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의 자유를 얻었다. 가야 할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오전 9시의 풍경이 달라졌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침 9시는 늘 어딘가에 가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영유아 때에도 어린이집이며 유치원에 다녔다. 엄마 손 잡고 골목길을 걸었다. 한쪽엔 차들이 세워져 있어서 겨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을만한 좁은 골목이었다. 골목 어딘가 건물 사이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나와서 5분에서 10분여를 걸어 유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기도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9시가 등교 시간이 되었다. 수업 시작이 9시였는지 등교 시간이 9시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침에 시간을 맞춰서 가야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빠 도시락을 차리고 나와 동생의 아침밥을 차렸다. 아빠가 제일 먼저 집을 나섰고, 우리 남매는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엄마가 우리 남매보다 먼저 나선 기억은 없는 걸로 봐서, 엄마는 늘 제일 먼저 일어나 제일 늦게 나섰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에 다녔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내 몸이 깨어있는 시간인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늘 어딘가에 머물렀다. 중,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점차 늘었다. 등교시간은 앞당겨졌고, 하교시간은 늦어졌다. 입시가 가까워 오면서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학교에 있었다.
대학생 때는 그래도 좀 자유로웠다. 그래도 천성이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잠을 못 자는 성미라 늘 오전 수업을 들었다. 중국 유학생 시절에도, 군대에서도,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갖게 되면서도 늘 눈뜨면 어디론가 가야 했다. 시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침 9시의 나는 늘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9시까지 가야 할 곳이 없어졌다. 6시쯤 일어나 글을 쓰고, 커피 두 잔을 타 한잔은 마시고 한잔은 텀블러에 담아 아내에게 건넨다.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침을 간단히 차려 아내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한다. 아내를 배웅하고 나면 8시쯤 될까.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해도 둘이 사는 집이라 크게 할 일이 없다.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9시가 안 된다. 아내가 아직 일터에 도착하기도 전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직장을 나올 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잠시 멈춤을 택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글을 쓰기로 했다. 왜 멈춰야 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그동안 꺼내지 못하고 들어주지 못했던 내 마음의 이야기를 글을 통해 들어주게 되었다. 산책을 다녀와 글을 쓰고,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읽고, 그것도 아닐 때는 땀을 흘렸다. 네 달이 지났다. 내게는 멈춰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고, 다음 목적지도 없었다. 자꾸 글을 쓰다 보니 내 안에 맴돌던 말들이 생겨났고, 말을 지면에 받아 적다 보니 내 생각이 되었다.
9시쯤이 되면 아침 글쓰기는 끝난 상태이다. 아침 식사도 간단히 마쳤고, 아내도 일터로 떠났다. 나만 남는 시간이다. 부르는 곳도 없고,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다. 핸드폰 알림도 모두 끈 채 바닷가 마을을 천천히 걷는다. 걷다가 이따금 멈춰서 태양빛을 쬐는 나무를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하고, 저 멀리 한라산 꼭대기가 보이는 곳에 멈춰 서서 오늘 하늘은 어떤 모양인지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길가에 핀 해바라기며 수국이며 접시꽃 같은 것들을 감상한다. 늘 지나다니던 곳이었지만 멈춰 서서 보니 새롭다. 컹컹 짖던 동네 개들도 이제는 내가 익숙한지 짖지 않는다. 손을 흔들어 보이고 계속 길을 걷는다. 모두가 일터로, 학교로 떠나는 시간의 분주함을 나의 한가한 눈에 담는다. 9시에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있을 곳, 할 일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여겨졌다. 사회에 속해 있지만 또 홀로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그대로 살았더라면 아침 9시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시간대에 따라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 배웠다.
