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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09. 2024

선물로 2천만 원을 날렸다

비록 심각한 악취가 날지라도

오만이 낳은

기형적 경제 관념



난 돈을 몰랐다. 여전히 돈을 모른다. (아마도)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범주 내에서의 경제관념이 매우 부족하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내일, 아니면 몇 시간 후라도 죽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인생, 돈을 애지중지해 가며 모아두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여전히 지금도 물음표가 가득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자면 현재에 충실하자는 굉장히 겉멋 번지르르한 명분을 만들고 월급이 들어오면 지출을 늘리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 재미로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내 사주를 보며 말하길, '돈창고'란다. 기분 좋은 말인 듯 보였지만 이 단어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돈창고는 돈이 쌓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돈이 나가는 곳이기도 한 법. 돈을 많이 벌어봤자 금세 다시 창고에 지폐 한 장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주를 보고 와서 나도 모르게 의식을 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사주가 들어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얼추 내 30대 초반의 재물운은 '돈창고'에 맞아 들어갔다. 30대 초반 직장인 치고는 꽤나 많은 월급을 받던 내가, 퇴사 직후 통장 잔액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새삼 신선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름 적당량 쌓아놓았을 만한 돈은 택도 없었고, 몇 달을 근근이 허리띠를 졸라 가면 나름 사람답게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액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벼락부자까진 아니어도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고액 연봉자가 되어 있다는 현실에 느낀 나의 기형적인 경제관념,


"아하! 지출을 능가할만한 수익을 벌면 굳이 저축과 투자는 필요하지 않겠군."


연봉에 취해버린 나머지 돈의 쓰임새를 잘못 해석해 버린 오만함에 대한 대가는 나름 가혹했다. 수입이 줄어든 만큼, 아니 수입이 없는 만큼 지출도 아낄 줄 알아야 했지만, 그동안 흥청망청 앞뒤 상황 헤아림 없이 써대던 내 허세에는 꽤나 강력한 관성력이 깃들어 있었다. 몇 백 원짜리 과자를 사는 것이 사치였고, 한 달 고정 지출을 생각하는 매 월말이 다가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통장 속 숫자들이 나를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도 내 지출은 한동안 줄어들 줄 몰랐다. 무지함에 맞서서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충격요법이 나에게 필요했다. 




악마의 속삭임


 이 당시 전세 보증금 외에 내 수중에 있던 전재산은 2천만 원. 비록 내가 경제관념은 없었어도, 겁은 꽤나 많았기에 내 맘대로 이 돈을 코인이든 주식이든 어느 곳에 함부로 써버린다면 다시는 구경도 못할 것이라는 일말의 불안함 정도는 있었다. 다행히도 같이 살고 있는 친동생이 나름 다년간 개미 투자자로서 안정적인 부수입을 만들고 있어서 바로 상담을 요청했다.

 파킹 통장이다, ETF다 뭐다 매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도통 알아먹을 길이 없었다(사실 관심이 없었더랬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노력 없이 레시피만 알려달라는 철면피 사장님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나는 그냥 동생이 내 전재산 2천만 원을 안정적이면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불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길 바랐다.


"혹시나 얘기하는데, 선물, 선물만큼은 절대 하지 마. 그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야."

"에이, 말도 안 돼 내가? 걱정 마!!"


오징어게임에서 상우가 전재산을 잃고 수십억 빚을 떠안은 이유가 선물이라는 것, 미래의 다가오지도 않은 현실에 대해서 배팅하는 것, 주식스러움을 가장한 도박의 일종이라는 것. 즉, 전문적인 개념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선물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주변 사례들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당시 나에게도 전재산 2천만 원의 쓰임새에 대해서 고민할 때 선물을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악마의 속삭임이 있기 전까진.





