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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Feb 22. 2023

건강에 대하여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어렸을 때 한약을 많이 먹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는 일반 병원만 다니다가 최근 기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느껴 12년 만에 한의원에 갔다. 요즘 한의원은 서양 의학기술과 접목을 많이 하여 뇌기능 검사도 있고, 진맥 검사도 그래프로 다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뇌 기능 검사를 통해서 내가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진맥 검사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 모든 맥이 정상수치보다 훨씬 약하게 나왔고, 한의사 선생님은 "오장육부의 맥이 다 말라있다. 그 동안 몸이 많이 힘들었겠다. 육체와 정신적인 부분이 다 지쳐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보다 더 많이 사용해와서 이렇게 된 것이다." 등의 말을 하셨다. 그 동안 몸이 많이 힘들었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늘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약하고 피곤해서 많은 일을 감당하기 어렵고, 약속도 거의 안 잡고 쉬어야 하고, 외부에서 잠을 자며 참여해야 하는 일정은 늘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건강검진을 하면 몸에 이상이 있다고 나오는 부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먹어야 하는 한약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고 매주 침을 맞으면서 몸을 회복해야 하는 것도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건강 관리를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장육부의 맥이 다 말라있다니 이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인가 싶으면서 기분이 너무 우울해져서 집에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그날을 보내고 다음 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한약을 자주 지어주셨던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이모께서는 "그 때는 한약방에서 약을 지었던 거라 정확히 맥을 짚은 것은 아니었어. 나는 그렇게 지낸 지 30년이야. 그 정도면 건강한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한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건강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이모도 그렇다고 하니 이렇게 계속 살 수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너무 건강관리를 못해서 맥이 약해진 건지, 원래 체질이 약한 것인지 고민을 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기력이 없고 자다가 잘 깼던 것을 생각하면 원래 그런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니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되어 더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내 상태는 똑같은데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왔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진짜이든, 그런 부정적인 진단을 받고 5일 동안 나는 더 아픈 것처럼 느껴졌다. 간혹 머리가 어지러우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이번에는 '내 맥이 약해서 어지럽구나'라고 생각하며 이 증상이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하루 동안 감사하고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에 더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우울한 마음이 계속 올라와 삶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살면서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의사 선생님은 당연히 완벽히 건강한 수준이 기준이니까 그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엄청 큰 문제로 여길 수 밖에 없다. 그치만, 나의 경우에는 이런 상태로 계속 30년 넘게 살아온 것이라 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물론 한약을 먹으면서 부족한 기력을 보충할 것이다. 


  나의 건강에 대해 '건강하지 않다'라고 단정지어 말하기에는 섣부르다. 나는 '이 정도면 건강한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지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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