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미안해
한 동안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고 싶어 해서 였다. 중학생이 되니 억지로 학교를 보낼 수도 없다. 아이와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진단서를 떼러 병원에 다녀오면 점심을 먹으러 카페에 갔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었다. 모른다는 말만 하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아 답답했다.
그럴 때 정말 울고 싶다. 알아주고 싶고 이해해 보고 싶었다. 학원도 그만 다니고 싶어 했다. 정말 말 그대로 올스톱!이구나. 아이의 툭툭 내뱉는 말들을 참으면서 나를 꾹꾹 눌렀다. 그러다가 가슴이 답답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훌쩍 거리는 소리도 내고 싶지 않다.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다. 엄마는 강해야 한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자는 척을 하는 것 같다. 시간이 자꾸만 간다. 8시 45분 지금 나가도 지각이다. 차리리 선생님께 전화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학교에서도 우울한 감정들을 담임선생님께서 알고 계셨기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ㅇㅇ 가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컨디션이 안 좋은지 못 일어나서요."
"아 어머님 그럼 진단서 보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ㅇㅇ 좀 바꿔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이를 바꿨다.
"네" "네 " 짧은 대답
"어머니 ㅇㅇ이가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오늘은 그럼 안 오는 걸로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 일까. 학교가 가기 싫은 것도 우리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학원도 아니고 학교를 빠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이를 이해하고 싶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모든 게 나 때문인 것만 같다. 아이의 감정을 조금 더 읽어줄걸. 어렸을 때 징징 된다는 이유로 화를 냈던 내 자신이 생각이 났다.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면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만 다가갔지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줬던 기억이 없다.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인데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곪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언젠가는 다가올 불안에 사춘기도 있었다. 나도 사춘기를 혹독하게 치렀기에 아이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직접 겪고 나니 너무 힘들다.
학교에 안 가고 방에서 기타를 친다 혼자 독학으로 기타를 연습하는 아이였다. 뭐든 다 잘하는 아이다. 기타도 피아노도 운동도 여러 가지 다 평균이상으로 잘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칭찬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뭐든 다 잘하니 기대가 컸던 것 같다. 들여다보니 속속들이 나에게 잘못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달라고 아이는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사춘기는 관계회복의 기회라고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났다. 문만 닫고 들어가던 아이가 거실로 나와서 기타를 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를 연습하고, 내가 좋아하는 잔나비 노래들을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늘은 그 노래를 연주했다 그것도 거실에서, 나는 칭찬해 주었다. 내 마음을 다 누르고 그냥 아이를 보았다. 내가 보지 못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기타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잘 친다"
" 이게 뭘 잘 치는 거야. 못 치는 거지.."
그러더니 몇 곡을 더 연주하는데 너무 오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듣기만 했다. 아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그냥 한 없이 책만 읽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아이가 거부하는 방으로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도 해결이 될 것 같지 않고, 잔소리를 하면 더 멀어질 것 같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남들은 육아를 잘해서 아이와 잘 지내는 것일까. 나는 뭐를 잘못해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신 거라고, 그러니 지금을 잘 이겨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보았다. 위로받고 싶었다. 나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우리 딸이야기가 떠도는 것도 싫다. 지나고 나면 큰 일도 아닌데 동네 아줌마들은 그런 이야기를 가십처럼 떠벌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안다. 그냥 아무랑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상처였다.
김미경 님이 자식을 키우는 경험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너무나 공감되어 눈물이 났다.
아픈 손가락이 있다. 아이가 지하로 10층으로 내려가면 엄마는 지하 1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옆집 엄마들에게 아이 상담하지 말라고,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이야기했다. 본인도 아들이 학교 안 가고 하루종일 게임만 할 때 아이에게 잘 먹고 잘 싼다고 칭찬해줬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베란다에서 소리치고 싶었다고 너무 속이 타서 속상해서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5년을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러고 나니 아들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이 세상밖으로 나오면 더 많이 성장한다고 한다.
위로가 많이 되었다. 가끔은 속이 문드러져 미쳐버릴 것 같다가도 아이가 측은하고 안쓰럽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꾸준히 잘했던 아이가 무슨 이유로 힘들어서 모든 것을 그만하고 싶어 진 걸까. 생각하니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오후가 되니 갑자기 나간다고 옷을 입는다. 학교도 안 가고 또 어디 가냐고 속에서 그런 말들이 맴돌았지만 참았다.
“엄마 선물 사려고요. “
내일은 내 생일이다. 영어학원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아이가 집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하지 않았다. 잔소리를 하게 될 것 같았다. 아이가 한참있다 돌아왔다. 학원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이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아무 소리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아이가 책 한 권을 내민다.
“엄마 책 좋아하잖아. “”타이탄의 도구들"
야망이 가득한 엄마에게 생일선물이라면 나에게 건넸다. 학원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고마워 엄마 이거 읽고 싶었는데.."라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얼굴이 약간 밝아진 듯했다. 그리고 학원을 쨌다. 아빠랑 공포영화를 연속 두 편이나 봤다. 우리 아이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남편도 엄청나게 노력하는 듯했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 그래 그럼 됐다. 나도 마음을 비웠다.
잠을 자러 들어갔다. 오늘도 아이가 밤을 새울까 걱정되었다. 그러다 잠깐 아이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12시가 다 되어서 주방으로 나와봤다. 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작은 쇼핑백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라고 쓰여 있었다.
그 안에는 금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남편 말이 아이가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산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20만 원이 넘는 걸 사가지고 왔는데 남편은 돈 많이 썼다고 잔소리하지 말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ㅇㅇ 아 너무 고마워 근데 엄마는 비싸지 않아도 ㅇㅇ이가 주는 선물은 뭐든 다 좋아"
이 감정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매일 병 주고 약 주는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전재산을 다 털어서 모아둔 돈으로 내 선물을 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로 연습하고 너는 맨날 나만 보고 있었구나.
"엄마가 진짜 미안해"
"네맘을 들여다보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그동안 엄마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용서를 빌고 싶다. 사춘기의 아이와의 대화의 시작은 사과부터라고 한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 내 첫사랑 엄마가 표현을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너를 아프게 했던 것 같아. 더 많이 노력할게 너와 대화하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