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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08. 2024

네, 저는 굳이 먹어봐야 알겠던데요?


"넌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알겠냐 그걸!"



밥 먹듯 들어본 얘기다. 어릴 적부터 나는 겁이 많았다. 겁이 많아서 항상 부모님의 바지끄덩이를 잡고 뒤에 숨곤 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마다 겁이 나서 눈가에 눈물부터 고이곤 했다.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좋아했어도 많은 사람들의 앞에(그 사람들이 가족일지라도) 나서서 부르는 것은 겁이 났다. 장기자랑을 하는 날이 다가오면 긴장감에 몸부림치곤 했다.


 한편으로는 겁도 없이 무모한 무엇인가를 인생의 적정 시기마다 간헐적으로 시도해 본 것 같다. 이런 내게도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일들이 있는 걸 보면, 참으로 나도 역설의 끝을 달리는 인간인가 보다. 어릴 때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혼자 타야만 했을 때도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탔던 기억에만 의존해 비슷한 번호의 버스를 탔다가 종점에서 나 혼자임을 알고 광광 울어댄 적도 있고, 큰할아버지가 입에 물고 뻐끔거리시던 곰방대가 뭔지 궁금해서 몰래 뻐끔거렸다가 담배라는 존재를 유치원 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뿐이랴, 초등학생 때 서서히 인중에 자라는 거뭇한 솜털이 싫어서 삼촌이 쓰던 일회용 면도기를 사용했다가 면도독이 올라 일주일간 멍울이 입 주변에 올라와 본 적도 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넌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봐야 알겠냐"라며 엉덩짝을 몇 대씩 때리곤 했다.



여전히 스무 살을 넘긴 성인이 되어서도,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멀어져 가는 인생을 알게 되는 서른이 넘어서도 나는 겁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적절히 무모한 선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꼭 찍어 먹어봐야 둘 중 하나인 것을 알게 되는 건 변함이 없다. 딱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코 흘리게 일 때는 멋모르고 행한 것들이 부모님과 어른들의 보호 아래에 적절하게 완충되었고 엉덩짝 몇 대로 끝날 일들 뿐이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모든 행동들이 온전히 나의 몫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선물 주식이 도박이라는 동생의 말에도 전재산을 날려봐야 몸소 느끼고, 끝이 좋지 못할 연애임을 알면서도 굳이 사귀어 보고 싶었다. 된장이길 바라고 찍어 먹어본 게 똥임을 알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내치는 행위는 이젠 몸에 배긴 군살이나 다름없지만, 돌이켜 보면 똥인 줄 알고 거부하려다 막상 삼켜보니 구수한 된장일 때도 많다는 걸 알게 되니,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 먹어보는 것도 나름 나의 재능인가 보다.

결국 사람은 무언가를 행할 때 행복을 얻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었으니.


난 앞으로도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일들을 눈앞에 마주하겠지. 하나 결국엔 이것이 내가 갈 인생인 듯하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처럼 막무가내로 과감하게 푹 찍어 먹어보는 일은 이젠 내 몸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도 찍어보지 않고 그저 미각을 잃어가는 일만큼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도 불확실성의 인생 속에서 서툴고 두렵지만 나름의 무모한 시도를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나름 앞에 놓일 시도들이 꽤나 반갑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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