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길은 하나뿐이다

모험하는 수밖에 없다.

by 정필

요즘에도 나의 아침은 직장인일 때와 같은 시간에 시작된다. 6시경 눈을 떠 물을 한 잔 마시고 곧장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는 만년필과 노트를 꺼내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아무 형식도 정해진 내용도 없다. 그 시점에 머리를 지나다니는 생각을 펜으로 잡아 온다. 경제적인 불안에 대하여 쓸 때도 있고,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걱정에 대하여 쓸 때도 있다. 글을 쓰려고는 하고 있지만 대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이러다가 이도 저도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도 당연히 가지고 있다. 어떤 날은 확신에 차 있기도 하고, 꿈속에서 느꼈던 것을 쓰기도 한다. 만남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마구 써내려 가기도 하고, 오늘 쓰고 싶은 글에 대해서 쓰기도 한다. 무형식의 A5용지 한 장 또는 두 장, 이 글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생각(Think)에서 감사(Thank)가 나온다고 했던가. 당연하게 살아왔던 주어진 삶을 곱씹으며 내게 찾아온 이 삶의 경이로움과 감사를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다. 40분 남짓 몰입하여 글을 쓰고, 한 시간 반 정도 책을 읽는다. 가리지 않고 읽는다. 문학작품도 읽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내면 깊이 여행했던 작가들의 수필도 읽는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하다. 그래서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으면 딱히 뾰족하게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일을 그만두고 요즘 뭐 하냐는 옛 동료들의 질문에 “요즘 그냥 있다.”라고 하거나, 몇 마디 더 물어오는 집요한 친구들에겐 “글을 쓰려고.”하는 정도로 대답을 끝내고 있다. 대답을 해보려고 하면 긴 얘기를 풀어놓아야 할 테고, 긴 얘기를 한 끝에도 그들에겐 전혀 시원한 대답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목구멍까지 솟던 이야기는 한 마디로 압축되어 버린다. 나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살아가는 방법, 인생을 보는 방법이 조금 바뀐 것을 느낀다. 이전에는 대체로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았다. 전형적인 해피 엔딩의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학창 시절에 충실해서 좋은 대학 간판을 따고, 복지와 급여,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기업에 취직을 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 별로 토 달게 없는 전형적인 행복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살아봤지만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인생이 열 번쯤 반복된다면 한 번쯤은 그리 살아도 됐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뿐인걸. 지나고 나서 아쉬움을 한가득 안은채 생을 맺어야 한다면 그만큼 씁쓸한 게 또 있을까 생각했다.


모험을 하기로 했다. 내 안에 심긴 ‘씨앗’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가 되어 보고자 했다. ‘나’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살 필요가 없다. 그 길에는 만족스러운 내 모습도, 내 안에 있는 씨앗을 싹 틔울 힘도 없다. 대단한 모험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길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기여하고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방법은 이것뿐이다. 회사원으로 적당히 살아가는 길은 끝이 정해진 게임이다. 나의 급여는 봉급표에 의해서 입사 시기부터 퇴사 시까지 모두 정해져 있다. 몇몇 예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봉급표를 뒤집고 능력껏 대우받는 경우는 없다. 다만 최악의 성과를 내더라도 최소한은 보장되기에, 스스로의 일을 찾지 않아도 조직이 업무를 부여해 주기에 직장 생활에서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때로는 길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며, 풀숲을 헤치고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길이다. 또한 대기업인 경우에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더 어렵다. 사장이나 대표이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열심히 해도 나를 평가하는 대표이사와 나 사이에 있는 수십 수백 명의 선배 사원들을 겹겹이 넘어야 한다. 한 방에 큰 실적을 세워 일약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한가 보지만, 드라마에서 외에는 그런 경우를 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조직은 스타보다는 묵묵한 일꾼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기회도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이로 보아, 사회적 성공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일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만일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유망한 직종을 그때그때 쫓아다니려 한다고 생각해 보자. 1년에도 여러 번 변하는 경향에 나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올해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유행이라 하니 코딩을 배웠다가, 내년에는 외국어를 배우고, 빅데이터를 배우고, 이런 식으로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얼마 가지 않아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인생을 걸 수 있는 나만의 흥미를 찾고 그것을 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대학시절, 그 어렵던 경제학 공부도 누군가에겐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분명 같은 나이, 비슷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들은 자기가 선택한 공부였기에 별 뜻 없이 인기 좋은 과를 선택해 온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전혀 경쟁이 되지 못했다. 재밌어서 푹 빠져 있는 사람과 억지로 하는 사람이 경쟁이 될 리 만무했다.


작은 흥미의 씨앗을 찾고, 그 일로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이 되고 싶다. 발전이 가능한 흥미를 찾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가고 싶다. 좋아하는 일에서 시작하면 잘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잘하게 되면 금전적 사회적 보상도 따라오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흥미가 없는 일을 평생 한다고 생각해 보자.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일을 점점 잘하게 될 리 없다. 일을 점점 잘하지 않으니 늘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는다.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일 정도를 평생 반복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이 길에 있는 사람에게는 금전적 보상도, 사회적인 성공도 요원한 일이다.


직장에서 느꼈던 나의 갈증은 나다운 삶에 대한 갈증이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삶이다. 인생의 키를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고 다수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딱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내 삶을 사는 것이다. 여럿이 가는 길이 아니기에 때로는 두렵다.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흥미와 재능을 일로 연결시켜야 하는 과제도 내 몫이다. 그러나 이 길만이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당신의 삶이 좋은가. 훗날 지금 일을 아주 잘하게 된 당신을 본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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