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을 떠난 것은 2004년 중국 상해로 유학을 간 것이 처음이었다. 아직 학생 신분이라 그런지 1년동안 집을 떠나 있으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전화로 종종 울먹거리기도 했고 김해 공항에서 헤어질 때에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2009년 서울 대학원 입학을 위해 집을 떠난 것이 두 번째였다. 부친으로부터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못난 자식이라는 눈총을 따갑게 받고 있을 때라 어디로든 떠나는 것이 너무나도 홀가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전세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보증금을 송금했다. 대학원 비용도 스스로 벌어서 충당했고 모든 생활비도 스스로 해결하며 절대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서울 건설사에 입사했는데 20대 중반을 갓 넘긴터라 많은 직원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업무 적응도 빨랐고 어느덧 내가 서울의 커리어 우먼이 된 것 같았다. 난생처음 서울에 온 터라 주말이면 서울 이곳 저곳을 싸돌아 다녔다. 동대문, 남대문, 광화문, 경복궁, 명동, 영등포, 마로니에공원, 홍대,,, TV로만 보던 곳들을 직접 보러 다녔다. 서울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부산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극심한 교통체증과 지하철 푸시맨, 넘쳐나는 사람들... 서울은 내게 더 이상 환상의 도시가 아니었다. 생활비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일터일 뿐이었다.
주중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을 했다. 새벽 5시 일어나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한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 잔과 PC 모니터의 메일에 하나하나 답변해 나간다. 팀원들과 피터지게 회의하고 맛난 점심을 먹은 다음 또 다시 아메리카노를 빨아댄다. 매일 일상은 다조로웠지만 주말은 내게 방랑할 기회를 허용해 주었다. 결혼 한 후에도 나는 항상 똥띠를 이끌고 이곳 저곳을 싸돌아 다닌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삭신이 쑤셔서 있을 수가 없다. 단 1시간이라도 좋으니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야 살 것만 같다.
* 인천광역시
변압기 제조 회사의 해외영업 사원일 때에는 제품 입회시험을 위하여 미국과 캐나다 발주처 엔지니어들이 자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보통 주말에 픽업을 해서는 월미도,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을왕리해수욕장 등을 들렀다. 을왕리는 내가 부산에 살 때 자주 들르는 광안리, 해운대, 다대포, 송정 등 해수욕장에 비하면 어디 아낙네들이 걸레질하는 빨래터나 다름이 없었다. 한껏 기대를 가지고 방문한 하는 그 보잘것 없음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30분도 되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결혼 전 5월 5일 어린이날에 월미도 공원에 방문하려고 외대역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달려간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두고 내린 모양이다. 40대 중반의 목소리가 받더니 1번 출구로 오란다. 내심 5만원 내외의 사례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달려 갔다. 그렇게 만난 상대방은 양 손에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애가 둘이니 각 5만원씩 사례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을 심어줄 수가 없어 말다툼 대신 10만원 건네고 뒤로 돌아보지 않고 왔다. 인천은 항구 도시라 부산과도 많이 닮았다. 수도권 도시이기는 하지만 뭔가 투박하고 구불구불하고 뭔가 꼬릿꼬릿한. 오히려 서울 시내보다는 인천의 이러한 면모들에 정이 가는 것은 왜일까 크크.
* 한라산 백록담
한라산은 4번 오른 경험이 있다. 2번은 정상 코스가 아니었고, 2번은 정상 코스였다. 60대 부모 그리고 똥띠와 함께 백록담에 도전했다. 겨울이라 아이젠을 착용해도 데크가 깔려 있는 부분들은 꽤나 미끄러웠다. 신정 연휴인터라 내 앞에 있는 등산객의 엉덩이만 바라보고 올라서 주변 경치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모친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 때를 놓칠 수 없었던 부친은 기어코 혼자 백록담을 보겠다고 달려 갔다. 그렇게 부친이 휴게소와 백록담을 왕복할 때 나머지 3명은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제주 시내에서 미리 준비해 온 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백록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등산 후 먹는 그 맛은 언제나 잊을 수가 없다.
