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명품을 사지 않는 이유

돈이 없기 때문

by 망고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7


명품. 늘 뜨거운 감자다. 유튜브만 봐도 저마다 명품을 사는 이유와 명품을 안 사는 이유를 해명하고, 본인이 가진 명품을 늘어놓고 명품 입문자를 위한 제품 추천을 하기도, 명품 브랜드의 제품 상자를 쌓아 올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도 한다. 그들을 휘감은 명품들을 보다가, 그들의 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구태여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며 다른 콘텐츠로 휙- 넘긴 내가 느낀 건, 희미하지만 분명 박탈감이다.




3-4년 전쯤 비즈니스 미팅에서 만난 누군가가 툭- 하고 내려놓은 명품 가방을 보며, '나도 서른이 되면 명품백 하나 정도는 장만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처럼, 나도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명품백 하나 정도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생각의 근거로는, 음.... 앞으로 결혼식이나 공식적인 행사에 가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질 테고,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좀 더 있어 보여야 할 것 같고. 뭐, 그런 거다.


마침 몇 달 전, 작은 사이즈의 가방이 필요한 김에 명품 브랜드로 하나 사볼까 싶어 여러 사이트를 찾아본 적이 있다. 핸드폰 화면을 쓸어 올리는 내 검지 손가락짓에 최소 몇 백만 원씩 하는 그 수많은 가방들이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려고 하는 쇼핑인데, 뭔가 마냥 설레지는 않았다. 어거지로 장바구니에 담아낸 두어 개의 명품 가방을 보며 상상했다. 이 가방을 든 내 모습을.


갑자기 나타난 명품 가방에 나의 3만 원대 니트들이 한껏 기가 죽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추럴한 내 모습에 슬쩍 곁들여질 작은 명품 로고는 꽤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명품을 들고 있으면 3만 원대 니트가 30만 원대로 보일 수 있다는 명품 로고의 후광효과를 믿어보기엔, 내가 너무 알지 않나. 이 니트가 30만 원으로 보이든, 50만 원으로 보이든 이건 3만 원짜리 니트라는 걸. 나는 이 가방 하나로 '명품을 가진 사람'이 겨우 되었다는 것을.



goods_471229_sub13_3x4.jpg?width=400 요즘 잘 입고 있는 유니클로 수플레얀 니트. 부들부들 소재감이 좋다. 너네 기죽을까 봐 명품백 안 샀으니까 보풀 내지 말고 오래오래 있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검지손가락을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쇼핑 앱을 화면 밖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역시나 용기가 없다. 내가 [가방]이라는 카테고리에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은 기껏해야 몇십만 원인데. (사실 몇십만 원도 너무 비싸다.. 엉엉) 그 두세 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여, 황새 쫓듯 명품 딱 하나를 가진 사람이 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방을 산다고 한들, 자연스럽게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가방에 박힌 노골적인 명품 로고가 나의 과시나 사치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보이기를 바라는 촌스러운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른을 목전에 앞두었던 나는, 결국 이번에도 명품을 밀어냈다.




20230217000074_0700.png 작지만, 세계에서 제일 럭셔리한 우리나라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명품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 한국의 명품 소비가 전 세계 1위라는 기사에 '헉, 그 정도라고?' 싶다가도 곧 납득이 되고 만다. 다들 이렇게나 턱턱 잘 사는 명품, 종종 나도 갖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온갖 생각과 상상에 휘감겨서는 끝내 사질 못하는지.


'사람이 먼저 명품이 되어야지'라는 훈장님 같은 말로 명품 없는 내 옷장을 합리화하기엔 정말 어불성설이다. 일단, 난 이미 명품이다.(뻔뻔) 그리고, 내가 명품인 이유는 명품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단한 업적을 세운 위인이나 유명세를 떨치는 스타는 아니지만, 내가 굳이 명품이 아닐 이유가 없다.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정직한 일로 성실히 돈 벌어서, 세금 잘 내고 떡볶이 사 먹으며 살아가는 반듯한 '명품' 시민이다. '나'라는 사람이 아직 명품이 못 되어서 명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명품을 많이 가졌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아닌 것도 아니고, 명품을 가지지 않았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혹시 명품이 그저 사치품일 뿐이라고 생각하냐고?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브랜딩이라는 작업의 최전선에서, 브랜드를 위한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나는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는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폄하하고 싶지 않다. 가격으로 가치를 만드는 카테고리가 명품이고, 비싼 가격은 명품이 가치 있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명품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디자인이나 소재와 같은 '유형의 가치'가 아니라, 내 3만 원짜리 니트도 30만 원짜리 니트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는 '무형의 가치'에 있다.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할수록 명품은 명품이 되어 더욱 비싸지는 건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명품이 사치품이 되는 문제는 매우 상대적인 영역이다. 각자의 소비 수준에 따라 혹은 가치관에 따라 사치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꼭 명품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물건이 나에게 사치품인지 아닌지는 정말 오롯이 본인만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늘 무언가를 구매하기 전후로 '사치력' 점검을 해보곤 하는데, 스스로 나의 '사치력'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 좀 부끄럽고 어렵지만 최대한 자기 합리화를 걷어내고 판단한다. 삐빅- 하고 '사치품' 판정이 난다면 후회도 좀 한다. 이런 방식으로 나의 적정 소비 수준을 찾고, 유지하려 한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가 명품을 사지 않는 이유는 결국 그냥 '내가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아주 심플한 결론을 내렸다.


난 명품이 주는 '무형의 가치'를 얻겠다고 몇백만 원을 한 순간에 지불할 만큼, 돈이 써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 명품은 명확한 사치품이다. 또 언젠가 누군가의 명품들을 보며 다시 피어오를 '힝 나만 명품 없어'와 같은 생각을 달래느라 몇백만 원을 쓰느니, 그냥 박탈감 한 번 더 시원하게 느끼는 걸 택하고 싶다. 나의 돈은 늘 한정적이기 때문에, 재밌는 숏츠 두어 개면 싹 잊힐 찰나의 박탈감 따위에 쓸 여유는 없다.


KakaoTalk_20250110_154417635.png 난 조금 저렴하게 럭셔리하고 싶다. 내 럭셔리함은 5만 원을 넘지 않는다.



3-4년 전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올해로 서른이 된 나는 지금 명품백이 있어야 할까?


있어야 하는지 어쩐 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내가 지금은 살 수 없다는 건 알겠다. 조금 더 내가 돈이 많을 때, 그래서 셀프 사치력 점검 테스트에서 명품백이 통과될 수 있을 때. 나에게 명품이 사치품이 아니라, 그저 명품일 수 있을 때. 그때가 되어야 스스로 떳떳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세상 모든 탐욕들이 아주 가끔만 찾아와 주길 바란다. ( /_ \ )






근데 그때가 언제 오려나, 안 오는 거 아니야?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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