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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Nov 21. 2023

절박한 마음

반성문

자주 써야 합니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은 생각은 쌓이고 쌓여서 뒤죽박죽이 됩니다.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 주말 외에는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완벽주의 기질이 남은 탓인지,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의 발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덩어리 시간이 없으면 글을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마침 이번 주는 주말에 일정이 있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글쓰기 시간을 다른 데 사용하고 나니, 온통 그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틈만 나면 글 쓸 시간을 얻을 수 없을까 고민하고, 저번 주 내내 생각했던 것들을 살펴보며 무슨 글을 쓸까 궁리했습니다. 


화요일인 오늘 더는 참지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자주 가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보면 메신저로 채팅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한참을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니, 왜인지 글이 뒤죽박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즐겁게 쓰기는 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풀어놓았어야 할 말들이 잔뜩 뒤엉켜 있었던 거지요. 그때그때 꺼내 놓았어야 할 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어서, 쓰는 저로써도 무엇을 쓰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싱글벙글 글을 꺼내 놓을 생각을 하다가, 그 마음을 접었습니다. 역시, 오랜만에 글을 쓰려면 글쓰기에 들어가기까지 써야 하는 분량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전에 썼던 글을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맞습니다. 글 쓰는 일을 게을리했습니다. 아침 일기 두 권을 모두 채웠다는 기쁨에 젖어 오늘은 한숨 더 자는 것으로 글쓰기를 대신해 버렸습니다. 주말 동안 쓰지 못한 글과 오늘 아침까지 쓰지 못한 글이 제 안에 쌓이게 된 것은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일기 분량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느라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 300일 동안 45만 자나 썼어, 대단하지?’ 하며 스스로 취해 있느라 펜을 쥐지 못했습니다. 쓰지 않는 동안 쓰려고 했던 것들은 마음 한편에 각각 자리를 잡아서 정리되지 않은 채 공간만 차지했고,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점차 선명하지 않은 표현이 되어 마음속을 어지럽게 맴돌았습니다. 


매일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연습해야 합니다. 꺼내지 못한 생각은 마음속에 쌓입니다. 쌓이는 생각은 표지가 뒤집힌 채 꽂혀있는 책과 같아서, 나중에 꺼내려하면 하나씩 뽑아서 뒤집어본 후에야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 24시간을 통째로 사용해 글을 쓰던 때 습관을 벗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꼼짝없이 직장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전처럼 글을 쓰고자 생각하면 주말 몇 시간을 덩어리로 내어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제대로 글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안 쓰면 점점 더 글은 쌓여 갈 테고, 아침에 손으로 쓰는 한쪽의 글로는 글을 다 퍼낼 수 없습니다. ‘평일날은 출근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글을 쓸 수 없겠군.’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은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쓰기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한 욕심 때문입니다. 잘 쓰려는 생각은 좋은 것이지만 그 생각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언제쯤이나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해서는 조금 더 쓰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안 쓰고는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육필로 쓰는 한쪽 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1500자 남짓 쓰는데 40분 정도가 걸리니, 이것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독, 다상량 좋습니다. 그러나 쓰지 않은 채 행하는 읽기와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합니다. 글은 완벽하게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속에는 수많은 순간이 들어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쓸 게 없는데?’라고 생각이 들어도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그러니 쓸 만한 것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러니 쓸 수 있는 덩어리 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자리를 펴고 글을 쓰기 시작하십시오. 


씀으로써 삶은 더 정리될 것입니다. 하루를 살며 여기저기 쌓였던 불순물들을 씻어내게 될 것입니다. 필요한 경험과 정보는 다듬어진 형태로 정리해 두고 버려야 할 것들은 버려서 새것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방은 점차 먼지가 쌓이고 잡동사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럽게 흩어집니다. 글쓰기는 좋은 정리 도구입니다. 마음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 불필요한 정보를 청소하고 자주 쓰는 물건은 다시 필요한 곳에 정리하여 둘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아침에 쓰는 한쪽짜리 1500자 글은 그대로 쓰고, 따로 시간을 더 내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언젠가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을 때가 되기까지, 할 수 있는 대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상적인 덩어리 시간을 바라며 기다리던 저와는 달리, 틈만 나면 글을 쓰시는 분이 계십니다.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으로 쓰기도 하고, 덩어리 시간이 아니라 30분 밖에 시간이 없어도 쓰십니다. 강원국 작가님 책에 ‘절박하면 써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비서실에 근무할 때, 직원 한 명이 깜빡 잠이 들어 대통령보다 늦게 나왔다는 예화를 소개합니다. 그 늦은 직원은 부랴부랴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뛰어오느라 앞에 놓인 투명한 유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늦었다는 사실과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리로 돌진했고, 호텔 로비의 두꺼운 유리는 박살이 났습니다. 이것을 절박함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춰 보면 저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미 늦어서 대통령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에, 여유 부릴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덩어리로 시간이 나서 산책을 하며 글감을 떠올리고, 이리저리 표현을 고쳐가며 둔한 표현을 가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모든 이상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처럼, 저의 글쓰기 환경도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지요. 그때를 가만 기다리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조정해 글 쓸 시간을 내고 유리창에 들이박으며 달리는 절박함을 가져야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방법을 찾는 것 또한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죠. 


글은 참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쓴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쓸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우리의 몸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쓰지 않아 자꾸 쌓이지 않도록, 자꾸자꾸 써야 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확실히 글은 표면보다는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지 않다가 글을 쓰면 진짜 쓰려고 했던 글을 만나기까지 써내야 할 분량이 있습니다. 매일 글을 써서 쌓이는 글을 퍼내지 않으면, 점점 더 진짜 글을 만나는 일은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글로 저 자신과 만나고, 내면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경험한 것들을 또 써내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 글은 300일간의 모닝페이지에 관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300일간 손으로 45만 자를 썼습니다. 글로 써내지 않으면 이 생각도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글로 쓰려 합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다음 글까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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