안나는 일일지 모르나 죽음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는 잘 살기란 불가능하다. 돈으로 대표되는 소유, 다른 말로 ‘먹고 산다’고 하는 일들을 너무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것 같다.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눈 바로 앞에 뭘 갖다 대면 멀리 볼 수 없다. 한 발짝 떨어져서, 먼저 보아야 할 긴요한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쉽게 답이 나오는 일보다도, 답이 없는 질문을 가슴에 품어야 했다.


서른셋, 많다면 많은 나이고 적다면 적은 나이일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이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33이라는 숫자는 별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다면 다시 이 질문을 만나고 대답하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다음에 만났을 때는 인생을 많이 쓰고 난 뒤라 돌이킬 여지도 많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회사를 호기롭게 나왔고, 글을 쓰고 있다. 대단한 문학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간 글을 써온 적도 없다. 사실 뭘 쓰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쓰는 내가 좋아서 쓰고 있다. 글이 어디까지 나를 데려가줄지 모르겠다. 글로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글로 생계가 안되면 다른 걸로 생계를 유지하면 될 것이고, 어쨌든 글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퇴사를 호기롭게 나왔으면 뭔가 거창한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사업을 한다든가, 하다 못해 공부를 하러 간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자격증이라도 몇 개 더 따야 하는 건가 싶었다. 실제로 내가 그만둔 이후에 회사를 나온 친구들은 이래저래 분주하게 새 자격 얻기에 골몰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었다. 내가 좀 별난 인생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고리타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저 그런 일을 관성적으로 하면서 매일을 보내며 인생을 다 쓰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라이프스타일에 매여 사는 것만큼 모순적인 일이 있을까. 생존만이 남은 인생은 초라해진다. 내가 집에 살아야 하는데, 집을 떠받들고 살고, 차를 타는 게 아니라 차가 나를 타고 다니는 건 아닌가. ‘이쯤은 해야지’하며 소비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닌가. 직장인의 가장 큰 관성, 자신만의 인생을 찾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월급과 허울뿐인 안정성이다. 이미 일하는 이유도 잃었고, 보람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월급이 주는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달콤함에 취해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월급을 기다리는 사람은 언젠가는 조직 내에서도 버려질 뿐이다. 월급으로 대표되는 삶의 안락이나 편안함을 한번 넘어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 중요한 일은 뭐지? 내가 살고자 하는 인생은 어떤 인생이지? 한 번쯤 멈추어 서서 치열한 씨름을 해보면 좋겠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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