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미 찾으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콜라보레이션의 정석 르누아르

by ODG

아름다움이라는 북극성


광고 대행사 2층 회의실 구석 자리에 르 사원이 앉아 있었다. 그는 십 년째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해왔고 무엇보다 이 일이 적성에 맞았다.


그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좋았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는 얼굴을 보는 것, 완성된 광고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것. 그것이 르 사원이 일하는 이유였다.


어느 날 회의실에서 마 과장(마네)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회사 방식은 낡았습니다. 칸 광고제 가서 보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더라고요. 우리도 바꿔야 합니다." 그 옆에서 모 대리(모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요즘 야외 촬영 위주로 작업해 보니까 훨씬 생생하더라고요. 실내 스튜디오에서만 찍으면 한계가 있어요."


르 사원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마 과장과 모 대리를 따라가면 아름다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도 같은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공예에서 시작한 사람


르누아르는 처음부터 화가가 아니었다. 1841년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때 도자기 공방에 들어가 견습공으로 일했다. 꽃무늬와 장식을 그리는 일이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금방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르누아르는 공예 작업을 통해 투명한 색감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도자기 위에 올라가는 색은 구워지면서 빛을 품는다. 그 빛나는 표면의 비밀을 그는 손끝으로 익혔다. 이 경험이 훗날 그의 색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1860년대 후반 르누아르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69년에 그린 <라 그르누예르>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라 그르누예르, 르누아르 99.7 x 74.6 cm 1869


센 강변의 보트 대여소를 그린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는 물의 반짝임과 사람들의 유쾌한 분위기를 담았다.


빛을 쫓던 시간


1870년대 르누아르는 모네 등과 함께 작업하며 인상파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야외로 나가 빛을 그렸다. 스튜디오의 인공조명이 아니라 자연광 아래에서 색의 변화를 포착했다. 르누아르는 이 방식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1876년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내가 르누아르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데 이 그림은 인상파 시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르누아르 131 x 175 cm 1876


몽마르트르 언덕의 야외 무도회장,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사람들의 옷과 얼굴에 얼룩덜룩하게 떨어진다. 색은 밝아지고 빛이 화면을 지배한다. 같은 해 그린 <그네>도 마찬가지다.


그네, 르누아르 92 x 73 cm 1876


나무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파편들이 여인의 드레스 위에서 춤춘다.


이 시기 르누아르의 팔레트를 보면 흥미롭다. 그는 강한 색을 거의 쓰지 않았다. 피치 블랙, 매더 레이크, 레드 오커, 코발트블루, 비리디안, 그린 어스, 네이플스 옐로, 옐로 오커, 로우 시에나, 아이보리 블랙. 색의 수도 적고 강렬한 색도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화려하다. 비결은 색의 병치에 있었다. 색을 섞지 않고 나란히 놓으면 우리 눈이 알아서 섞어준다. 빨강 옆에 노랑을 놓으면 주황이 보인다. 이것이 인상파의 색채 이론이다.


화면은 생생해졌다.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르누아르는 빛을 통해 아름다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빛을 강조하다 보니 대상의 윤곽이 무너져 보였다. 색은 화려해졌지만 형태가 선명해 보이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자신이 기초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본 것


1881년 르누아르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는데 로마에서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았다. 바티칸 궁전의 프레스코화 앞에 서서 그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명확한 윤곽선, 단단한 형태, 균형 잡힌 구도, 수백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균형감.


파리로 돌아온 르누아르는 앵그르의 그림을 다시 찾아봤다.


샘,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163 x 80 cm 1856


물동이를 든 여인의 몸은 완벽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빛이 없어도 형태만으로 아름다웠다. 르누아르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기존 방식을 다시 이행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르누아르는 형태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1875년의 <햇빛 속의 누드>와 1885년에 그린 <머리를 가다듬는 욕녀>를 비교해 보면 변화가 확연하다.


햇빛 속의 누드, 르누아르 81 x 65 cm1875
머리를 가다듬는 욕녀, 르누아르 93 x 74 cm 1885


<햇빛 속의 누드>는 흩어져 있는 빛이 형태를 분산시키고 인물도 흐릿하다. 반면 <머리를 가다듬는 욕녀>의 여인은 흐릿한 배경 가운데 윤곽선이 분명하다. 색조도 간결해졌다. 이것은 이탈리아 여행 중 감명받았던 폼페이 벽화의 영향이다. 단 몇 가지 색으로 풍부한 효과를 내는 프레스코화의 비밀을 그는 연구했다.


1884년부터 1887년까지 3년에 걸쳐 완성한 <대목욕하는 여인들 >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대 목욕하는 여인들, 르누아르 117 x 170 cm 1884-1887


이 그림에서 인체의 윤곽이 다시 강조된다. 이전보다 형태가 단단해지고 구성이 안정된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답은 아니었다. 형태는 회복되었지만 화면이 딱딱해졌다. 생생함이 사라졌다. 인상파 시절의 그 살아있는 느낌이 없었다. 르누아르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두 가지를 함께 쓰는 법


1890년대 이후 르누아르는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

초기 인상파에서는 색이 형태를 대신했다면 후기에는 형태 위에 색이 얹힌다.


1892년에 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에서 이 변화가 드러난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 르누아르 116 x 90 cm 1892


두 소녀의 형태는 명확하다. 하지만 표면은 부드럽게 처리된다. 선은 유지되지만 빛도 살아있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색채를 보면 더 흥미롭다. 이 시기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진주모 빛이 감돈다. 진주조개껍데기의 은은한 광택 같은 색이다. 1892년의 <목욕하는 처녀>나 1895년의 <긴 머리의 목욕하는 여인>을 보면 살결에 수많은 색의 뉘앙스가 겹쳐 있다. 분홍, 주황, 노랑, 연두가 한 몸에 공존한다. 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형태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목욕하는 처녀, 르누아르 81.5 x 65 cm 1892
긴 머리의 목욕하는 여인, 르누아르 82 x 65 cm 1895


만년의 르누아르는 붉은색의 시기를 연다. 1918년의 <목욕하는 여인들>을 보면 루벤스가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 썼던 붉은색과 주홍색이 화면을 지배한다.


목욕하는 여인들, 르누아르 60cm × 110cm 1918


죽음을 앞둔 화가의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명력이 넘친다. 색채는 화려하고 형태는 풍만하다. 두 가지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아름다움이라는 북극성


마네가 시스템과 개인 사이에서 양가감정을 느끼고 드가가 재능 없음을 훈련으로 극복했다면 르누아르는 본질을 지키기 위해 방법론을 바꾼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한 번도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름다움이라는 북극성.


방법이 바뀌어도 북극성은 그 자리에 있었다. 르누아르는 그 별을 따라간 사람이다.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맞는지,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게 맞는지. AI가 나오면 AI를 써야 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야 하는 건 아닌지. 르누아르의 예술활동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명확하면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어떤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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