2023년까지 코로나 때문에 해외 여행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똥띠와 나는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난번 이루지 못한 백록담을 꼭 보겠다는 일념으로 출발했다. 헌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우비를 입었지만 속옷까지 홀딱 젖었다. 하지만 내 앞으로, 그리고 내 뒤로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에 힘을 받아 정상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게 뭐람? 백록담 앞에 세워져 있는 청승맞은 정승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맑은 하늘 아래 백록담을 보기 위해 또 다시 이 길을 올라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아직 덕을 적게 쌓았나 보다. 무리하게 오른터라 내려오는 길에 무릎이 고장나 버렸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운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관절에 탈이 났다. 하지만 이번 여행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자리돔회를 먹기 위해 다시 힘을 내 보았다. 서귀포 시내는 한라산과는 달리 언제 그랬냐는듯이 따가운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이 무릎이 요절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백록담에 오르 겠다는 다짐을 하며 자리회를 입안에 쑤셔 넣었다.
* 진안 마이산 & 시골순대
진안 마이산이 유명하다고 해서 약 10년전 똥띠랑 당일 여행을 한 적 있다. 3일 연휴를 맞아 진안을 다시 방문해 보았다. 이번엔 마이산 탑사가 아니라 진안고원 둘레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아쉽게도 진안 탑사 사찰길에 있는 대왕꽤배기를 먹을 수 없었다. 여름에 바라보는 마이산을 겨울의 그것보다는 훨씬 싱그러웠다. 진안만남쉼터에 주차를 하고 관광정보센터-사양제-연인의길-천왕문-은수사-탑사-은천마을-서촌마을-화전교-원동촌마을을 거쳐 마령면사무소까지 약 13km를 걸었다. 산과 들을 지나칠 때마다 마이산의 나귀 꼭지가 들락날락 했다. 3시간 반이 지날 무렵 종점에 도착했다. 운이 좋게도 할머님과 할아버지 몇 분이 정류장 앞에 서 계셨다. 이 말인 즉슨 곧 버스가 도착한다는 의미다. 역시나 10분이 지나자 마을버스가 도착했고 나와 똥띠는 아주 즐겁게 시내에 돌아왔다. 2시 반에 마감한다는 백종원 맛집 순대국밥집으로 내달렸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2시 정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는 약 20명의 대기자가 있었다. 기다길고 기다리던 우리 차례가 되었고 드디어 내 인생 최고의 순대국밥을 맛볼 수 있는 영예를 가질 수 있었다. 포장해 가자고 하는 똥띠를 말리며 임실 숙소로 차를 몰았다.
* 전주 한옥마을 & 남부시장 야시장
전주는 친구들과, 똥띠와, 부모님과 4번 이상은 방문해 본 곳이다. 진안과 가깝기도 하고 전주국가유산야행 축제를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전주 지내는 행사와 연휴 때문에 숙소 비용이 평소보다 2~3배는 높았다. 그래서 우리는 임실과 전주 시내 중간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외국인 계절 근로자가 장기 숙박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하루 4만원에 구운 달걀까지 챙겨 주시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는 그런....ㅎㅎ 나와 똥띠만 묵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전주 한옥마을 인근은 주차 전쟁이었다. 올 때마다 이러했던 듯. 기대하지 않았지만 야행 프로그램은 일부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마을 거리의 먹거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주가 지역 특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풍년제과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줄 서지 않고 밥 먹을 곳이 전혀 없어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더 가관이었다. 각종 먹거리를 요리해서 판매하고 있었는데 환기가 전혀 되지 않고 이동 통로가 부족하여 안전 사고가 발생할 것만 같았다. 화기를 매대마다 사용하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이를 관리하는 관리자나 공무원이 전혀 보이지 않아 우리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결국엔 편의점에서 맥주와 스낵 하나를 집어 들고 나와 길거리 벤치에서 목을 축이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10년이 지나도 풍년제과 초코파이는 여전히 맛났다.