팔랑귀에 우유부단 그 잡채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나라는 사람이 상당히 팔랑귀임을 인정해야 한다. 눈 뜨고 코베이기 쉬운 서울에서 10년 넘게 생존신고를 하고 있다는 게 미스터리일 정도로 우유부단할 때가 꽤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겠다. 계속해서 전재산 2천만 원의 쓰임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내가 택한 것은 코인이었다. 미래를 대표하는 통화는 결국 가상화폐일 것이라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논리를 들어 나는 비트코인에 내 돈을 넣어두었다(알트코인은 내 상정권 밖의 것이었다.). 그러던 찰나, 유튜브 알고리즘의 계략으로(실제로 평소에 코인 관련 채널은 처다도 보지 않는다.) 우연찮게 알트코인들의 매수 타이밍을 알려주는 쇼츠를 보게 되었다. 매우 자신 있는 목소리, 이미 수백 명이 검증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챙겨갔다는 것을 방증하는 자료화면, 오늘 매수해야 할 종목과 어느 타이밍에 매도를 해야 하는지 까지 알려주는 1분이 채 안 되는 영상 하나에 내 팔랑귀가 매우 예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믿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기엔 코인 관련 사기 뉴스가 꽤나 왕왕거리던 때였던지라 섣불리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 돌다리 두들길 수 있을 정도만."


2천만 원 모두가 아니라 아주 소액만, 그들이 알려주는 정보에 따라서 매수하고 매도해 보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약 1만 원어치 정도를 그들이 알려주는 종목에 넣고 그들이 말하는 매도 지점에 맞춰 예약 주문을 걸어두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신기하게도 들어맞아서 소소한 재미를 보며 커피값을 벌었다. 한두 번 재미로 한 일이 서서히 조금씩 재미를 보게 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매일 새로운 정보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미 내가 직접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도 봤겠다, 검증을 마친 터라 의심을 할 새가 없던 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VIP"위한 정보방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보통 정보에서 볼 수 있는 이익을 VIP 방에서는 수십 배 이상으로 취할 수 있다는 말에 의심을 느끼기에는 이미 내 신뢰도는 하늘 꼭대기에 있었다.

카톡으로 상담 신청을 했다.


"세 달이면 충분합니다. 세 달이면 충분히 지금 가지고 계신 자금의 5배 이상도 취하실 수 있습니다. 대신 저를 믿고 저를 따라오셔야 합니다. 절대 위험하게 전문가의 지침 없이 시장에 진입하셨다가는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사기꾼에게 왜 홀리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신을 소개한 매니저라는 남자의 말에는 중독성 있는 음성과 리듬감이 담겨



"지금은 장이 좋지 않아요. 이럴 때는 일반 장이 아니라 선물을 해야 합니다."

"선물이요..? 그거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던데, 도박이라고 하던데요?"

"네, 도박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이것도 분석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고 그 가치에 투자하는 흐름이잖아요? 선물이나 일반 코인이나 다 똑같습니다. 대신 그 분석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저희가 VIP분들만 따로 방을 만들어서 도움을 드리는 거예요. 전문적인 트레이더님이 가이드를 주실 겁니다."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동생의 엄중 경고보다 이제 겨우 알게 된 지 10분 정도 된 사람에게 내 신뢰를 맡기는 일이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자산을 단 몇 번의 클릭만으로 몇 배로 불릴 수 있다는데, 그것도 단기간에, 그것도 내가 이미 여러 번의 검증을 해온 채널에서! 그렇게 나는 미끼를 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쳐 놓은 그물 안으로 서서히 나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전재산도 잃고 내 삶도 잃고


