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 일지

내가 사춘기 인지 아이가 사춘기 인지

by Myriad


아이가 사춘기가 온 것은 좀 오래전부터 일지 모르겠다. 큰 변화를 못 느꼈던 것 같다. 남편도 나도 예민한 탓에 남편이 더 빨리 느낀 것을 말해주고 공유해 주곤 했다. 가끔은 그런 예민한 것들이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사춘기인가 싶게 가벼운 정도였으니까.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시작됐다. 아이가 입학할 때만 해도 매일이 즐거워 보였다. 학교 갔다 오면 새로운 학교 생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나는 즐겁게 들었으며 그때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고 같이 설레었다.


아이는 인기도 많았다. 고백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다 한 두 달이 지나면서 아이 학교 생활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 같아 보였고, 아이는 매일 짜증을 부리며 나와 거리를 뒀다.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큰 아이라 뭐든 스스로 잘했고, 꾸준히 잘했던 아이인데 점점 변하는 것이 보였다.


학원도 자꾸만 빠지고 싶어 하고, 잘하던 숙제도 학원에서의 성적도 뚝뚝 떨어졌다.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공부를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른 엄마랑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아이가 공부를 원하지 않으면 다른 재능을 찾아줄 거라고 그게 요즘 트렌드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곧잘 따라줬기 때문에 불안이 많은 내가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는 요즘 밤낮이 바뀐 것 같다. 자다가 새벽에 깨면 아이 방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저렇게 잠을 안 자면 학교 생활은 할까. 5학년 때부터 꾸준히 끼던 드림렌즈도 이제는 끼지 않는 듯했다. 안경을 맞추러 가자고 해도 짜증을 부렸다.


같이 어디를 가자고 해도 짜증을 부렸다. 나랑 뭐든 하기 싫구나 생각하니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신기하게도 인스타에 친한 엄마들이 아이들과 홍대에 가서 사진을 찍고 같이 인생 네 컷을 찍었다며 카톡 프사에 올릴 때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왜 저렇게 딸과 못 지내는 걸까. 자책을 하게 되었다.


공허했다. 친한 둘째 아이 엄마들과의 만남도 이제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사춘기에 꽂혀 있었고, 그들을 만날 때면 나는 못난 엄마, 나는 아이를 잘못 키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만남들을 멀리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이가 어릴 때를 곱씹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스스로 뭐든 잘했었다. 그래서 정신이 없는 나라는 엄마는 둘째를 챙기는 것만 신경 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많은 생각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가 어릴 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 상황 하나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서글퍼졌다.


아이는 남자 친구가 생겼고, 남자 친구와 잘 지내는 듯하면서도 학원 끝나고 몰래몰래 만나기도 하고 짬 내서 만나고, 그럴 때마다 나와 남편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잔소리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이와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내 입에서 잔소리가 쏟아 나오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보다. 아주 가뭄에 콩 나듯 아이가 기분이 좋으면 내 옆에 다가왔다. 말도 하고 학원 빼주면 안 되겠냐고 장난식으로 이야기도 하고 나는 아이가 주는 달콤한 말들에 홀라당 넘어가서 학원을 빼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왔다. 이용당한 것만 같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다.


사춘기 책도 다 뒤져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고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게 되었다. 데미안, 싯다르타를 읽고 사춘기의 내면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는 되었지만 적용은 되지 않았다. 얼마 전 유 퀴즈에 나온 김붕년 교수님의 사춘기 아이들을 귀한 손님같이 대하라는 말,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라는 말 그런 말들이 깊게 들어왔다. 그때는 또 큰 울림이 있다가도 이 문제들이 한 걸음 물러나서 봐지지 않았다.


나는 주부로써 살고 있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업을 시작했었다. 그때 아이가 울면서 '엄마 일 안 하면 안 돼?'라고 해서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미안했다. 아이 스스로 잘하고 믿었기 때문에 아이가 힘든지 몰랐다. 나는 그때 정신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일은 일 대로 성과도 못 내고 집에 오면 집안이 엉망진창이고 나는 역시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자연스레 사업을 접게 되었고, 다시 주부로서 살게 된 지 몇 년째, 간간히 프리랜서로 일주일에 두어 번 일도 한다. 가끔은 아직도 내 일이 하고 싶다. 그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것 때문일까? 나의 생각은 과거에 향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 일을 곱씹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최근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진로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 관심이 있는지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된다고 우리 아이는 희망 진로 없음이라고 써냈다고 했다. 신기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것 같고 재주도 많은 것 같은데 희망 진로가 없다니 담임선생님께서 없다고 하면 좀 그러니 탐색 중이라고 쓰면 될 것 같은데 어떠시냐고 물어보셨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끊었다. 담임선생님이 없음이라고 적은 아이가 두 명이 있다고 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우리 아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거슬렸다. 없음 안 되는 건가? 그래도 써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와 이야기했다.


"정말 좋아하는 게 없니? "네가 요즘 관심 있는 거라도 얘기해주면 좋겠어."

그날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잘도 대답해준다.

"응 없어!"

"그래도 생각해봐 너 운동도 좋아하고 기타 치는 것도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하잖아."

"음악이나 체육 쪽으로 쓰면 어때?"

"응 그럼 체육, 난 음악보다 체육이 더 좋아."

