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과 인생

태몽이요?

by 정필

“너희 별일 없나?” 대학생 시절부터 우리를 알아온 아내의 전 직장 동료이자 소식통인 누나가 대뜸 전화로 물어왔다. 내가 직장 그만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므로 어디서 그 얘기를 듣고 와서 우리를 떠보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내가 태몽을 꿨는데…”로 이어졌다. 평소 연락을 하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태몽 소식을 전해오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세 쌍둥이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던 나와 아내는 서로 쳐다볼 새도 없이 말도 안 된다며 수화기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그게 가능은 한 거예요?”라고 물어보지만, 어디선가 그보다 더 한 쌍둥이를 낳았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다만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거의’ 어렵다고 한다.


세상일이 늘 그렇지 않은가. 계획대로 안 될 걸 알면서도 계획을 세운다. 나와 아내는 나름대로 자녀 계획을 세우긴 했다. 아내도 일 하는데 적응을 좀 해야 하고, 나도 일을 그만뒀으니 좀 더 있다가 아이를 갖기로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연초에 낳아야 좋다는 얘기도 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딱히 세우지 않았으니 이런 걸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전화를 받았다. 세 쌍둥이 태몽이라니 너무 뜬금없기는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세 쌍둥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녀가 생긴다는 사실이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아빠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 흔한 반려동물도 한 번 키워본 적이 없는데, 내 아이를 갖는다는 기분은 어떨까 싶었다. 아이가 있음으로 책임져야 할 것도 늘겠지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기쁘지 않을까. 아무 이유 없이, 존재 자체를 아끼고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인격이 우리 가정에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니 설렜다. 누가 올지, 몇 명이 올지, 어떤 아이일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 부부의 몸을 매개로 세상에 한 생명이 태어날 것이다. 사랑의 범위는 아내와 남편 서로에게서 아이로 확대될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 다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태몽’을 매개로 안부 전화를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직 새 생명이 찾아온 것도 아닌데, 그냥 한 번 생각해 본다. 서로 모르던 두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 참 아름답고 신비하게 여겨진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목적이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어째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는지도, 이 가정에 태어나 지금 만난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단한 무슨 업적을 이루거나 지위를 얻는 게 모든 이의 목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뭘 이루라고 태어나 사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 가본 길, 처음 걷는 길을 곧 가게 될 것 같다. 서로 더 사랑하고 싶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든 과정이 사랑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사랑이 무엇인지 오늘보다 내일 더 배워 가고 싶다. 그리 산다면, 대단한 목적쯤이야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태몽 얘기를 쓰다 보니, 한 두 달 전에 엄마도 태몽 얘기를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 사이에 자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태몽’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태몽 두 건이 쌓였으니, 이제 ‘당사자’만 태몽을 꾸면 될 것 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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