내 전재산 2천만 원을, 약 한 달 여만에 모두 잃었다. 돈도 돈이지만 내 평범한 일상을 잃었다. 선물 거래는 일반 코인보다 몇 십배 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매 분, 더 나아가서는 매 초마다 시장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하루에도 약 10번 이상 알림이 오는 그들의 매수, 매도 지시에 맞추려면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밥숟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샤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낮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온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져라 봐야 했다. 그들의 주는 시그널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모든 존재와 행위들은 나에게 무의미했다. 그들이 주는 시그널을 놓쳐 더 높은 수익을 보지 못할라치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들이 주는 시그널에 맞춰서 매수했는데 생각보다 수익이 떨어지거나 오히려 큰 손실을 보게 되면 더욱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담배만 연거푸 피워댔다. 정상적인 삶의 범주 안에서 내 활동을 이어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내 돈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쳤다. 이런 상황을 내 담당 매니저에게 얘기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트레이너가 주는 시그널을 하루 내내 봐야만 한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 시장을 멀리 그리고 길게 봐야 한다는 꽤나 형식적인 답변이 전부였다. 이 판에 참여하기 전 너무나 호의적이었고 전문적이었던 그의 응대는 형식적이고 딱딱한 챗봇으로 바뀌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에겐 직접적인 죄를 물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내 돈을 맡긴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어플 안에서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정식적으로 구글 스토어에 등록된, 이미 몇 십만 이상이 이용하는 거래 어플을 통해서 내 손으로 직접 거래를 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 돈을 가지고 사기를 쳤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선물 거래를 통해서 그들처럼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정말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들이 알려주는 모든 매수, 매도 신호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제 때에 맞춰서 거래를 해야 했다. 직장을 다니고, 그 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는 평범한 나에게 그런 조건부가 가능할 리도 없거니와, 처음 내가 선물 거래를 선택했을 때에는 이런 식의 거래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값진 수업료


내가 찍어 먹어본 것은 똥이었다. 이미 찍어 먹어보기 전부터 "나는 똥이오"하며 쿰쿰하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내 눈앞에 놓여있었지만, 너무도 역한 냄새에 취해 사리분별하지 못한 나는 굳이 굳이 그게 정말로 똥인지 확인을 하고 싶어 했다. 내가 택한 이 사건을 '무모했으나 배움이 있던 도전'이라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수업료가 꽤나 비쌌지만 나는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재산을 탕진하고 한 달 후 나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동생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당연히 그의 눈에 나는 한심한 사람처럼 보였을 일이 뻔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굳이 악취 나는 그 똥을 찍어먹어봐야 했냐며" 질타할 일이 뻔하다. 가끔씩 비 오는 날 허리가 욱신거리듯, 지금도 코인 얘기만 나오면 50일간의 얼간이 짓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오지만, 후회는 없다. 내 얼간이 짓은 이미 머릿속에서 상정한 사항이었다. 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선물 거래라는 위험하고 생소한 판에 내 전재산을 쏟아부은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었다. 이 선택으로 고수익을 얻든, 전재산을 모두 잃든 그것 또한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결과였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선택을 했다. 

 이 얼간이 짓으로 내가 얻은 것은 돈이 가져다주는 차가움이었으며, 잃은 것은 내 전재산 2천만 원과 기형적 경제관념이었다. 워런 버핏이 와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던 내 오만함에 기인한 경제관념을 바꿀 수 있던 것은 결국 내가 몸소 겪은 얼간이 짓 덕분이었다. 이 정도라면 꽤나 값진 수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행위의 정당화? 노노,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얼간이 짓


돈은 또 벌면 되는 것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나에게 놓인, 내가 정당하게 피땀 흘려 번 돈을 부정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내가 번 돈 앞에 당당하다면 그만큼 내가 번 돈을 소중히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번 돈에 대해서 당당함이 아니라 허세가 가득했고, 나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또다시 이 정도 돈은 거뜬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자만했다. 돈이 주는 뜨거운 희열과 쾌락에 도취된 나머지 돈이 지닌 차가운 양면성을 망각한 대가는 꽤나 컸다. 아마도 이 모든 느낌과 깨달음을 2천만 원이라는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얻어가지 못했다면, 분명 가깝거나 조금은 먼 미래에 나는 돈의 무거움에 짓눌려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내 미련함을 조금이나마 정당화하기 위한 그럴싸한 명분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이 불만, 괴로움, 고통, 자책, 분노 따위가 아니라 홀가분함, 가벼움, 반성, 희망, 안도, 다행의 기분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마도 방어기제가 작동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더 나은 나로 나아가기 위한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온전한 감정이라 확신해 본다.

(물론 속세 속의 가녀린 한 인간으로서의 미련은 조오금..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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