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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15. 2024

금사빠를 비판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글

전국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내 첫 연애는 경험상 남들보다 꽤 늦었다고 봐야 한다. 이미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풋내 나는 연애를 해본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연애는 스물다섯 살 언저리에서 시작됐다. 숫기는 찾아볼 수  없던 제주 촌놈이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인생 첫 연애라니. 그렇게 남들보다 훨씬 늦게 연애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뎌서일까, 호감 가는 이성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차오르는 뜨거운 기분에 쉽게 취해버리는 '금사빠' 기질이 강했다. 





나는 금사빠다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연애, 하지만 스물다섯 이후부터는 매년 쉴 새 없이 짝을 찾아 연애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때가 많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고, 바람도 늦바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늦게 알게 된 연애의 신묘한 힘에 이끌려 1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서른 중반까지 총 10번 이상은 누군가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나는 자고로 남의 연애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남의 연애 감수성 또한 1도 없다. 내 연애하기도 바쁜 와중에 굳이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 에너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연애에 주의 깊게 관심 두는 사람이 그렇게도 불편하다. "가장 최근 연애는 언제예요?"에서부터, "보통 연애하면 몇 년은 사귀시나요?"까지 질문도 여러 가지다. 난 또 그 질문에 굳이 굳이 답변을 해주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어머, 금사빠이시네요!"라는 말로 내 과거의 모든 연애를 일반화하곤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금사빠'. 그래 나는 금사빠인 듯하다. 아니 금사빠가 맞다. 내 주변인들과 비교해봐도 나는 새로운 연애를 곧잘 시작한다. 낯선 상대를 알아가는 소위 말하는 '썸'이라는 과정이 남들보다 짧다. 썸을 타는 기간은 짧으면 하루, 정말 너무 길다 싶어도 두 달이었다(그것도 딱 한 번). 금사빠라는 수식어가 그다지 좋은 뉘앙스가 아님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굳이 금사빠인 사람들이 비난받고, 그들의 연애가 남들에게 비아냥거림으로 전락해야만 하는 상황은 금사빠인 나로서도 꽤 거슬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신중하게 오랜 기간(굳이 기간을 따진다면 석 이상) 공을 들여 상대방을 알아 가며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이들의 연애가 '성숙한 연애', '진정한 로맨스'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에 대해서도 나는 꽤 의아하게 생각한다. 물론, 나의 연애가 금사빠이기에 팔이 안으로 굽어질 밖에 없는 얘기일 있겠으나, 내 생각은 꽤나 명쾌하다. '금사빠'든 '오진사'('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내가 막무가내로 정한 준말)든 지들 연애는 지들 둘이 알아서 일이다. 




많이 만난다고

연애가 잘되는건 아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카페에 호감 가던 알바생이 있었다. 한겨울 매주 주말마다 그녀가 출근하는 때에 맞춰서 카페를 들르고, 퇴근할 즈음에 맞춰서 자리를 정리했다(그녀를 노골적으로 쳐다보거나 부담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그 겨울날마다 카페에 있던 약 5시간 동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10잔 정도를 주문했기에, 그녀도 분명 나의 존재를 머릿속에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약 4주가 지난 이후, 용기 내 그녀의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당황한 듯했지만 냅킨에 나지막이 자신의 이름과 번호를 적어준 그녀. 내 인생에서 심장이 내 몸을 뚫고 나올 만큼 쿵쾅거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아마도 마지막이기도 할 듯하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약 두 달여간 매주 3~4번은 짧게 길게 얼굴을 보고 썸을 타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수줍음이 좋았다. 또한, 일을 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썸을 타는 동안 그녀의 수줍은 홍조 띤 미소를 자주 지어주곤 했다. 그러나 연애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은 꽤나 자존심 강하고 주관이 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싸움이 잦았다. 계기는 담뱃불처럼 작고 사소해 보였으나, 서로가 불어대는 날카로운 감정의 바람에 쉽게 휩싸여 산불로 번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우리는 연애한 지 100일이 조금 지날 즈음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내가 가장 길게 썸을 타본 상대였지만, 연애 기간은 다른 연애들에 비해 턱없이 짧았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썸이라고 말하기도 뭐 할 정도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호감을 표하고 고백을 상대와의 연애 기간이 서른 중반 인생 중에서는 2년이라는 가장 오래된 기간이었다.





연애 전, 연애 후

연인이 달라보인다면

그건 지극히 정상이다



열 번 이상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나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인연들을 만났다. 유난히 맑고 쾌활했지만 알고 보니 연애 자존감이 꽤나 낮고 의존적이었던 연인. 내가 호감 갖던 어떤 이성보다도 긍정적인 마인드가 뛰어나고 도적적인 면모도 가진 매력적인 이성이었으나, 사귀어보니 누구보다도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며 질투심이 강했던 연인. 대학생임에도 걸음걸이부터, 말하는 모습 그리고 입는 옷까지 당당한 커리어우먼 같았던 내 첫 연애의 상대는 누구보다도 연애에 있어서 상대를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연인이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두 달까지, 만남의 횟수로 따지자면 두어 번에서 많게는 열댓 번까지. 꽤나 다양한 기간과 횟수를 거쳐 연인 관계가 되었지만, 그들의 본모습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없는 모습들 투성이었다(물론, 그들에게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당신이 '오진사'라고 해서 과연 썸을 타는 상대가 당신이 바라던 연인의 상에 가까워졌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엔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연애다. 오히려 찍어먹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된장에 곰팡이가 펴서 결국 맛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연애라는 것은 견문색의 패기를 발동시켜서 앞날을 예측할 수 있을만한 게 못된다. 호감 가는 이에게 잘 보이려고 매력을 어필하기 이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성숙한 사람임을 우리는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대게 우리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부림치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는 썸을 타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에게 나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좋아 보이는 면은 부각하고 약점은 감추기 마련이다. 썸을 타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진하게 이어가고 결혼을 해서 인생의 진정한 짝을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이들 중에서, 처음부터 상대방의 모든 면을 제대로 꿰뚫고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숙하지 못한 연애를 과연 누가 정의할 수 있겠는가? 금사빠라고 해서 어리고 덜 성숙한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고 누가 함부로 단정 짓는가?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이 정말로 성숙한 연애 자세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금사빠는 자기 자신에게도 독이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원래부터 성숙한 연애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들도 금사빠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물론 그런 경험이 없는, 태고적부터 성인군자인 사람들도 소수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어리지만 불같았던 연애를 해보기도 하고, 너무나 뜨거워서 몸에 흉터가 생겨보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도 깊은 실연의 터널 속에서 방황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고유한 연애 경험이 쌓여 지금의 조급함 없는 초연함을 만들 수 있었던 초석임이 분명하다.

 백날 '금사빠' 하지 마라, 금사빠 하는 사람은 질이 안 좋다, 금사빠 해봤자 너만 힘들어진다 등, 타이르고 설득하고 오지랖 부려봐야 할 사람들은 하게 돼있다. 상대에게 느끼는 호감 하나만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오롯이 받아내며 용기를 가지고 불확실함을 제대로 마주해 보려는 의지를 지닌 이들을 나는 응원하고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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