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종종 인근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사람 발걸음이 드문 곳을 찾아 풀밭을 서성이다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멈춰본다. 그러면 한낮이라도 평소에 잘 들리지 않던 온갖 소리가 귓가로 몰려든다. 수많은 사운드 앱이 있어도 실제로 자연 속에서 그들을 듣는 것만큼은 안된다. 그 미묘한 차이 때문에 아직은 머신이 인간의 감각을 속일 수가 없다. 언젠가 귀뚜라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더 이상 귀뚜라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밤이 오면 영원히 잠들 수 없을 거라는 엉뚱한 공포가 있었다. 간밤의 귀뚜라미 소리를 까맣게 잊고, 출근길 현관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와 가디건을 걸치고 나가면서 가을 문턱임을 깨닫곤 한다.
소리로 계절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귀뚜라미 같은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겁도 없이 사람에게 올라타는 잠자리 같은 녀석들도 있다. 나른하게 늘어지는 오후의 휴식을 방해한 앙증맞은 이 녀석은 내 무릎이 벤치인 줄 알고는 한참을 앉아 쉬어갔다. 잡으면 바스락거리며 흩날릴 것 같은 투명한 날개가 미풍을 타고 살짝살짝 흔들렸다. 숨을 참고 카메라 버튼을 누른 내 심정도 모르고, 다리는 괜히 꼬아앉아서 한쪽 허벅지가 저려올 때쯤, 꼼짝도 않고 있던 녀석은 갑자기 파르르 날개를 떨고 날아가 버렸다. 이 작은 녀석의 생에는 단 하나뿐일 시절을 실컷 만끽하고 떠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