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으로 멘탈을 무장한 서른이 되었습니다
25년 1월 1일도, 음력으로 첫 날인 설날도, 3월의 새 학기 첫 날도. 약간의 나태함을 리셋하며 새로운 시작을 핑계삼을 수 있는 모든 모먼트가 다 지난 온전한 서른이 되었다. 끈기와 체력은 얄팍해졌고 열정도 많이 미지근해진 지금의 나는, 여전히 퇴근 후 빈둥빈둥 스마트폰이나 보다가 마음 한켠이 불안해져 오면 '딱 오늘까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야. 내일부터는 퇴근 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불안함을 달래는 그런 직장인이다. 더 나아가... 그렇다면 오늘은? 자괴감은 개나 주고 실컷 즐겨-라는 정신 승리까지 가능한, 뻔뻔한 직장인.
그렇다.
서-어른이 된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끈기도, 열정도, 경제력도, 자기 통제력도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행복과 평안을 찾아내고야 마는 '꽤 뻔뻔한 멘탈'에 있다.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건 아무래도 '글'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잠이 안 올 땐, 습관적으로 일기 어플을 켰다. 캄캄한 방 안에서 적당히 센치한 노래를 들으며 감정의 원인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댔다. 가끔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 섞인 편지의 형태로, 어떤 때에는 마치 대선이라도 출마하는 듯한 비장함 가득한 연설문의 형태로. 그렇게 복잡하고 파편적이었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내가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싶은 건지'를 적어냄으로써 충분한 자문자답 과정을 거치고 나면 뭔가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당장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하더라도 부정적 감정의 형태와 원인에 대해 정확히 인지한다는 것은, 감정의 폭풍우든 홍수든 뭐 그런 것에 휩싸일지언정 두 발만큼은 땅에 단단히 딛고 버틸 수 있게 된다는 것과 같다.
좀 웃기지만 내가 적은 글을 다시 읽으며 '뭐야, 내 필력 꽤 괜..?'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우울감으로 열었던 일기 어플을 뿌듯한 마음으로 닫으며 잠에 쉽게 들었던, 매우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ㅋㅋㅋㅋ)
사실, 태생적으로 단순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이런저런 고민과 불안이 가득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쿠팡을 쇼핑하며 세탁 세제의 리터 당 비용을 비교하느라 혈안이 되어있다거나, 모바일 게임(*요즘 최애 게임은 <스쿼드버스터즈>)에서의 짜릿한 승리에 '예쓰!'를 외치고 있다. 다시 '아 맞다, 나 좀 우울했지' 싶다가도 그 와중에 '예쓰!'를 신나게 외쳐버린 나 스스로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버린다.
그런데.....
글을 아무리 써도, 세탁 세제를 아무리 사도, <스쿼드버스터즈>에서 아무리 승리를 해도,
부정적인 감정이 떠나지 않을 땐?
이럴 때는 뭐, 정신승리가 필요한 때다.
정신승리. 심플하게 그냥 다- 나는 잘했고, 이건 최선의 결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무조건적인 자기 위안이다. 불안과 좌절감을 단기간에 극복해 내는데 이만한 멘탈 케어법이 없다. 물론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와 자기 성찰을 통한 실질적인 개선과 행동이 결국 중요하지만, 자기 객관화와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담담한 마음 상태를 만드는 게 먼저다.
불안과 초조, 좌절과 우울감 등으로 인해 침체된 상태로는 나 자신의 감정도, 생각도, 상황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실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다시 들여다보면 난이도 '중' 정도의 문제인데 과열된 불안으로 인해 '해결할 자신이 없는 극악의 난이도'로 취급해 버린다던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음에도 자책하며 자괴감 속으로 계속 빠져들어간다던지. 이런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고 진짜 객관적인 성찰을 위해서라도 당장의 내 마음 속에 가득한 불안을 '일단 달래고 보는' 정신승리는 필수다.
정말 일단 달래고 보는 거다.
<SELF 우쭈쭈 & 어쩌라고 마인드>를 통해서!
상황1. 회사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할 때? -> "뭐, 꼬우면 자르시던가"
상황2. 과거의 선택이 후회될 때? -> "인생에서 누가 봐도 아닌 선택 한번 해본 나.. 제법 줏대 있어"
상황3.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막막한 생각이 들 때? -> "잠깐, 나 아직 서른? 베이비가 따로 없네"
거의 뭐 '멘탈 마스터'라도 된 마냥 적어놨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불안하지 않냐고?
아니......
내가 너무 스스로에게 관대한가 싶어서 불안하고, 이러다 내가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마냥 정신승리만 하느라 발전이 없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스스로 회복력이 높은 편이라 생각하다 보니 그냥 그런 척하는 게 습관이 된 건 아닐까 불안하고, 나도 모르게 꾹꾹 누르고 외면하고만 있는 감정들이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그런 감정들이 언젠가 새어 나오는 날이 오진 않을까 싶어서 불안하다.
그냥 그렇게, 이래도 저래도 열심히 불안해하며 어느 순간 체감한 것 같다.
불안은 결코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감정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을.
어차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불안이라면, 불안에 대한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불안의 근본에는 대개 '더 나은 상황,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마음 위에 '타인과의 비교'가 더해지며 '남보다 뒤처지는 내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되고, '예측 불가한 상황'이 더해지면 '대처하지 못할 내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 불안할 때면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필요한 걱정은 덜어 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 마음'에만 집중하는 것. 이 또한 나만의 정신승리법이다.
'내가 이렇게나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을 끊임없이 원한다니! 나 꽤 기특할지도..?' 라고 생각하기.
(이거야말로 정말 기적의 정신승리다. 후후.)
앞으로도 난 열심히 정신 승리하려 한다. 아마도 치열한 경쟁 사회 속, 백전백승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이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나를 기특해하고, 우울해 하는 나를 치켜세우며.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당하는 게 아니라 손에 잘 쥐고 컨트롤할 수 있는, 대체로 평온한 서른이 되고 싶다. 은은한 불안쯤은 기꺼이 느끼며, 폭주할 기미가 보이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안락한 소파로 불안이를 앉혀둘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