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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Sep 20. 2023

커피 한 잔, 추억 한 모금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시원한 촉감과 함께 쌉싸름한 커피 향이 입안에 퍼진다. 빨대를 휘휘 저어 괜히 얼음과 커피를 빙글 저어 본다. 나는 당이 들어있지 않은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 맛은 잘 모른다. 가끔 핸드드립을 파는 가게에 가도 맛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커피 맛이다, 달다, 달지 않다 정도만 구분한다. 산미, 바디감, 그런 거 잘 모른다. 그래도 커피가 좋다. 얼음 동동 떠있는 시원함도 좋고, 나른한 오후를 깨우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좋다. 카페 한구석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도 좋다. 


생각해 보니 커피를 참 많이도 마셨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커피 맛을 잘 몰랐고, 그때는 카페 같은 것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자주 타 드시던 믹스커피 스틱 맛을 궁금해했다. 카페인 때문에 우려했기 때문인지, 부모님은 커피를 다 드시곤 한 방울 남짓 되는 양만을 남겨 맛만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달짝지근한 게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맛본 뒤에도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입시 공부를 할 때도, 카페인 효과를 누려야겠다고 생각은 못 했다. 피곤한 줄도 모르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잠 줄여가면서 공부한적이 없어서 그런것도 같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쯤 들어서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인지, 필요가 생겨서 그때부터 눈에 들어왔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른 흉내를 내면서 친구들과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앞에 놓고 대화를 했다. 커피 값이 비쌌다. 지금에 비해서도 초창기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커피 한 잔 값이 학교 근처에 파는 돼지국밥이나 정식 가격과 비슷했다. 그래도 뭐가 그리 좋았던지, 자주 카페를 찾았다. 


커피 맛은 잘 몰랐다. 왠지 처음엔 있어 보이게 이름이 긴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셨다. 그러곤 카페 모카 같은걸 자주 마셨다. 내 기준에 커피는 단 것, 달지 않은 것 두 종류였다. 단 것을 위주로 마시다가, 점차 설탕이나 휘핑크림이 없는 커피로 옮겨왔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한창 의문도 고민도 많은 대학생 시절, 커피를 앞에 놓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이 없는 고민을 친구와, 가족과, 여자친구와, 선, 후배와 함께 나누었다. 나는 커피를 떠올리면 맛보다는 사람이 주욱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마셨던 커피가 기억난다. 사귀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아내는 자기 자신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은은한 조명이 곳곳에 켜져 있는 교회 1층의 카페였다. 대체로 조용했고, 주위에는 아는 얼굴도 몇몇 있었다.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귀기 전인지 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아내와 나에게 공통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서로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때 그 한 잔이 지금 우리를 있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그때 만남을 떠올리니 싱긋 웃음이 난다.


커피에는 많은 만남과 추억이 들어 있다. 커피 마시는 장면이 쭉 스쳐 지나간다. 종이컵에 남은 믹스커피 한 방울을 맛보던 어린 시절, 커피를 한 잔 앞에 두고 아내와 나누었던 담소, 친구와 마주 앉아 열변을 토하던 장면, 군 시절 작업을 끝내고 마시던 캔커피 한 잔, 직장에서 점심식사 후에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사무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시간, 그리고 지금 카페에 나와 홀로 마시는 커피 한 잔. 


커피를 떠올리며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비어있는 내 앞자리에 와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머릿속을 맴돌다가 날아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나도 있다. 커피를 앞에 놓고 추억을 나누었던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하고, 지금도 떠올리면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다. 


요즘엔 각성 효과 때문에 커피를 마시고, 카페를 이용하기 위해 으레 한 잔 시켜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커피 한 잔을 놓고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많아서 좋다. 앞으로 마시게 될 커피도 비슷한 맛일 테다. 그중에 만남은 또 피어날 것이고 만남 속에는 이야기와 추억이 새롭게 자리를 잡겠지. 마셔온 것보다 더 많은 커피를 마시게 될 텐데, 이어지는 만남 속에 나라는 사람도 상대에게 커피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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