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올케라는 말이 낯설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동생의 아내도 자연스레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나는 친동생보다 나를 더 살갑게 챙겨주는 여동생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었다. 발그레한 볼로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아가씨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며칠 전 남쪽 지방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덕분인지 세 살 난 첫 조카아이가 올해 처음 쌓인 눈을 밟았다고, 그녀가 영상을 보내주었다.
아이가 눈덩이를 던지다가 자꾸 멈춰 서길래 이상해서 핸드폰의 볼륨을 켰다. 자그맣게 속삭이듯 '부서졌어….' 라고 말하곤 이내 풀이 죽는다. 엄마가 만들어준 눈덩이가 부서지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한두 번 정도 그러다 말 법도 한데, 눈덩이가 땅에 떨어질 때마다 아이는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모아 아이의 손에 쥐어주며, 눈은 원래 부서지는 거라고 웃으며 타이른다. 아직 얼음 결정이라는 눈의 속성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이는 엄마의 손에서 다시 제 모습을 찾은 눈덩이를 보고 까르르 웃는다.
눈은 이렇게 보드라운 거야- 하고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흰 눈만큼 폭신하다. 차가운 줄도 모르고 눈을 만지는 조카아이의 도톰한 손이 예쁘다. 지난 칠 월, 바다의 품에 안겨 여름을 만난 아이는 사각거리는 눈을 밟고 세 번째 겨울을 맞았다. 아이는 해를 넘길수록 새로운 계절과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고, 훌쩍 자란 키만큼이나 그 세상을 보는 눈높이도 달라질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속도가 거칠어 그 영향이 자연과 기후에 큰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밀렵꾼들의 목표가 되지 않기 위해 상아가 없는 코리끼가 태어나고 있고, 전대륙에서 유례없는 극단적인 혹한과 혹서가 동시에 일어난다. 아이들의 속눈썹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도 대기 오염 때문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지구의 역사와 인간의 진화 속도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너무나 그럴싸하게 들리는 건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공기 청정기가 돌아가는 집에 갖히는 날이 잦아진다. 아무도 창을 열 수 없는 미래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열 번째 봄과 스무 번째 가을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충분히 누릴 수 있을까. 머지않아 두 개의 계절만이 남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는 작은 아이들의 시간이 너무 빠르지 않게, 온화하게 흐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