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나도! 결혼! 나도!

by 망고

격변의 시기, 스물아홉ㅣEP.08


스물아홉에 겪은 빅 이벤트 중 하나는 친구의 결혼이다. 철딱서니 없던 고등학교 때부터, 더 철딱서니 없어진 지금까지. 어느새 14년 지기가 되어버린 7명의 친구들 중 첫 결혼이었다. 여러 번 고쳐 쓰며 축사를 준비했고, 덜덜 떨리는 손과 다리가 많이 티 나지 않을 만큼 나름 잘 읽어 냈다. 본 중에 가장 예쁜 모습을 하고 있던 신부 친구는 내 축사를 들으며 꽤나 엉엉 울었는데, 바로 앞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나머지 5명의 친구들은 거의 오열 중이었다고 나중에서야 들었다. 서로 젖은 휴지를 돌려쓰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다시 앉아서는, 진짜 가족이 된 모습으로 행진하는 친구 부부를 보며 처음 보는 색깔의 기억 구슬이 굴러들어 왔다.



"나도! 내 가족을 만들고 싶다!"


영화 <인사이드아웃2>의 기억구슬.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느끼는 감정들이 점점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여러 색깔이 섞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사실 결혼은 그다지 생각이 없었다. 우리 집은 부모님도 이혼했고,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했던 언니도 이혼했다. 이쯤 되니 이혼한 부모 아래 자녀들은 이혼율이 높다더라, 딸은 엄마 팔자 따라간다더라 하는 말들이 나를 콕콕 찔렀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부모님의 이혼 과정을 지켜본 자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배우게 되는 것 아닐까? 이혼했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니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의 부모를 통해 배운 것 같다. 가정의 불안정함과 또 그것이 다시 안정되는 모든 과정을 겪으며 무의식 속에 학습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다고 자녀가 '이혼'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지만, 늘 함께 있는 나의 엄마와 아빠 아래에서 살아온 성인과 그렇지 않은 성인의 이혼에 대한 감각은 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요즘은 워낙 이혼 가정이 많으니 그게 뭐 별 일이냐 하지만은, '요즘 많이들 겪는 일'과 '내가 겪은 일'의 차이는 큰 법이니까. 이를테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는 5살짜리 아이에게도 난감한 질문인데, 내 인생에서 엄마와 아빠 중 한쪽만을 현실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 그 어리고 어리숙했던 가치관으로 둘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이며, 나는 둘 중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곱씹을수록, 참 별로다.



그림1.png 하지만 나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이 질문은 못 참을 것 같긴 하다. 헤헤. (출처 : 똘똘이그림일기동요)



가끔 순수하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약 30년 내내 부모 모두와 함께 살아온 환경은 어떤 것일까? 뭐, 나랑 크게 다르겠나- 싶다가도 나는 평생 그것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를 절대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저 무언가 다르다고 해도, 그건 텍스트로 나열하거나 말로 설명하기엔 어렵고 미묘한 영역일 것이라는 짐작만 해 볼 뿐. 다행히 이런 짐작이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 건 이혼 가정임에도 꽤 화목했던 가정환경 덕분인 듯 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불우하진 않았고, 늘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웃음이 있는 집이었다. 사랑받았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잘 자랐다. 어리고 어리숙했던 가치관으로 선택했던 나의 아빠가, 당신의 인생을 깎아내며 부단한 노력으로 나를 책임져 주었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상처가 되는 건 불가피하다. 그 아무리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자녀라도 생채기 하나쯤은 생긴다. 이렇게 얻게 된 상처는 자녀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서 '내 인생에 절대 이혼은 없어, 내 아이에겐 똑같은 상처를 물려주진 않을 거야'와 같은 애착의 마음으로 발현되기도, '우리 집처럼 되느니 결혼 따위 하지 않아'와 같은 냉담한 생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 어떤 것이든 나의 현재와 현실 상황으로부터가 아닌 과거 환경 속 감정적 상처에서 기인한다, 라는 건 문제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다지 없던 것'의 이면에는 분명 생채기가 있었다. (상처까진 아니다. 난 비교적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자녀쓰.) 단순히 아직 나이가 어려서, 결혼할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와 같은 물리적인 이유뿐 아니라 가족관계에 대한 냉담함이 있었다. 여러 이유로 혹시나, 내가 주체가 되어 꾸린 가정도 불안정해지는 일들을 겪게 될까 봐. 그런 상황은 내 인생에 애초에 없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부모의 선택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자식을 떼어놓고 사는 엄마의 삶은 아무래도 행복에 한계가 있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인생이 진심으로 행복하셨기를 또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자녀 때문에 억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건 많이 괴로운 일임을 알만큼은 자랐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주어질 뿐이었던 환경에 기인한 부정적 마음을 갖는 건, 불필요하고 억울한 일임을 깨닫게 될 만큼. 나는 꽤 단단한 꼬마돌이 되었다.



latest?cb=20181225110939&path-prefix=ko 나는야 단단한 꼬마돌! 으른은 대체 언제 될런지!





지금은, 결혼이 하고 싶다.


내가 있어야 하는 곳, 지켜야 하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늘 마음 한켠에 갖고 살아왔던 걱정대로, 결혼 이후 현실은 행복만 하지 않을 수 있고 언젠간 심각한 갈등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졌던 가정환경이 아닌 오롯이 내가 택한 가정환경 속에서, 아빠가 날 사랑했던 것처럼 나도 내 가족을 조건 없이 사랑하며 살아 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나의 부모가 더 이해되는 순간도, 뒤늦은 원망의 마음이 드는 순간도 겪게 되겠지. 그런 순간들을 만나서, 그런 순간에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인생을 살고 싶어 졌다.


따뜻하고 편안한, 오늘이 어떤 하루였더라도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된 울타리. 녹록지 않은 현실과 앞날을 두고 한껏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다 같이 춤을 추는 유쾌한 우리. 내가 만들고 싶은 이런 가정은, 상상만 해도 꽤 행복해진다.




아니, 그렇다고 울타리만 치고 살 수도 없고

어디서 집 한 채만 뚝 떨어졌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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