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5) - 유리 아이

by 숨CHIP

제목 : 유리 아이

작가 :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 최혜진 옮김

출판사 : 이마주




이 책의 사용 연령은 5세 이상입니다. 트레싱지를 활용해 유리처럼 투명한 아이를 표현한 것이 놀랍습니다.

굴뚝 밖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울타리가 쳐진 마당에 나무와 풀이 자라는 아늑한 집에서 유리로 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유리 아이는 맑고 투명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노란 벽으로 손을 뻗으면 노란 손이 되고, 벽과 벽을 연결하여 만든 빨랫줄에 걸린 빨래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이가 집 밖에 나오면 세상과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노을이 지는 해 질 녘에는 노을빛이 되고 새를 안으면 새와 아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아이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세상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거나 무례한 요청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유리 아이와 부모님은 사람들의 낯선 시선과 무례함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유리 아이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그늘이 되고, 풀이되었습니다.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 자연스럽게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유리 아이는 점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들은 아이의 투명한 머리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침대에 편하게 누워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그 상상의 세계가 고스란히 투명한 머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자를 사용해 생각을 감출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잘못하다가는 유리로 된 머리에 상처가 날 수도 있어 사용하지 않나 봅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생각을 볼 수 있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아이가 힘들거나 걱정이 있을 때마다 부모는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왜 힘든지, 무엇 때문에 걱정을 하는지 바로 확인하고 해결해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리 아이도 자랍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생각도 더 많아집니다. 순수했던 어린 날의 맑은 생각 못지않게 부정적인 생각들도 나타납니다. 아이의 생각이 겹쳐 만든 트레싱지에 한 꺼풀씩 보여집니다. 아이의 머리에 보이는 아이의 다른 모습. 한 장을 넘기면 다른 아이의 모습 뒤로 보이는 또 다른 아이의 모습. 그리고 나타나는 반항기가 가득해 보이는 붉은 머리 아이. 유리 아이는 타인의 눈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며 삶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갑니다. 게다가 유리 아이는 무척 예민해서 슬프거나 화가 나면 손톱이나 다리에 금이 갑니다. 팔과 다리, 머리에 금이 가고 벽에 난 균열이 마치 자신의 몸에 금이 난 것처럼 아이의 몸을 파고듭니다.


벽에는 매트리스를 구입하면 배달비를 할인해 준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유리 아이의 슬픔과 괴로움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불편함 만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꾸짖었습니다. 유리 아이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생각의 틀 안에 아이를 구겨 넣으려 했습니다.


생각이라는 걸 좀 참을 수 없니?

그렇게 흉한 것들을 보여 주는 게 창피하지도 않니?


누구도 유리 아이를 이해해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관점과는 다른 검은 새 한 마리만이 유리 아이 곁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유리 아이는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유리 아이는 작은 가방 하나에 짐을 챙겼습니다. 부모님께 인사를 한 뒤 언덕에 자리 잡은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은 팔을 높이 들어 아이를 배웅했습니다. 아이 쪽으로 기울어져 자란 나무 한 그루가 유리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집을 떠난 아이는 눈물을 흘려요. 눈물은 커다란 수정이 되어 흘러요. 또 다른 눈물도 흘러요.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에요. 아이를 닮은 파란 수정 눈물이에요. 유리 아이도 보통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요. 상처받고, 괴로우면 눈물이 나요.


아이는 세상을 두루두루 여행합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아이가 살던 곳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는지 아이의 여행 가방에는 여행한 나라의 지폐와 동전, 기념품, 간식과 부모님 사진, 생필품, 작은 화분과 구두까지 온갖 것들로 가득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유리 아이는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산맥 사이로 난 철길로 기차가 달립니다. 기차의 맨 앞에는 유리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창으로 보이는 아이는 밝은 표정입니다.


버스가 다니고, 큰 나무가 자라는 공원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건물에는 빨래가 걸려있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전달하는 우편배달부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도 보입니다. 그 거리를 유리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걷고 있습니다. 아이는 사람들 속에서 유리 아이로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습니다.


유리 아이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약하고, 투명하고, 예민하지만 빛나는 유리 아이로 성장하려 합니다.


※ 매주 목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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