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작가로 불러주는 곳
다시 브런치로 돌아왔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어서 많은 글을 써는데도 SNS에서는 내 이야기 보다는 그들의 듣고 싶어야 하는 이야기를 써야 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내고 싶었다. 많이도 돌아 온 것 같다. 다시 책을 꾸준히 읽게 되었다.
한 동안 골프에 꽂혀 있었다. 무언가를 그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었나 싶게 열심히 했었다. 골프는 나를 세상밖으로 이끌어 주었다. 골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부터 였다. 아이는 이제 엄마가 필요없다며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괴로워했다. 아이를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나의 분리불안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공허했다. 일도 했었지만 나는 항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모든 일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았다.
불안이 시작되면 답답했고, 힘들었다. 어쩔 줄 몰라 괴로웠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 부딪히는 일, 짜증내는 일들이 많았다. 너무 괴로워 연습장을 다녔다. 화가 나고 힘들면 연습장에서 가서 땀이 나도록 멈춰있는 작은 공을 멀리 보냈다. 내 무거운 감정 가득 작은 공에 싣고 멀리 보내버렸다. 그 때 그 때 위로가 되었지만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아팠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우연히 읽은 헤르만 헤세 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춘기를 겪고 아프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찾는 과정을 나는 다시 반복해 보았고,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따금 한 번씩 화가 나기도 하고 공허한 마음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가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떠나고 붓다를 만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누구나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부모는 따뜻한 사랑과 아이를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하라고 한다.그렇게 바뀌는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와 동일시 생각되는 아이와 분리 해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 분명히 아이와 나는 성장할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