산책도 하고, 가끔은 쓰레기도 주웠다. 그리고 또 돌아와 글을 썼고, 이따금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9시부터 주어지는 자유로움에 여러 모양으로 이름을 붙여 주려 했다. 몸이 또 루틴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는지, 매일 일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산책을 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달리기를 하는 날도 있고, 나가지 않고 글을 쓰는 날도 있었으며 나가서 글을 쓰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한 집 안에 혼자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쌓여 있는 설거지 생각도 났고, 며칠 깎지 않아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작대기도 했다. 좀이 쑤신다고 해야 할까, 사람 구경이라도 해야 좀 나아졌다. 몇 차례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를 들락거리며 사람 구경을 했다.
최근 몇 주간은 카페로 출근했다. 주택가가 밀집한 곳의 카페는 9시 무렵엔 아무도 없다. 카페 오픈 담당 아르바이트생과 나, 단 둘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앉은 곳도 주택가 근처의 카페인데, 4인 테이블 16개, 2인 테이블 2개와 별도의 단체룸이 구비된 대형 카페이지만 사람은 단 둘뿐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적당한 곳을 찾아 앉는다. 이왕이면 직원과 마주 보지 않는 위치가 좋다. 아침 시간은 직원도 쉬엄쉬엄 일하는 시간일 텐데, 서로 눈 마주치면서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미안해진다. 커피 한 잔만 시키기도 썰렁하고 민망하여 샌드위치까지 하나 시켜 놓고는 맛도 보지 않은 채 글을 쓰고 있다. 맞은편 통유리 창으로는 편도 2차선 도로가 보이고, 이따금 차량이 한 두대 지나간다.
오늘로써 4개월 간의 백수 생활에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평생 처음 경험한 9시의 자유를 잠깐 다시 봉인해두어야 할 시간이다. 내일이면 새 직장에 다시 출근하게 된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삶과 일을 뗄 수 없다면 좋은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직장에서 나왔다. 새 직장은 청년들이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함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하며 답을 찾아 나가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면세점에서 장사하던 일과는 많이 종류가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내가 가진 것으로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내일이면 또 당분간은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을 수 없으니, 오늘은 그간 가지 않던 곳에 앉아 무작정 아침 9시의 감상을 써 본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돈 많은 백수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자유를 빙자한 방종을 꿈꾸는 바도 아니다. 누가 불러서, 누가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가는 일터가 아니라, 내 발이 먼저 움직이고 눈보다 마음이 먼저 뜨여서 안 가고는 못 견디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이는 능동적인 사람이고 싶다. 최소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활력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위해 살고 싶다. 내게는 작은 꿈이 생겼다. 첫째는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를 잡아 끄는 사람이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이 주는 안락함이란 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가 의무를 부여해 준다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불안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유를 팔아넘기고 싶지는 않다. 자유와 불안을 끌어안고 내 길을 걷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 삶에 대하여 책임도 내가 진다. 둘째로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의 것을 내놓고 싶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라는 말이 덕담처럼 되었다. 나는 많이 일하고 덜 벌더라도 상관없다. 내 일이,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더 나은 세상과 타인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으로 뿌듯한 인생이 될 것 같다. 언젠가 생이 다 할 때,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세상에 내가 내어 놓은 것들 뿐이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작은 일터를 하나 만들고 싶다. 내가 나 일 수 있는 곳, 나를 더 쏟아놓고 일할 수 있는 곳, 그리하여 세상과 타인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나를 고용해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 있다.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좇는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하여 부단히 훈련하고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겠다. 소망을 가지고 조용히 기다리며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다음 걸음을 내딛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이제 내 인생은 마라톤 하는 선수의 인생이 아니다. 탐험가로서의 삶이며, 이전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 인생이다. ‘나’라는 나침반을 지니고 이 길에 들어섰다. 어디에 다다르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 모험은 목적지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삶을 그러안고, 내게 허락된 시간 동안을 다 살아내고 싶다. 그러는 동안에 원석에 가까워 돌멩이처럼 보이는 내 삶의 모양도 어느샌가 제련된 보석의 형태를 갖추어가게 될 것을 믿는다. 내일 9시의 풍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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