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떠올려보건데 아무런 이벤트가 없어진 삶은
무료하고 활력이 낮은듯...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리 기쁜줄도 모르고, 슬픈 일이 일어나도 그리 아픈 줄도 모른채 무감각하게 지나쳐왔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실 어려서부터 크리스마스에도 문득 떠오르는 선물은 머리맡에 아버지가 놓아주셨던 '전병'이었을 만큼 크게 이렇다할 이벤트는 없었다.
그것도 언니와 나, 동생...모두 다 똑같은 개수의 같은 종류의 과자였다. 그렇게 깡촌에서, 그곳이 얼마나 깊은 시골인 줄도 모르고 연중 한 번 가는 봄소풍 때 입었던 노랑원피스의 설렘을 오래토록 간직하며... 그렇게 자랐다. 생일파티도 없었다.
엄마는 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막내를 낳으셨고, 우린 자매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유치원에 다니거나 안 다니거나...하며 동네에서 뛰어노는 일상이 전부였다.
모내기를 막 마친 논두렁에 알을 낳는 개구리들, 그 개구리가 낳은 올챙이들을 건져내며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그땐 최고의 행복 같았다.
주인 모를 밭에서 캐먹은 감자맛은 평생 잊지못할
고소한 꿀맛, 아니 그보다도 훨씬 맛있는 특별한 맛이었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그렇게 맛있는 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손수 삶아주시고,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밭을 건드렸다는 걸 아신
주인 아저씨께도 엄마가 된통 야단을 맞으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말하지 못하고 자란 그때의...
일순간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듯하였으나
아련한 참회의 시간으로 묻혀버린...
그 시절이 내게는 어쩌면 가장 큰 이벤트였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매일 매순간이 통째로 다
이벤트였던 것이다!
스무살이 갓 넘어갈 때 성인이 되는기쁨보다 큰 감정이 더이상 장난을 실수로, 무지로, 가여삐 여겨 용서해 줄 어른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물론, 겪어보지도 않고 지레 앞서서 걱정부터 끌어안은 나의 기우이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생각을 다져가며 나를 스스로 키워내야 건장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건 맞았다.
나약하고 의존력만 비대해진 성격으로는 제대로 서 있을 곳조차 만날 수 없었으니까...
그런 시절에 이벤트는 세상 시름 다 잊을 수 있는 낭만이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컴컴한 어둠속에서도, 배가 고파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건 그 순간순간의 정취를 만끽하고 그때그때의 기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낭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어른들이 내세우는 올바른 가치관을 약간은 비틀어보면서... 이렇게 다르게 봐도 괜찮지!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아보면 참 괜찮은 세상이지! 하면서... 점점 아름답고 예쁜 생각 속에 빠지려하다
결혼을 했다.
나의 감상이나 지난 잘못이나 부족함보다
나쁜 건 나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있는 거였다.
이때부턴 바지런히...어울리기 위해 나를 깍고 또 다듬어가는 숱한 의식적 공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젠...
삶에 더 이상 큰 동요를 일으킬만한
이벤트 따윈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이제...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타인을 위해 베푸는,
함께 공유하며 웃고 떠드는,
나눌 수 있는 어떤 콘텐츠로 만들어가야 한다.
자연 속에서의 감상과 인간애 사이에서의 감흥은
그렇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소소한 이야기에서 영상으로.
몇 마디 대회나 표정보단
정확한 전달이 가능한 글로써...
이렇게 시나브로, 변환되어져 간다.
오래 살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