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8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1일 차
서울에서 취해 온 모든 것들을 분리수거함에 정돈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가려면 그동안 누렸던 보편적인 것들에게서 멀어지는 일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누구나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이미 나도 수차례 느끼고 얻어왔기에 그 안의 것들을 글로서 치환할 충분한 재료는 모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생경하고 녹록지 않을지라도 가슴 설레는 일들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만의 글로 치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보통의 삶, 보편적인 것들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제일 먼저 이 서울, 내가 15년 간 부대껴온 일상적인 것들이 응축된 이 도시에서 나를 벗겨내야 했다.
나에게 서울이란 행복하고 기쁜 일들이 그렇지 못한 일들에 비해서 꽤나 간헐적이고 일시적이게만 일어났던 공간이다. 대학 시절 돈이 마땅치 않아서 월 30만 원이 안 되는 허름하고 비좁은 고시원에서 4년을 지냈다. 한 달을 내내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라면으로만 허기를 채워야 하는 때도 있었다. 매일 무수히 쌓이는 과제에 짓눌려 취업을 강요당하는 삶을 4년 내내 살아야 했다. 분필을 잡고 수학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학원 강사일도 해봤지만, 학구열이 드높다 못해 강박에 가까운 학부모님을 만나 시달려보기도 했다. 우연찮게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가 몇 년간 고생하면서 고액 연봉자가 되었지만, 월급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하고 지쳐 있었다. 헌신했던 회사에서 사직을 권유당했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몇 개월을 집에서만 칩거하기도 했다. 무심코 프리랜서 일을 선택했지만 불안정한 수입을 내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글이 선사하는 감정의 고폭은 희극보다 비극에서 그 진미를 발휘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그동안 서울의 각박함과 삭막함이 내게 건네준 비극은 나의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 보다 더 짙은 비극은 굳이 직접 경험해보고 싶진 않았다. 살 만큼 살았고 힘들 만큼 힘들어봤고 외로울 만큼 외로워 봤기에 이제 서울에게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다 자신했다.
청계천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길.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무심코 맡은 냄새가 나의 발걸음을 유턴시켰다. 꽤나 자극적이고 매콤한 향. 그 안에서 불의 향기 묻어 나왔다. 분명 맛있는 무언가를 굽고 있는 냄새임이 틀림없었다. 평소대로라면 냄새를 맡고도 그냥 지나쳤을 일인데, 꾸역꾸역 냄새의 근원지로 한 발자국씩 내디뎌 보았다. 냄새에 이끌려 수 걸음을 걸어서 도착한 근원지. 꼼장어 집이었다.
붉은 지붕에 허름하고 어두운 내부, 맛집임을 증명하듯 줄 서서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 연탄불에 앞에 옹기종기 모여 꼼장어와 함께 소주를 목젖 뒤로 넘기는 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에 오면 꼭 들러야겠다."
응? '다음에 오면'? 나는 오늘 서울과의 작별을 선언했는데? 나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려 도착한 가게 앞에서 지도 앱을 켜고 이곳을 내 폰에 저장해두려 했다. 지극히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행동. 나는 분명 서울과의 작별을 선언했을 텐데. 이곳을 굳이 돌아오고 싶지 않아 정한 작별이었기에, 언젠간 다시 돌아오리라 예정해두지도 않았다. 나의 행동은 이런 나의 결심에 꽤나 위배되는 짓이었다. 이곳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내 무의식이 보내는 무언의 항변이었을까. 그저 내 습관에 기인한 행동이었을까. 의미를 두지 말자는 생각에 지도 앱을 끄고 꼼장어 집을 벗어나려 했다. 곧장 몸을 180도 돌려 반대편으로 향한 내 눈앞에는 청계천과 그 주변 풍경이 보였다.
대학 때 과제를 위해 잠시 이 주변을 와보기는 했어도, 청계천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대면해 본 적은 없다. 나에게 서울은 숲을 가장한 빌딩들이 주야장천 텁텁한 이산화탄소만을 내뿜는 곳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빌딩 속 사람들에게서 내뿜어지는 노곤함과 고달픔. 그 노곤함과 고달픔을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의 매연에 담아 허공에 뿌려대는 자동차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그것들을 몸속으로 삼켜낸다. 이 악순환을 정화시키는 존재를 서울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다.
