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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23. 2024

여섯 살에 배운 담배

​최선을 위해 최악을 버리려 기다린 시간, 서른 해

여섯 살에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 순전히 호기심에서 비롯된 자기 학습. 삼촌이 방에서 날마다 입에 물고 뻐금거리며 희뿌연 구름을 만들던 흰 막대의 정체가 궁금했던 순수하고 순진한 꼬마아이는, 혼자서는 무서웠는지 동생을 데리고 삼촌이 없는 틈을 타 방에 들어가 서로 하나씩 흰 막대기를 꺼내 라이터 불을 지피고 뻐끔거리는 시늉을 했다. 두어 번 뻐끔거리던 와중에 거세게 방문을 열어젖힌 삼촌의 등장으로 상황은 정리됐고, 세상 물정보다 더 빨리 배운 것이 담배였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여전히 세상 물정을 몰랐다. 흡연을 일찍 배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쩌다 보니 '말보로 라이트'라고 적힌 친구의 담배를 내 호주머니에 넣게 되었다. 밤늦게 과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그 길에는 어둠을 힘겹게 밀쳐내는 낡은 가로등 무리와 나뿐이었다.


한 대만 피워볼까...


 호기심 하나로 담배에 불을 지폈던 여섯 살의 나는 희멀건 담배구름을 폐 안으로 삼키는 법을 몰랐다. 그저 뿜어져 나오는 햐안 구름의 정체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나는 여섯 살 때와는 달리 흡연하는 법을 이론상 알고 있었다.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살며시 입술에 담배 끝을 가져간다. 볼을 서서히 조여가며 담배속 연기를 빨아 들인다. 입 안에 머금은 연기를 조심스럽게 체내로 들이킨다. 콜록거림 대신 헛구역질이 나왔다. 내 몸은 적극적으로 담배연기를 밀어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연기는 허공에 번질 때보다 더욱 빠르게 기도를 지나 폐에 안착했다. 그 짧은 사이에 담배연기는 자신이 들러야 할 세포 하나하나에 빠짐없이 침투했다. 폐에 이르러서는 페포에 확실하게 터를 잡았다. 핏줄은 그들을 거부했지만, 거부할수록 연기는 억지로 엉켜 붙었다.

 여섯 살 때엔 삼촌의 불호령으로 담뱃불을 끌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담배를 길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지긋이 비벼 담뱃불을 껐다. 왼손에 쥔 담뱃갑 채로 남은 담배를 모조리 길 모퉁이에 던져버렸다. 애석하게도 이미 내 몸속을 파고든 담배연기를 던져버리기란 불가능했다. 집에 도착해 부모님에게 들킬세라 부랴부랴 화장실로 향했다.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칫솔질을 했다. 타월로 몸에 번진 담배 냄새를 박박 닦아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들이쉰 연기는 내 몸에 더욱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비로소 담배연기는 내 뇌 속까지 염탐하며 유린하기 시작했다. 매운 치약으로 양치를 하고 구역질을 참아가며 혀 구석구석을 닦아내도 담배연기의 농후한 쉰내를 없앨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담배가 내 오장육부와 뇌를 농락하는 동안,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뜬 눈으로 동이 트는 창문을 바라봐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고등학교 내내 담배를 멀리했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안 좋다는 것을 고2 때 처음 알았다. 가끔씩 숨을 쉴 때마다 심장에 누군가가 날카로운 바늘을 찔러대는 고통이 찾아왔다. 남들보다 목감기에 면역도 매우 약했다.


"너는 절대로 담배는 안 된다이"


 매우 자상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백 가지 경고의 의미가 숨겨져 있는 듯한 말투로 어머니는 나에게 담배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엄마는 내가 여섯 살 때 담배를 배우고 고등학생 때 이미 전적이 있음을 몰랐다). 폐가 망가져 '패가망신'하게 될 거라는 섬뜩한 말장난을 일삼는 것도 서슴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성인이 되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점퍼 호주머니에서 엄마가 담배를 발견하기를 두어 번.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남보다 더 남남처럼 나를 대하셨다.

 서울로 상경한 이후로는 그 누구도 나의 흡연에 왈가왈부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흡연자의 곁에는 흡연자들이 더욱 모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여섯 살에 알게 담배에게 고2 처음으로 나를 압도당하던 그날 이후로, 서른 중반까지 담배를 곁에 두었다. 거진 삼십 년.

 담배를 피우는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는 수 없이 많았지만, 펴야 할 압도적인 단 하나의 변명 때문에 끊지 못했다. 처음 담배를 입에 물 적부터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분리해 낼 수 있을 법했던 뿌연 연기가 몸 안에 서서히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키어 결국 내 일부가 되었다는 구차함. 최악임을 알면서도 최악의 것에 최선을 다하는 행위에 대한 최악의 명분.



 서른다섯 지금. 글쓰기란, 삶을 체득하는 육체노동이란 것을 깨닫고, 프리다이빙이라는 고요하고 정직한 일상을 얻고나서부터 나는 드디어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를 만났다. 여섯 살 흡연 이후 서른 해가 지나서였다. 금연은 내가 나이기 위한 온전한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글을 쓰고 물과 함께하는 일상은 나라는 사람의 진실에 다가서는 진심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 온전하고도 진심이 담긴 곳으로의 향유를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수고스러움을 위해서는 나의 기본적인 능력,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 둘을 위해, 그리고 그 둘을 만끽하는 나를 위해서, 나는 기꺼이 내가 서른 해 동안 길 모퉁이로 던지지 못한 담배를  이제서야 겨우 내동댕이 칠 수 있었다.



최선을 위해, 최악을 버리려고, 서른 해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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