"그래 그럼 담임선생님께 말할게"

"응"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체육은 뭘로 써야 할지 물었더니 스포츠 분야라고 쓰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우리 아이 때부터 교육과정이 바뀌는 것은 알고 있었다.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에 대한 노력을 인정해 주겠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이제부터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노력하는 것 그것들을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 욕심이 좀 있다. 삐쩍 말라가지고 힘이 없을 것 같은데 운동을 좋아하고 공으로 하는 운동은 어느 정도 했다. 야구가 하고 싶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했다. 여자 야구부가 있나? 신기했다. 우리 딸은 외모가 여성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하고만 놀고, 운동 좋아하고 거기까지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 그런 여자 애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외모는 다들 쇼트커트에 남자처럼 하고 다녔는데 우리 딸은 여자처럼 하고 다니고 남자 친구도 있다.


잠을 안 자는 게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기분이 안 좋은 게 사춘기 우울증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루를 꼬박 새우고 12시에 핸드폰을 뺏어보기도 하고 컴퓨터 전원 코드만 내 베개 밑에 놓고 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안 잔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잠을 안 자서 일부러 재우지 않는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원래 잠이 없는 아인가 그래도 그렇게 새벽까지 안 자고 학교를 가면 학교 생활은 될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또 늦잠을 잔 것이다 깨워도 보고 소리를 질러봐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뒀다. 그러다 9시에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선생님 아이가 아파서요 죄송해요. 병원 갔다가 보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이고 학교 가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어서 약을 지었다. 의사 선생님이 눈치를 채신 건지 5일 치 약을 지어주시면서 아프면 그때마다 이 약 먹으라고 그러면 학교를 늦게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잘한 걸까? 이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정말 한심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또 아이가 늦잠을 잤다. 간신히 학교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9시 넘어서 학교에 도착했나 보다.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오늘 아이가 9시 넘어서 학교에 와서 지각 처리됩니다. 생활기록부에 올라갈 거고요. 아이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어쩌면 아이도 이 상황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 섞이지 않는 편지를 썼다.


엄마는 네가 고등학교 갈 때 혹시나 하는 불이익 때문에 지금은 물론 꿈이 없지만 네 꿈이 생기고 간절해지면 그런 작은 점수들이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을 했고 그걸로 됐다. 나머지는 아이 몫이다.


헤르만 헤세의 책 싯다르타에서도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싯다르타는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식 문제에 있어서는 어쩌질 못했다. 그래서 나도 그것으로 위안 삼았다. 나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고 아이 때문에 힘든 것은 내가 이 세상에 정말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라는 것을 더 힘든 것은 내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냥 지켜보고 조언해주고 아이가 좋은 길로 가게 끔 응원해 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부드러움은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사실도 안다. 나도 사춘기를 겪어봤고, 놀만큼 놀아봤기에 얼마 전 오랜 친구 나의 20대를 함께 했던 친구하고 오랜만에 톡을 했다. 결혼하고 각자 생활이 바빠 서로의 결혼식 이후에는 잘 만나지 못했다. 그 친구한테 이야기했다.


'사춘기 왜 이렇게 힘드냐?'

'ㅇㅇ아 너도 놀아봤잖아, 사춘기는 건들면 안 돼. 지나가면 되는 거지. 기다려줘.'

그 친구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님 놀아 본 입장에서 이야기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법륜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지금의 나도 잘 살고 있다면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도 나처럼 잘 살게 될 거라고' 그래 나도 잘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러나 이따금 나를 괴롭히는 나의 마음의 소리들이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아이는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자기는 운동할 때가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했다.


'ㅇㅇ 아 , 엄마는 나이가 마흔이어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게 많아, 아직도 엄마는 성공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어. 그런데 너는 이제 고작 14살이야. 엄마보다 30년 가까이 더 많은 시간이 너에게는 있고 너는 아직 어리고 가능성도 많은 나인데 늦었다는 것은 없어. 뭐든 해보고 부딪혀보는 거지. 최선을 다해 보고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너의 가능성을 해보지도 않고 생각만으로 끝내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아이가 알아들었을까?


아이는 요즘도 문을 닫고 나를 밀어낸다. 그러면 더 이상 아이 방을 들어가서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연습장을 보게 되었다.


나는 꿈도 많고 열정도 많은 사람이다. 아직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현실에 벽에 매일 부딪히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이다. 매일 생각한다. 나는 뭐든 뭐든 되고 싶은 마흔에 사춘기를 겪는 사람이다. 매일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책을 읽고 나를 찾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엄마로서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의 연습장의 내용을 봤을 때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문장의 시작은 이거였다.


'엄마는 나의 롤모델이다.'


엄마는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그런 내용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가 해 준 이야기를 듣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쓴 글을 보았구나. 나는 수없이 끄적거리는 내 연습장이 있다. 잘되고 싶고 어디에 살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고 그런 이야기들을 쓰는 내 연습장을 보았나 보다. 내가 우리 아이의 롤모델이라니 세상 부족한 나란 사람 엄마로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 내가 롤모델이라는 것을 보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우리 딸의 마음속 그리고 전두엽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나는 그것을 기다려주고 나는 내 내면과 나의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자 다짐했다.


고맙다 사랑하는 딸,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줘서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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