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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13. 2023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을 만났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자택 경비와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한 뒤 쓰레기를 버리러 단지 내 클린하우스에 갔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오려는 찰나, 옆 동 건물 으슥한 곳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담배연기도 같이 나오는 걸로 봐서 주민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냥 올라가려다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아서 호기심이 생겼다. 힐끗힐끗 쳐다보니 한 손에 교복 티셔츠 같은 걸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요즘 교복을 몇 번 봐두었던 덕에, 티셔츠로 된 교복도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으슥한 곳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학생임을 알아차렸다.


으슥한 곳에 가려면 주차된 차량 뒤편으로 가야 했고, 거기는 동선 상으로 지나다니다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냥 갈까, 한마디 해볼까 고민했다. 내 머릿속에는 여러 고민이 지나갔다. ‘아저씨가 무슨 상관인데요?’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 내가 뭐라고 담배를 끄라 마라 한다는 말인가. 숨어서 조용히 피우고 있으니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도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두고 그냥 지나가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설마 나를 두들겨 패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으슥한 곳으로 걸어갔다. 막상 으슥한 곳 근처까지 가니 학생이 맞았고, 학생들은 애써 나를 쳐다보지 않는 듯 보였다. (피했다기보다 핸드폰을 보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운을 뗐다. “학생이죠?”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교복을 들고 있는데 학생이냐고 묻다니. 학생들이 별 반응이 없길래, 좀 뻘쭘해졌다.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알죠?” 하니 학생들이 의외로 순순히 “네, 죄송합니다.”하더니 담배를 끄고 그냥 가버렸다.


학생들은 재를 탁 털어 담배를 끄더니 꽁초도 안 버리고 손에 들고 갔다. 학생들 뒤통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죄송하다고 하고 끄고 가는데 불러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내가 뭐라고 싶어서 나도 머쓱하게 집으로 올라왔다. 


같은 날 오후쯤 되어서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우리 단지 내부도 아니었고, 공영 주차장 터에서 학생들 열댓 명이 두세 무리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장도 아니었고, 탁 트인 공터였다. 심지어 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뭐라고 할 명분도 나설 용기도 없었기에 곧장 집으로 왔다. 


나도 이런 얘길 하면 ‘라떼 아저씨’가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어릴 땐 교복을 입고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다. 숨어서 몰래몰래 피우고, 사람 안 지나다니는데서 피우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그런 건지, 아니면 걔네만 그런 건지 헷갈린다. 그리고 그때는 담배 피우다가 어른들께 걸리면 꾸지람을 듣는 게 당연했다. 


시대가 변한 걸까, 얼마 전 미용실 원장님은 초등학생들도 담배 피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심지어 그 부모님이 아이가 밖에 나가서 담배를 사는 게 힘들고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으니 직접 담배를 사다 준다고 하셨다.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고도 하나, 내가 부모였으면 혼쭐을 내주고 또 내줬을 텐데 싶었다. (요즘은 다리 몽디를 분지른다거나 하는 말도 하면 안 된다.)


집에 돌아와 좀 찾아보니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소년 흡연은 법으로 불법이라고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청소년보호법 제4조 2항(사회적 책임)에는 청소년이 유해한 매체물 또는 유해한 약물 등을 이용하고 있거나 청소년폭력ㆍ학대 등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를 제지하고 선도할 것’ 이라고만 규정되어 있다. 사회적인 책임을 다한다면 제지하고 선도해 볼 수는 있으나 학생들이 ‘아저씨는 뭔데요’라고 하면 대답이 궁색해질 것 같았다. 


흡연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니 괜찮은 걸까. 법이 괜찮다는데, 가족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 내가 뭐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한 이 기분은 왜일까. 


사회가 발전하고 시공간의 제약이 덜해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10, 20년 전과는 사회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어졌다고나 할까. 예전에도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어른들이 청소년의 흡연을 훈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같은 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또 같은 사회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공동체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집 자식이 아니어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기도 하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수긍하곤 했던 것 같다. 


점점 더 개인화되고 가정도 핵가족화되면서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기보다는 일단 개인으로서 ‘나’가 더 중요한 시대라고 할까. 공동체를 위해 살아야 하고, 예전이 더 좋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점점 더 서로가 서로로부터 분리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뿐이다. 피해를 입어도 ‘나만 아니면 돼’고, 일단 ‘나부터 잘살고 보자’는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고 진단하면 지나친 것일까. 


공동체나 개인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면 둘 다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개인화된 시대가 아닌가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다. 


한편으론 담배가 어른, 아이 골라서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닌데, 어른은 되고 청소년은 안된다는 것도 좀 학생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기에는 더 영향이 크다고 얘기해 주어도 그 나이 학생들에겐 안 먹힌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그러다 보니, 내 아파트, 내 집 앞, 금연구역에서 피우는 게 아니면 점점 더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다. 자기가 구해서, 자기 몸으로 피우겠다는데 무슨 수로 말릴 수 있으랴.


딱히 할 말이 없는 건 맞는데, 그래도, 한마디 해본다.


“야 이 녀석들아, 뼈 삭어.”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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