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알게 된
가장 무서운 말

- 어떻게 떠날지 알 수 없다면 3편-

by 민하


석이는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종합병원에 입원한 첫날만 해도 걸어서 들어왔다. 입원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검사할 때도 침대로 이동했다. 다리에 힘이 없는 것 같다. 담당의사는 소변 줄까지 꽂았다. 우리는 왜 그러는지 의아했지만 의사는 환자가 요의를 느끼지 못해 화장실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점심시간마다 가서 밥을 먹여주었다. 원래도 말이 없던 석이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밥 먹는 양도 반도 안 되게 줄었다. 그나마도 떠먹여 주어야 했다. 처음엔 말하기 싫고, 먹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충분히 그럴 테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다. 매일매일 식단이 달라져갔다. 점점 유동식으로 변하고 있다.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밥에서 죽으로 변했다. 이미 목의 말하는 기능과 삼키는 기능이 빠르게 퇴화하고 있다. 오른쪽 팔과 다리도 움직이는 게 힘들어져갔다.

입원하고 나서 맞는 첫 번째 주말이었다. 나는 1박 2일의 짐을 싸서 병원으로 갔다.

“누나 왔어?”

이상하게도 그날은 석이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동안의 무표정한 표정이 아니라 무언가 밝은 기운이 넘쳤다. 저녁을 먹은 후 석이는 내게 말했다.

“나 산부인과 의사로 이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

“아. 그래. 그랬지.”

석이는 산부인과에서 일하니까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다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좀 봐. 내가 받은 쌍둥이야.”

석이가 보고 있는 곳에는 석이의 다리만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 진짜 예쁘네.”

석이는 나는 인턴이라 여기서 밤새야 하니까 누나는 이제 가라고 했다. 같이 있어야 해서 나도 인턴이라고 함께 밤새야 한다고 둘러댔다. 석이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다시 잠에 빠졌다.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뇌종양은 머리 쪽에 이상이 있는 병이라서 환상을 볼 수도 있다.

아마 석이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 게임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석이는 머리가 좋았다. 웬만한 것은 한 번만 보아도 기억을 했다.


저녁때가 넘었는데도 석이가 집에 안 들어왔다. 엄마는 4살밖에 안된 귀한 아들을 찾아 파출소며 동네를 찾아다녔다. 밤늦게 서야 2킬로미터 떨어진 시장 한 구석 신발가게에서 석이를 발견했다. 신발가게 아주머니가 밥을 차려주어 석이는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석이는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고 두 시간도 넘게 걸어서 엄마가 데려갔던 신발가게를 찾아낸 것이다.


다음날, 석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져있다. 삼분의 일도 안 먹었는데 그만 됐다고 손을 저었다. 자신이 환자라는 것을, 여기가 병원이란 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 같다. 석이는 무슨 병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어쨌든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상 큰 병이라는 것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더군다나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심각하다는 것도 알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자기의 병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석이가 성인이니까 솔직하게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잠만 자는 데다가 깨어있을 때조차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을 해줄 수 없다.

석이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잠에 빠져있다. 우리는 곁에 있다가 석이가 뒤척이면 아프냐고 물어보고 심하면 간호사를 불러 진통제를 달라고 하는 게 일과였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감에 다라 점점 두통이 심해져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자는 것인지, 진통제에 취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종합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드디어 조직검사 날이 되었다. 내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신경은 전부 병원으로 쏠려있었다. 원래 수술시간은 2시간 정도였지만 3시간 반도 넘게 걸렸다. 진희에게 병실로 왔다는 메시지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붕대에 감긴 석이의 머리에서 새어 나온 피가 베개에 묻어있다. 석이의 뒤통수에 의료용 스테이플러 심이 박혀있다. 수술 상처 때문에 똑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다. 나는 마취에 취해 잠든 석이의 뒤통수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빡빡 깎아 까칠한 감촉이 느껴졌다.


“네 동생이야? 귀엽다.”

“예쁘다”

친구들은 세 살이 된 석이를 보고 다들 한 번씩 안아본다고 소란을 피웠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동네 뒷산으로 놀러 왔다. 석이는 하얀 피부에 통통해서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났다. 언니는 부모님이 석이만 예뻐한다고 미워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석이의 손목에 토끼풀로 만든 팔찌도 해주고 강아지풀도 가득 꺾어주었다.

석이가 중, 고등학교 때 나는 이미 공무원이어서 석이의 우유를 배달시켰고 용돈도 내 담당이었다.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석이의 키가 컸다. 엄마, 아빠가 다 작아서 유전자로는 나올 수 없는 키였다. 가족들이 석이의 키를 말할 때마다 나는 이유 없이 내심 뿌듯했다.


석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석이 머리 깎아도 예쁘네. 두상이 예뻐서.”

석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곳에서 함께 있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지난해 엄마의 장례식 이후 8개월 만에 석이의 암이라니 도대체 우리 집이 망하려고 하는 걸까?

석이는 결혼도 하지 않아 주된 보호자에 내 이름이 적혀있다. 이제야 직장도 자리 잡혔고 운동도 하고 괜찮았는데 말도 안 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나는 아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 출퇴근에 더해 병원에 매일 간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출퇴근할 때 항상 켜던 차의 오디오를 더 이상 켤 수 없고 매일 공부하던 영어 프로그램도 들을 수 없다.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석이처럼 나도 그냥 숨만 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조직 검사한 지 8일 만에야 의사는 뇌종양 중에서도 신경교종일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확한 진단은 하루, 이틀 정도 더 걸린다고 한다. 석이의 종양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져갔고 그에 따라 증세도 하루하루 달라져갔다. 마음이 급한 우리에게 그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벌써 처음에 입원한 병원까지 합치면 3주가 다되어가고 있다.

나는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뇌종양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뇌종양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확한 진단을 한 후 종양을 수술로 제거하는 것이다. 암 재발 발생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암 조직보다 더 많은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뇌는 섬세하고 복잡한 조직이라서 제거 수술 자체가 어렵다. 수술을 한 이후에 몇 달 동안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하게 된다.

신경교종은 종양을 구성하는 주된 세포에 따라 성상세포종, 핍 지교 세포종, 상의 세포종 등으로 분류된다. 성상세포종은 1단계에서 4단계로 구분되고 1단계는 양성종양이며 수술만으로도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신경교종 중에서 4단계에 해당하는 가장 악성은 교모세포종이다.

뇌간(*뇌줄기라고도 부르는 부위로 뇌의 뒷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척수로 이어진다)과 뇌척수에 있는 신경 교세포(*중추 신경계의 조직을 지지하는 세포로 뇌와 척수의 내부에서 신경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하고 신경세포의 활동에 적합한 화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는 세포)에 종양이 생긴 것으로 발병 시 수술과 치료가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평균 1년의 생존기간을 가지는, 현재까지의 기록으로 치사율 100%의 암이다.

‘수술과 치료가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뇌간과 뇌척수에 생긴 종양은 완전히 제거가 어렵고 제거한다고 해도 금방 다시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수술조차도 치료한다는 의미보다는 종양의 성장을 늦추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21세기에 이런 암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100퍼센트의 치사율과 1년 이하의 생존기간이라니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인터넷 자료에는 인간이 걸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암이라고 쓰여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컴퓨터를 껐다. 이미 10시, 퇴근시간을 넘긴 지 오래다. 그때 진희의 카톡이 울렸다.

「교모세포종이래」

세상에 태어나 알게 된 가장 무서운 말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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