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막바지에서 한 해를 돌아보았을 때, 몇 가지 큰일들이 있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안좋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다 무사히 지나 이렇게 반추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9월 쯤 남편이 수술을 했다. 남편은 나랑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한 10년 전부터 고질적으로 목이 안좋았다. 원래도 목디스크가 있는데 직업이 프로그래머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었다. 병원도 많이 찾아다니고 좋다는 것도 다 해봤지만 결론적으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통증을 느끼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올 초에 여러 대학병원들을 가서 진단을 받았다.
나는 막연히 뼈 수술은 하는게 아니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던지라 처음에는 뼈, 더구나 목 수술은 안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목의 통증 뿐 아니라 몸 전체로 통증이 퍼지고 두통도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진지하게 수술을 고려하게 되었다.
남편이 대학병원들을 찾아다니며 진단을 받을 즈음 나는 몹시 바빴다. 작년에 시작한 카페가 제법 괜찮게 장사가 되는 중이라 매일 카페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남편은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편이라 나에게 이렇다 할 말도 하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회사 연차 등을 내면서 병원을 다녔다. 그러더니 어느날 나에게 수술날을 그냥 통보했다.
병원이며 날짜며 알아서 다 조율해놓고 나에게는 그냥 결론만 얘기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할 틈도 없이 일이 그렇게 되었다. 걱정도 되었지만 오죽 아프면 남들이 다 말리는 수술을 결정할까 싶어 그것에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시간이 지나 9월이 됐다.
수술하는 며칠 동안은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가며 아이를 봐주시기로 하고 나도 일정들을 빼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아이를 시어머니께서 봐주시는 동안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밖의 풍경이 막연히 눈에 들어왔다. 햇빛이 쨍쨍하고 길거리의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손선풍기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9월 초중순인데도 날이 더웠다. 남편 수술 즈음 되면 날이 선선하길 바랐는데 그도 안되는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동안에 좀 편안하게 있자고 둘이 얘기하면서 1인실이나 2인실을 달라고 병원측에 말하니 6인실 밖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날도 덥고 입원실도 뜻대로 안되고 나랑 남편은 이래저래 투덜거리면서 입원 절차를 밟았다. 수술 전날 입원하여 다음날 수술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수술을 앞두고도 남편은 별다른 걱정도 없는 듯 했다. 나는 걱정이 되면서도 말로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걱정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편마저 그럴까봐 애써 밝은 척 했다. 의사에게 수술 설명을 들으며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그저 가볍게 듣는 척을 했다.
입원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오전 중에 수술을 하게 됐다. 금식 등의 수술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고 시간이 되자 병원 측에서 남편의 침대를 옮겨 수술실로 가자고 연락이 왔다. 병원 직원과 수술 침대를 끌고 입원실로 가면서 남편과 가볍게 농담들을 나눴다.
덜컥 겁이 났다. 수술이 잘 되지 않으면 어쩌지? 혹시 수술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몇 달 전에 결정한 일인데도 막상 닥치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계속 입꼬리에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혹시 내가 걱정하는 걸 알게 될까봐 억지 웃음을 지었다. 괜히 우스운 얘기도 하면서 자꾸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를 하다 호명이 되고 남편이 들어가게 됐다.
"잘 하고 와."
웃으면서 말하고 남편도 웃으면서 인사했다. 남편이 들어가고 수술실 문이 닫혔다. 하도 억지로 웃어보여서인지 남편이 들어가고도 내 표정이 계속 웃는 듯 그랬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할 필요 없이 입원실이나 다른 곳에 있으면 문자를 보내 알림을 주겠다고 병원에서 그랬다. 하지만 어쩐지 한동안 수술실 앞 의자에서 뜨질 못하고 앉아있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있다가 사진첩을 열었다. 예전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봤다. 남편과 내가 연애할 때부터 시작됐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사진에는 남편과 내가 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있다가 문득 사진에는 찍히지 않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저 내 머릿속에만 기억되어 있는 순간들. 남편에 대한 나의 애상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연애할 때 서로 맞지 않아 헤어지고 한참이 지나 우리 집 앞에 불쑥 찾아왔던 남편. 쑥스러운 듯이 웃던 남편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 날 결혼하기로 했다. 어설프게 내게 결혼을 청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렇게 결혼하고 얼결에 임신이 되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갈등도 많았다. 서로 이혼까지 들먹이며 싸우다가 홧김에 몇시간 나갔다 집에 돌아왔다. 몇시간 괜히 밖을 떠돌다 갈 데가 없어 터덜터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는데 남편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그 때 나를 보면서 웃던 얼굴.
어느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술냄새는 풀풀 나고 남편은 하루종일 독박육아를 했으니 나에게 화를 내진 않을까... 몽롱한 와중에도 걱정이 됐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멀리서 아이를 안고 오는 남편이 보였다. 아이가 나를 보고 반가워 웃고 남편도 웃고 있었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내게 "많이 마셨구만." 하고 타박하면서도 웃던 남편. 그 때 느끼던 안도감. 가족이라는 따스함.
핸드폰 사진들을 보면서 웃고 있다가 불쑥 눈물이 났다. 함께 살면서 기쁜 순간들도 많았는데 그 때 내 머릿속을 스친건 어쩐지 서러운 그런 생각들이었다. 아무래도 수술실 앞이니 훌쩍이면 안될 것 같아 눈물을 슥 닦으며 일어났다.
몇 시간 후 남편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방금 마취에서 깨서 그런지 무어라 말은 하는데 횡설수설 앞뒤가 맞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났느냐, 지금 몇시냐. 그렇게 물으면서 나를 보았다. 불과 몇시간 사인데 훌쩍 마른듯이 보였다. 퀭한 얼굴을 하고 그래도 괜찮다며 날 보고 웃어주었다. 나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을 꾹 누르면서 같이 웃었다.
아마 오랜 후에도 수술에서 깨서 비몽사몽 웃던 남편의 그 모습은 내 마음속에 아리게 남아있을 것 같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슬픔이나 동정이 아닌, 그런데 내 마음을 찌릿찌릿 하게 만드는 그런 남편의 모습들이 있다. 연애 할 때는 이런 감정이 없었는데 같이 살다보니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시간 사이에서 그런 감정들이 생겼다. 이런 감정도 사랑이라면 사랑일 것이다.
며칠 동안 남편은 무사히 회복했고 건강히 퇴원했다. 몇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술로 인한 불편함은 그리 없고 경과가 좋은 편이다. 많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경과가 좋아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렇게 하나의 일이 그럭저럭 지나갔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추억은 아니어도 이런 일련의 일들로 남편과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올해를 돌아보며 그 땐 그랬지 하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힘든 일이 있어 다시 올해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그 때도 잘 넘겼었지 하며 스스로 위로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런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