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빨간 열매
작가 : 이지은
출판사 : 사계절
책 표지를 넘기면 제목과 어울리는 빨간 내지가 나옵니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 속, 아기곰 한 마리가 아침 일찍 어디론가 향합니다. 아기곰의 발자국만이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유일한 흔적입니다.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이 높게 자란 나무들이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한참 동안 숲을 거닐던 아기곰은 커다란 나무에 등을 대고 휴식을 취합니다. 아침부터 돌아다녔지만 먹이를 찾지 못한 아기곰은 배가 고픕니다. 배고픔에 지친 아기곰의 머리 위로 ‘톡’, 무언가가 떨어졌습니다. 빠알간 열매입니다. 두 손에 빨간 열매를 든 아기곰은 입속으로 쏙 집어넣습니다. 맛있습니다. 배가 고프던 차에 맛있게 열매를 먹은 아기곰은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열매를 또 먹고 싶어 꼭대기가 보이지도 않는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봅니다. 나무가 어찌나 높은지 아기곰이 개미처럼 쪼끄맣게 보입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나무 위를 쳐다보던 아기곰은 훌쩍 뛰어올라 나무를 단단히 끌어 앉고는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나뭇가지와 나무 몸통을 네 발로 움켜쥐며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요, 아기곰의 머리 위에 동그랗고 빨간 무언가가 보입니다. 맛있는 빨간 열매인 줄 알았으나 빨간 애벌레입니다. 아기곰은 애벌레에게 인사하고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네발로 나무 기둥을 움켜쥐며 올라가던 중 다시 빨간 물체를 발견합니다. 이번에도 빨간 열매가 아닙니다. 빨간 다람쥐였습니다. 아기곰은 다람쥐에게 인사하고 다시 올라갑니다.
나무 위로 올라가다 보니 한 무리의 빨간 무언가가 나무 기둥을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기곰도 그 방향을 따라 올라갑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빨간 벌집입니다. 아기곰은 벌집에게도 인사하고 다시 길을 오릅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자란 나무를 오르고 또 오릅니다. 너무 높아서 위태로워 보이지만 아기곰은 나무 기둥에 착 달라붙어 안전하게 올라갑니다. 얼마나 높게 올라갔는지 눈 덮인 땅에서 올려다보면 타원형의 까만 점같이 보일 지경입니다.
아기곰이 오르던 나무는 숲에서도 가장 키가 큰 나무였습니다. 아기곰은 마침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빨간 열매를 찾던 곰은 하늘에서 빨간 기운을 느낍니다. 하얗게 눈이 덮인 빽빽한 나무숲을 붉게 물들이며 붉은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아기곰은 엄청나게 큰 빨간 열매를 숲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봅니다.
배가 고픈 아기곰은 세상에서 제일 큰 빨간 열매를 향해 폴짝 몸을 날립니다. 그런데 빨란 열매에 닿기도 전에 아래로 떨어지고 맙니다. 빨갛게 잘 익은 수박에 검은 씨 하나가 콕 박혀있는 모습입니다.
무서워서 두 눈을 가린 채 빨간 벌집을 지나쳐 떨어지고, 몸이 거꾸로 뒤집힌 채 빨간 다람쥐를 지나쳐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어찌나 빨리 떨어지는지 수직으로 뒷발만 보인 채 빨간 애벌레를 순식간에 지나가며 떨어집니다. 빨간 애벌레를 지나쳤으니 이제 곧 땅바닥일 텐데 큰일입니다.
아기곰은 폭신폭신한 검은 털이 가득한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아하! 아기곰이 떨어진 곳은 엄마 곰의 따스한 가슴입니다. 아기곰이 빨간 열매를 찾아 나무로 올라가는 사이에 엄마 곰이 찾으러 왔나 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기곰이 그렇게 찾아다니던 빨간 열매도 잔뜩 구해 놓았습니다. 아기곰은 엄마 품에 안긴 채 형제들과 함께 빨간 열매를 맛있게 먹습니다.
고단한 하루가 지나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아기곰의 형제들은 엄마 품속에서 곤히 잠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빨간 열매인 태양이 지고 그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란 열매인 둥근달이 떠올랐습니다. 잠이 들지 않은 아기곰은 노란 열매가 먹고 싶어 졌습니다. 둥근달이 숲에서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습니다.
책을 덮기 전에 나오는 마지막 내지는 둥근달과 어울리는 노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