* 임실 다슬기정식, 치즈테마파크, 장미원
지난밤 저녁이 부실해서 임실에서의 아침밥을 거하게 먹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임실 시내로 가보기로 했다. 조그마한 동네라 30분도 채 되지 않아 산책을 마쳤다. 나와 똥띠는 여행을 할 때면 그 지역 로또를 하나씩 모아두는 취미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문을 연 로또방을 찾아 한장을 긁었다. 청웅면에 오픈런을 한다는 다슬기 전문식당이 10시 오픈이라 9시반까지 치즈테마파크와 장민원 산책을 하기로 했다. 참고로 우리 둘은 늘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여행지에서 전날 아주 피곤했다고 해도 다음날 늦어도 새벽 6시에는 기상을 하는 우리다. 이날도 어김없이 오전 8시가 되기 전 숙소를 떠나왔다. 이래서 우리가 고급 숙소를 잡지 않는 것이다. 6월초라 장미가 만발해 있었고 평소 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지만 이 날만은 장미 향기에 취하는 듯 했다. 파란 하늘과 빨갛고 노란 장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대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테마파크를 떠나기 전 유명하다는 임실 치즈를 맛보고 싶었다. 헐... 매장 내엔 10여가지가 채 되지 않은 같은 종류의 치즈 제품들이 반복적으로 깔려 있을 뿐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우리 나라 가장 유명하다는 치즈 마을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씁씁한 마음과 허기진 배를 달래며 청웅식당으로 향했다.
오픈하는 정각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자리가 남아 있었다. 얼른 2인분 주문을 하고 밥상을 기다렸다. 허기때문인지 주인장의 솜씨 때문인지 공기밥을 싹싹 긁어 먹었다. 사실 나는 탄수화물을 좋아하지 않아 공기밥이 나오면 한 숟갈을 덜어 놓고 모두 똥띠에게 건네 주는 사람이다. 이 정도면 맛집이라고 할 수 있겠지?
* 진해해양공원
오늘도 나와 신랑은 인근을 산책하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 강서구는 부산 시내보다 김해나 창원으로의 이동이 보다 수월하다. 나이가 먹을수록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보다는 한전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여유를 가지며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차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흰돌메공원에 주차를 하고 진해해양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왕복 13km 구간으로 나와 우리 똥띠 걸음 속도로는 3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른 일요일 오전이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았지만 이른 무더위에 이마엔 땀이 송금송글 맺혔다. 2년간 와보지 못했는데 그새 요트선착장과 워터테마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인기가 좋았던 식당과 카페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임대 딱지만 가득했다. 안타까웠다. 부산신항과 가덕대교와 파란 바다에 비치는 윤슬이 참 보기 좋았다. 명도선착장에는 소쿠리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가족 단위 캠핑족들이 간간히 보였다.
진해해양공원은 우도와 연결되어 있어 데크 산책로로 섬 한바퀴를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다. 이 일대는 썰물일 때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맨날로 내려가 조개잡이를 할 수 있고 동섬으로 건너가 볼 수 있다. 갯벌에 흥미가 없는 나와 똥띠는 땡볕에 머드팩 놀이가 한창인 아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며 돌아온 길을 돌아갔다. 진해남문단지는 10년도 전에 장난으로 청약 신청했다가 당첨되어 버렸던 아파트가 있다. 아까운 당첨기회를 놓쳤지만 현재 분양가보다 낮은 시세를 보고는 내심 안도했다.
원점 회귀한 후 허기를 달래고자 신호동에 있는 유명한 물회 전문 식당을 찾았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 명지는 바다와 강이 가까워 수산물들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우리 둘은 대광어와 도다리 물회를 시원하게 먹었고 네이커 리뷰 이벤트로 멍게 한접시를 서비스로 받았다. 작년 멍게들이 흉년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아니면 서비스라 품질이 낮았던건지 태어나서 가장 맛없는 멍게를 한입 먹어 보고서는 부랴부랴 그 곳을 나와 버렸다. 하지만 물회 자체는 일품임!
