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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동석 Apr 10. 2023

무식하게 10년을 참았다.

껄끄러운 생활을 무식하게 참아내며 살았다. 

찌르는 고통과 거슬리는 불편함은  과거에 겪었던 고통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뽑지 못하고  참아 낼 수 있었다. 진작 보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제은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아픔이 10년 전 고통을 덮어 버리기 전에 하루빨리 결정해야 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약냄새가 제코를 찔렀다. 귀속으로 들려 오늘 바람 소리는 10년 전 내 몸속에 있는 기억을 돌리고 있었다. 차가운 의자에 앉자마자 주변에 연장 들이 보였다. 뽀쪽하고 날카롭게 쏟은 날은 절 더 긴장시켜고 몸을 경직하게 만들었다. 살짝만 찔려도 소리 없이 고통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앵 앵 거리는 진동소리에  옆사람들이 비병을 지르는 소리 때문에 내 피는 머리끝까지 올랐다.

 

손끝이 찌릿찌릿 저려오기 시작했다. 옆구리와 목덜미 사이로 땀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땀방울이 미세하게 쏟아 오르는 소리가 늦껴졌다, 뼈 사이로 갈리는 듯한 진동소리, 텅 빈 머리두개골이 쿵쿵 울려대는 소리는 날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입에 고여있는 침을 꿀꺽하고 삼켰더니 조금은 긴장이 내려가는 듯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보라색 가운을 입고 여자 한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이제 마치 들어갑니다.”

“아프면 왼손을 높이 올려주세요”


1,2,3,4,5초  그리고 15초 정도 지났을까,  입이 얼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안에 있는 물을 뱉고, 왼팔 주변에 놓여있는 종이컵을 들고 입을 행거 냈다. 입에서 뿜어 나오는 물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고장 난 분수처럼 

막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마음에 준비를 해야 했다. 끔찍한 고통을 참야 내야 한다는 것도, 이긴 시간을 또 고통과 함께 참아내야 한다는 것도. 정말 10년을 참았다. 지금 까지 이 불편함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끔찍한 고통을 다시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작해야 한다는 걸 느꼈을 때는 어금니에 마치가 시작되었고  이 끔찍한 고통이 무뎌질 때였다. 지금은 과거에 그 첫사랑 같은 고통을 오로지 혼자 견뎌내야 하기에 나만의 통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중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거면 이별을 무서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뒤의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하지 못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저 역시나 상처받으면 어쩌지 하고 늘 생각이 엎었다. " 괴롭겠지" 늘 이런 고민이 쌓아뒀다. 사랑이든, 새로운 일이든 우리는 너무 많은 과거의 고통 속에서 지금 현재의 문제를 다시 꺼낸다.  


왜 사랑니라고 말하는지도 정확하게 알 것 같다. 전 두 번의 사랑니 발치가 받았다. 위쪽 발취는 쉽께 뽑혔지만 아래턱에 난 사랑니는 많이 희어져 있어 살을 찢어야 하고, 실바늘로 꼼 해야 하고, 수일동안에 끔찍한 첫사랑 같은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뽑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 잘했어, 진작 뽑았으면, 너무 편해 , 너무 좋아......


사람이 그렇다. 그 10년 동안 너무 많은 불편함을 쌓아놓고 큰 고통이 밀려오기만을 기다리며 같이 살았으니 말이다. 편함이 있다면 참지 말고 하루빨리 시작했으면  한다. 저처럼 무식하게 껄끄러운 불편함을 달고 10년 동안 

견디면서 살지 않았으면 한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큰 고통을 주게 된다. 그 쌓인것들이 더 큰 고통으로 돌려주게 될것이다. 그러니 순간의 고통이 무서워 참지 않았으면 한다. 이 고통은 정말 한순간이라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이 고통을 아쉬워한다면 계속 쌓아두고 살아갈 것이다. 다시는 사랑하지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진: Unsplash의 engin aky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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