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광고 대행사 2층 휴게실에서 모대리(모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마과장(마네)은 말만 저래하고 나가지도 않으면서... 우리끼리 나가서 한번 해볼까?”
커피를 들고 있던 노대리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문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굳이 나갈 이유도 없었고 그렇다고 남아야 할 이유도 분명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일은 계속 들어왔고 결과도 나왔다. 크게 틀린 건 없었다. 그래서 더 애매했다.
그러다 결국 몇 명이 먼저 움직였다. 모대리가 나갔고 노대리도 따라 나가서 스타트업을 차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생각차이가 났다. 그리고 다들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대리는 끝까지 버티려고 노력했다.
대리(카미유 피사로)라고 하기에는 사진이....
피사로는 1830년에 태어나 카리브해 생토마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며 유럽 중심부와는 다른 환경에서 출발했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와 1860년대부터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다. 1869년 <루브시엔느의 길>을 보면 이 시기의 화풍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안정적으로 옮기고 색은 절제되어 있다. 아직은 기존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1870년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모네와 함께 지낸다. 그곳에서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접하게 된다. 터너의 그림들은 안갯속에서 색이 퍼지고 대상이 흐려지는 느낌이다. 이 시기 이후 피사로의 그림에서 색이 밝아지고 붓질이 잘게 나뉘는 변화가 나타난다.
1870년대 중반 이후 그는 다른 인상파 화가처럼 외광 아래에서 작업한다. 1873년 <퐁투아즈의 서리>에서는 색이 밝아지고 붓질이 짧게 반복된다.
눈앞에서 변하는 빛을 그대로 붙잡으려는 시도였다. 이 시기 그는 인상파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며 중심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인상파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여 중심에서 활동하게 된다.
인상파 화가들은 1874년부터 자체 전시를 시작한다. 기존 살롱을 벗어나 만든 일종의 별도 전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어떻게 그릴 것인지 등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달랐다. 실제로 몇몇 화가들은 중간에 전시를 떠나기도 하고 다시 살롱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피사로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열린 인상파 전시 8회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화가였다.
빛을 나눠서 보기 시작한다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빛이 어떻게 색으로 나뉘는지에 관심을 둔다. 쇠라와 시냐크와의 교류 속에서 색을 과학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하는데, 점묘화로 발전된다. 점묘화는 서로 다른 색을 나란히 두면 눈 안에서 다시 섞여 보인다는 개념을 가지고 점을 찍어서 그림에 형태 없이 색으로만 표현하는 그림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픽셀과 유사한데 색을 미리 섞는 게 아니라 눈 안에서 합쳐지게 만드는 원리와 비슷하다.
1887년 <에라니의 수확>은 그의 대표적인 점묘화이다.
가까이서 보면 흩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색이 이어진다. 빛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다루려는 시도였다.
이 방식도 오래 유지하지 않는다. 1896년 <루앙 항구>에서는 점과 붓질이 섞여 있다.
그는 밝기는 유지되지만 표현은 훨씬 부드러워지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피사로는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에 비해 이름이 다소 덜 알려진 인상파 화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좀 약하고 일관성이 없다는 평도 있다. 이는 외광으로 시작했다가 색을 나누고 다시 푸는 변화를 많이 주었기 때문에 정체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화풍을 계속 연구하면서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 즉, 후기인상파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될 수가 있었지 않나 싶다.
또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응방식도 흥미롭다. 신 기술이 나오면 사람들은 보통 써보는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 정도로 나뉘게 되는데. 아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서 기술 자체의 원리를 분해해 버리는 경우의 사람도 있다. 피사로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전기 인상파 화가들이 사진이라는 신 기술을 자신의 예술에 어떻게든 관계해 보려고 시도했다면, 그는 사진기술 안의 광학을 파고들어서 자신의 예술에 접목시키려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