* 거제도 고현시장 & 고현천변 산책길
똥띠의 군대 단짝 친구가 1년전 베크남 신부와 식을 올렸다. 그리고 2개월전에 득남 소식을 전달 받았다. 24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육아를 할 친구 와이프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쓰여 거제 여행을 핑계로 거제대교를 건너기로 마음 먹었다. 산모가 한정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4명 예약을 했건만 정작 본인은 엉덩이 통증이 심해져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사전에 신경 써서 고른 선물을 전달했다. 육아 용품은 여기 저기 많이 받을테니 나는 온전히 출산한 와이프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여러날 고민해서 선택한 탈모방지용 헤어제품과 튼살크림과 손글씨로 쓴 편지를 함께 담아 보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는 베트남 와이프가 고마움의 마음을 사진으로 담아 보내와서 뿌듯했고 식사 분위기가 훈훈했다. 식사 후 산후조리원 바로 아래층에 있는 카페로 갔는데 기어코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고 내려와서 따뜻한 차를 손에 들려서 보내 주었다. 오랫동안 행복한 세가족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식사를 한 뒤 나와 똥띠는 늘 그렇듯이 전통시장을 찾아 구경을 하고 로또방을 들렀다. 최근 고현동에서 근처 천변 산책길을 조성했다는 소식을 들어 냉큼 달려갔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어 시원했지만 한두방울 비가 내려 발검을 재촉했다. 왕복 5km가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여서 운동으로는 부족했지만 오늘 또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부산으로 넘어간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코 앞에 두고 늘 가보지를 못했다. 다음번에 부모님과 방문해야지.
거제도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남주 해안 지방을 제외하고는 방문이 쉽지 않다. 하지는 우리 내외는 1시간이면 거가대교를 통해 고현 시내로 입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거제도 안에는 도로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왕복 4차로 또는 2차로여서 특히 어두운 밤 운전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하지만 천연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분명히 있는 곳이다.
거제도가 조선소로 발달된 섬이기는 하지만 젊은 세대들도 많고 숨은 맛집과 카페들도 많다. 유람선을 타고 섬 주위를 둘러보거나 인근 섬에 들어가 산책을 하는 재미를 맛볼 수도 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산물을 비싸게 판매하기는 하지만 그 신선도는 서울, 수도권 등 내륙과는 비교를 불허할 것이다. 거제도와 통영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래서 거제도 사람들이 회식을 하러 통영으로 넘어간다는 우스겟소리까지 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도시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은 왜일까?
* 통영 연화도, 훈이시락국, 통영다찌
통영과 가족과 여러 차례 놀러와 본 곳이다. 부산에서 통영에 들어오는 방법은 두 가지다. 거가대교를 이용하는 방법과 창원을 통해 내륙으로 오는 방법. 거가대교와 10분 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는 굳이 창원으로 갈 필요는 없다. 다만 거가대교 통행료가 언제 내려가나 기대하고 있을 뿐. 경차를 몰 때는 50% 경감되어 부담이 없었는데, 다행이 주말에 승용차는 1만원에서 8천원으로 2천원 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통영에는 동피랑, 서피랑, 전통시장, 미륵산 등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단, 인근 섬은 트레킹을 위하여 연화도 단 한 곳만 가 보았다.
통영항여객선터미널 앞에는 충무김밥과 시락국을 포장 판매하는 곳들이 아주 많다. 내가 먹어본 결과 맛은 다 거기서 거기니 시간이 촉박한 경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입하기를 권한다. 우리도 연화도 트레킹 중 점심으로 먹을 충무김밥과 시락국 3인분을 구입했다. 늘 그렇지만 나는 6-7살시절 자갈치시장 먹자골목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10센티도 안되는 의자에 앉아 먹던 충무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낫던 것 같다. 그 이후엔 한번도 그럴듯한 충무김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통영 서호시장에 훈이시락국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의 시락국은 가히 내 인생 최고의 시락국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동기들과 여행 중이었던커라 포장해서 똥띠에게 맛보여 주지 못한 점이 한스러울 정도이다. 이후 두 번이나 방문했었는데 항상 갑작스러운 휴무에 걸려 눈물을 머금고 돌아왔다. 항상 속지만 통영에만 가면 꿀빵을 사온다. 빼때기죽은 어쩌다 한 번씩 똥띠 영양식으로 구입해 본 적이 있으나 요즘 MZ세대들은 불호할 듯. 사실 나도 MZ세대의 끝자락이긴 하다. 암튼 통영은 거제도와 엮어서 여행할만 한 곳이다.
