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맞기
언제쯤 백신 맞는 날짜가 다가올까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가끔은 몸이 조금 안 좋을 때는 혹시 코로나가 걸렸나 걱정부터 앞섰다. 문득 그냥 살짝 지나간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벌써 1년이 넘게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니...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2020년 초만 해도 이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고 곧 끝나겠지 하며 해외여행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버리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백신 내 차례가 되었다. 18세~49세 사전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생일이 7로 끝나는 나는 17일이었다. 잔여백신에도 도전을 해봤지만 매번 내 손가락이 늦어서 두 번째 이상 넘어가지 않았다.
근데 막상 잔여백신이 되면 어쩌지?라는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사전예약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이다. 거부할 수 없이 이제는 맞아야겠다. 생각을 하고 사전예약을 했다. 9월 15일이 가장 빠른 날이었다. 9월 15일에 어쩔 수 없이 맞아야 만 한다. 토요일에 새벽에 깨서 뒹굴 거리고 있는데 9시쯤 되니 잔여백신 문자가 온다. 미리 예약했던 병원의 잔여백신이 뜨기 시작했다. 갑자기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맞을 거 그냥 맞아버리자. 결심이 선 김에 나는 오늘 맞는다 라고 생각했다.
비록 순발력이 안될지라도, 해보자 하고 클릭! 실패 두 번째 클릭! 또 실패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래서 혹시 성공 노하우가 있나 검색을 해보았다. 뇌보다 손이 더 빨라야 한단다. 쓰라린 실패를 몇 번 경험하니 하고 싶지 않다. 뭐 하고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나는 오늘 꼭 화이자를 맞고 만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의 클릭! 이번엔 손도 빨랐는데 무슨 오류인지 계속 로딩만 되고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갔는데 혹시 취소될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있었는데 5분도 지난 듯하여 그냥 포기하고 창을 닫아 버렸다. 토요일은 병원도 일찍 끝나니 11시 25분이 지난 시각이라 더 이상은 도전해도 의미 없고 시간만 보내겠지 생각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려고 버릴 것들을 꺼내고 있었다.
갑자기 문자가 왔다. 질병관리청?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예약하셨습니다' 예약일시 11시라고 쓰여있었다. 지금 시간이 11시 25분인데 11시까지 어떻게 가지?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1시까지 와도 된대서 갑자기 급하게 준비를 했다. 근데 나는 언제 잔여백신에 당첨이 된 걸까? 문자는 왜 이리 늦게 온 걸까? 그리고 씻으면서도 무슨 경품 당첨된 듯 설레었다. 뭘까 이 기분은 뇌가 속고 있는 듯해서 얼른 알려주었다. 너 지금 백신 맞으러 가는 거야. 네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그 백신 말이야... 그런데 이 두 기분이 공존하고 있었다.
설레는 기분은 왜 드는 걸까? 도대체 어디에서 클릭을 해서 됐는지도 모르겠다. 두 개의 포털을 띄워놓고 왔다 갔다 해서 클릭했는데 아무 데서도 확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병원에서 오라고 했으니 일단 가보자. 근데 내가 지도를 많이 줄여놨나 보다. 백신 맞으러 가는 길이 좀 멀다. 2차도 맞으러 가야 하는데 다행히 토요일이라 남편이 운전을 해줬다. 실제 운전경력 11년 차이지만 특이한 지하 주차장은 아직도 너무너무 무섭다. 함부로 내려가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자동차 카메라가 사방으로 되어있어도 식은땀이 나서 도저히 하고 싶지 않다. 남편이 같이 가줘서 주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주차를 하고 처음 가보는 이비인후과에 들어갔다. 너무 떨린다. 간호사 분이 예진표를 주신다. 꼼꼼히 작성하고 열도 쟀다. 이상이 없다. 이제 접종만 하면 된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맞겠다. 주사 맞으러 들어갔는데 주사가 2개가 있어 의사분께 물어보았다.
저 혹시 두 번 맞는 건 아니죠?
뉴스에서 용량 잘 못 맞아 5명분을 한꺼번에 맞았다는 얘기를 본 것 같아서 혹시나 용량이 몇 정도 들어가나 궁금하고 의심도 되고 무서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지금 약도 모자라서 2개 드리고 싶어도 못 맞으세요.'
웃으며 말씀하셨다. 주사 한 개는 다음 손님 꺼였다. 뻐근하다. 주사 맞는 시간이 체감으로 독감 주사보다 길었다. 남편이 타이레놀을 사다 주었다.
그리고 병원에 15분가량 머물다 가라고 하셔서 의자에 앉아서 부작용에 관한 프린트를 주셔서 읽어보았다. 무서웠다. 그래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고, 무언가 큰 숙제를 끝낸 것 같아서 시원함 반 걱정 반 아플까 봐 무서움 반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근처 칼국수집에 들러서 칼국수를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들어왔다. 주말 내내 이번 주말은 아프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랐고 정말 팔이 좀 뻐근했을 뿐 별 일 없이 잘 지나갔다.
일요일까지 누워있다가 저녁이 돼서야 너무 쳐져 있는 내가 싫어서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나오니 밤공기가 시원해진 것 같았다. 탄천을 걷는데 주사 맞은 팔은 여전히 뻐근해서 아프다. 남편이 그래도 72시간 지나기 전에 무리하지 말라고 해서 평소보다 조금 덜 걷다가 들어왔다. 2차가 아프다던데 또 걱정이 된다. 부디 건강하게 코로나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