그런 나의 두 눈에 매우 또렷하게 자리 잡은 청계천의 존재는 내가 서울에서 '난생처음 겪어본' 기분이자 느낌을 선사해 줬다. 차갑고 냉정한 쇠로 된 난간을 보드랍게 부여잡는 이름 모를 풀들. 남의 사정은 신경 쓰지 않는 단단함과 매정함을 지닌 아스팔트 길이 아닌, 고단함을 어루만지고 주물러주는 흙이 만든 둑길. 사람들은 그 둑길을 아주 천천히 거닐며 하루의 묵은 한숨을 몰아 내쉬고, 푸른 가로수는 그 내쉰 숨을 마음껏 취하는 대신 가벼운 산소를 건네준다. 잔잔하고 여유롭게 졸졸거리는 냇가의 물은 서울의 빠르고 거침없는 시공간을 거부하고 있었다. 순리보다는 역행을, 자연스러움보다는 역경을, 순응보다 반항을, 함께보다는 각자도생을 당연함으로 보는 이들을 비웃듯 냇물 가운데 오리들은 그 흐름에 자연스레 순응하며 여유롭게 유영한다.
삭막한 것은, 매정한 것은, 냉정한 것은 서울이 아니다. 서울을 탓하는 내가 삭막한 것이다.
허름한 고시원일지라도 얼굴 크기만 한 창문 밖에 보이는 보름달에 행복해하고 장대빗소리에 낭만에 젖었던 것은 서울이 아니라 나다. 30알 들이 계란 한 판 사고 라면에 한 알 똑 올려 한 입 후루룩 빨아들이며 포만감에 젓었던 것은 서울이 아니라 나다. 과제에 시달리다가도 학교 후문 뼈해장국에 소주 한 병이면 금세 기쁨에 흥건하던 것은 서울이 아니라 나다. 분필을 칠판에 휘갈기며 학생들과 하하 호호 거리던 것도 서울이 아니라 나다. 노력이 재능임을 깨닫고 무아지경에 빠져 실컷 밤새우며 성장을 함께해 온 동료와 회사를 잊은 것도 서울이 아니라 나다. 권고사직 이후 나를 있는 그대로 대면해 본 혼자만의 감사한 시간 또한 나의 시간이었다. 수입이 없던 와중에도 시간과 공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던 행복 또한 나의 모습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 자신의 모습도 비관하는 대신 애꿎은 서울을 부정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루하루 마주해야 하는 삭막하고 고립된 현실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계관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자신이 창조해 낸 산유물임을 잊고 지낸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자신의 삶에 무뎌지고 삶 그 자체에 대해 감탄하는 날이 줄어든다. 서서히 삭막하고 텁텁한 감정들만이 삶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부유물로 떠오른 감정들을 토해낼 곳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 서울이라는 시공간이 유일하다 보니, 어느새 그 감정들이 서울의 것들이라 착각하고 탓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연을 가장해 나를 청계천으로 이끈 꼼장어 구이 냄새에 감동하고, 청계천의 청량한 모습에 감탄하는 나의 모습에서 그동안 내가 오해한 서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과거를 연민하고 현재를 직시하는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아직 나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삶의 시공간 안에서 감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감동을 느낀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그 안에서 하루하루를 감탄으로 채워가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마다 마주치는 전철 개찰구를 지나갈 때도, 평범한 이들의 활기찬 출근 발걸음에도, 환하게 웃어주시는 버스기사님의 웃음에도, 퇴근길 어둠을 밀쳐내는 달빛에도. 서울의 매일에는 감탄으로 차오를 오늘이 존재한다.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염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는 결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설령 서울을 떠나 자신이 꿈꾸던 어딘가에 도달해도 일상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다.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서울과의 작별이 아니었다. 과거의 삭막함을 분리해 내고 그 안에 잊혀 있던 행복을 찾아내 수용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맞이할 서울에서의 여행 마지막 날들에 보다 더 감동할 수 있도록, 나의 서울에서의 일상이 꽤나 멋지고 감탄스러운 일들이 그득하다는 것을 만끽할 수 있도록.
삭막한 것은 서울이 아니다. 바로,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