1년전 6월 대학 동기들과 통영에서 계 모임을 했다. 사실 가족 전체가 신랑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가기 전 송별회를 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통영은 다찌식당이 유명히다고 해서 한달전부터 유명한 곳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폭우가 내렸다. 1km도 되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 속옷까지 홀딱 젖어 버렸다 미국으로 친구를 보내기 전 하늘도 함께 울어 주기라도 하는 듯. 통영 바다에 빠지기 직전 목적지에 도착했다. 깔리는 반찬들과 메인 메뉴들은 부산에서 3류에 해당하는 곳보다 못한 듯 아주 실망했다. 하지만 우리는 금새 노닥거리느라 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얼큰히 마시고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비는 말끔히 그쳐 있었다. 우리는 취기를 내려 줄 숫자 아이스크림 한 통을 가슴에 안고 휘청거리며 숙소로 도착했다. 여느 때와 같이 편안한 파자마로 갈아 입고 우리는 2차를 시작했다.
나는 동기 모임이 있을 때마다 약소한 선물을 준비해 왔다. 2022년 20주년이 되었을 때 기념 타올을 제작하여 나눠준 것이 이들에게는 큰 감동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비누, 손수건, 위생용품 등을 준비했다. 이 날은 손편지도 함께 준비했는데 한 녀석이 울음을 터트리자 하나 둘씩 울음을 터트리는게 아닌가. 아마도 한국을 떠나 당분간 볼 수 없는 녀석에 대한 그리움이 촉매제가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글그렇게 마셨고 먹었고 울어댔다.
* 양산 통도사 & 내원사
통도사와 내원사까지는 우리 집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린다. 나와 똥띠는 불교는 아니지만 교회가는 것보다는 절에 가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다. 절을 굳이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지는 않지만 근처 좋은 산책길이 있다면 겸사 겸사 대웅전에 들러 절을 하기도 한다. 부산 시내에 유명한 범어사가 있기는 사람들이 붐비기도 하고 부산 시내를 거쳐 가는 것이 오히려 근교보다 접근성이 좋지 않아 즐겨 방문하지는 않는다. 금정산 등산을 하지 않고서는 말이다.
통도사는 평지라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안하게 맨발로도 걷을 수도 있다. 왕복 5km가 되지 않아 우리 둘에겐 운동의 효과는 없지만 근처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다면 기꺼이 들를 수있는 곳이다. 자주 방문해서 그 가치를 몰랐지만 지방에서는 우리나라 3대 사찰이라는 이유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방문하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아쉽게도 통도사 앞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맛없는 가든형 식당들 밖에 없어서 한 번도 방문한 적은 없다.
내원사는 계곡을 따라 왕복 10km이상 산책할 수 있는 코스이다. 우리는 보통 용연복지회관 인근에 주차를 하고 마을을 지나 목적지까지 왕복하는 것을 즐긴다. 인도에 큰 나무들이 심겨져 있어 그늘을 만들어 주어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어도 힘들이지 않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통도사만큼 유명세가 크지 않고 사찰이 작고 오르막길이라서 그런지 방문하는 사람들 수는 많지 않다. 내가 내원사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두부가 맛있는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점심 때를 훌쩍 지나서였는지 곧장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개월 전에 방문했을 때에는 초파일과 겹쳐서 그런지 가족 단위 나들이객 손님들의 웨이팅에 한시간을 기다렸다. 역시나 이 곳의 음식은 담백하고 건강함이 가득했다. 콩국수에 소금이나 설탕이 아닌 소금물을 제공하는 것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들 두 곳과 더불어 남해 보리암, 부산 용궁사, 순천 선암사, 고창 선운사는 내가 손에 꼽는 사찰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