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룰을 하나씩 알게 되는 나이, 마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공존하는 시간

by Myriad

마흔이 되고 한 해가 지날수록, 예전에 억울하고 답답했던 세상의 이치들이 조금씩 이해가 간다. 마음의 저항이 강하게 올 때, 삐뚤어진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아무것도 몰라서 힘주고 살았던 그때가 생각나서 안쓰럽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고 서야 조금씩 힘을 빼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것을 가르쳐 준 건, 책과 운동, 내 삶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배운 건 3가지 룰이었다.


첫 번째 룰은, 시간의 룰이었다.

수영 초보시절, 너무 안 늘던 내 수영실력과 욕심이 겹쳐서, 빨리 잘하고 싶었다. 개인 레슨을 받으면 모든 과정을 건너뛸 거라 생각했다. 결론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수영의 이론을 다 안다 해도 내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축적의 시간, 노력의 시간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삶의 모든 성장은 그것을 계속하는 과정에 있다. 나의 경험과 시간이 들어가야 아주 하나씩 조금씩 그것을 알게 해 준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다.


두 번째 룰은, 고통의 룰이었다.

모든 불행은 지나간다. 아이의 사춘기를 보내며 매일 눈물을 흘리고, 혹시 아이가 죽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매일 밤 아이를 찾아다니는 남편과 나,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여러 날을 보내고, 며칠 전 운전을 하다가 경찰서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아이를 찾아달라며 울면서 달려갔던 경찰서 앞에 신호대기하며 서 있었다.


과거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기억만 남은 상처와 고통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그 고통도 다 지나갔다. 슬픔은 수용성이라는 말, 그때 느꼈다. 문득 내 처지가 불쌍해 수영장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수영장 물에 흘려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고통도 지나 보니 과거가 되어버렸고, 지금은 머릿속 한 구석에 작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세 번째 룰은, 욕망의 룰이었다.

타인의 성공을 질투했다. 나는 왜 이모양인지 자책했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노력했던 시간이 쌓이고 피와 땀이 쌓인 결과를 잊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내가 보탠 것 하나 없는 그들의 시간을 욕심냈었다.


내 노력과 간절함이 없는 결과는 내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남의 성공이 부럽지 않게 되었다.


이곳의 룰은 단기속성은 없다, 고통은 결국 지나간다. 다른 사람의 성공비법을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 삶은 오롯이 내 삶으로만 존재하고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돌이켜보면 20대와 30대는 늘 불안했다. 남들과 비교하는 삶에 나 스스로 자책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40대, 이곳에 온 지 4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곳의 룰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지막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로 마무리할까 한다.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에서, 어쩌면 새로운 것으로, 어쩌면 무(無)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이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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