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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18. 2024

'성공'하고 싶은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

16년 겨울 어느 날, 서울에 작별을 고하기 한참 전


어둠이 고요함을 채갈 만큼 공허한 한겨울 늦은 밤. 작디작은 사무실 속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집에 들어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무실에 놓인 접이식 침대는 내가 굳이 주기를 하지 않아도 내 땀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가 제 각각인 방향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퇴근길에 오른 지 약 6시간 정도 지난 지금, 사무실에는 여태까지 일을 놓지 못하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나와, 아예 사무실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는 형만 남았다.



 모니터가 쏘아대는 빛만이 사무실의 무거운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새벽 3시, 드디어 끝났다. 지금 해내지 못하면 안 될 일. 일찍 잠에 들어서 내일 제정신으로 두 눈 번쩍 뜨고 해내면 될 일을 왜 굳이 새벽까지 부여잡고 놓지를 못하는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 아침마다 허리를 숙이고 컴퓨터 전원을 키는 일, 책상 위에 놓인 폰 화면을 켜고 카카오톡을 여는 일, 하루 세끼 밥 먹듯 너무나 평범하고 쉬운 일상을 시작하는 일인데, 눈을 다시 감고, 전원을 끄고, 앱을 닫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렵고 망설여지는 일일까.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이는 새로운 일들을 처내는 것이 정규 업무시간 안에서는 쉬이 해내지 못하는 일임을 한탄하는 일도 지쳐간다. 이제 입사한 지 딱 3개월이 지나가는 밤. '성공'을 위해 선택한 내 결정을 도로 무를 수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간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사무실로 들어온 형. 침과 땀에 절여져 누렇고 하얗게 얼룩 핀 침대에 몸을 누구 전, 나는 그에게 질문 하나를 툭 내뱉는다.


"형, 저 성공할 수 있겠죠?"

......

잠시동안의 정적이 지나고, 형이 내뱉은 것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되물음이었다.


"야, 성공이 뭔데?"



24.09.18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28일째



16년 가을, 나는 자그마한 학원에서 분필을 잡고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입사를 제안한 형은 내 학원강사 선배로, 서울 토박이였다. 나는 그 형을 좋아했다. 나이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현실을 도피하지도, 그렇다고 현실에 갇혀있지도 않은, 그저 '그 답게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멋졌다. 형은 강사일을 하면서 친구와 자그맣게 사업을 하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매진하기 위해 형은 학원을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평생 분필로 칠판에 숫자, 도형이나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를 적당히 줄다리기하는 삶이 내 여생이라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형이 제안한 새로운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길이 시작되는 지점을 고개를 내리깔고 보았지만,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다듬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형이 내민 손길을 기꺼이 뿌리치지 않았다. 주변 누구의 동의도 없이 내 멋대로 그 길로 들어섰다.

 그 길에 들어서면서 그는 나에게 미래에 다가올 청사진을 제시했다. 돈, 유명세, 명예, 권위, 권력. 분필만 잡았으면 절대로 얻어보지 못할 미래의 것들.  모든 것들을 제대로 취하기 위해, 20대 중반까지 쏟아부어 없는 노력을 회사에 투여했다. 노력이 동날 때는 내 생명을 가불하고 노력을 대출받았다.

 덜컥 겁이 났다. 두려웠다. 다시 또 내 생명을 담보로 노력을 대출받고, 언제일지 모를 미래의 보상으로 대출금을 일시 상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심스러웠다. 입사 3개월 차에 예고 없이 찾아온 두려움에 형에게 내뱉은 질문 '형 성공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의 대답


'성공이 뭔데?'


이미 그의 되물음은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충분했다.

차라리, '저 돈 많이 벌 수 있겠죠?', '이 지긋지긋한 일은 대체 언제 보상이 될까요?' 이런 노골적인 질문들로 현재의 내 피로도를 생색내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입사할 적 그가 나에게 제시한 청사진이 나의 성공의 청사진인 양 오해한 나머지, '작금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 나를 내팽개쳐둔 것은 당신'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나의 모습을 보이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다. 거진 10년. 여전히 나는 그의 물음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 그가 나의 머리 위로 그려준 청사진은 결코 나의 청사진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 하나를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꽤나 염치없지만 흐뭇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형이 말한 청사진의 일부를 내 것으로 취해보기도 했다. 회사에서 이룬 부유, 유명세, 명성, 권위, 권력은 잠시나마 나의 성공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 중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겨울 새벽 3시 그날, 모니터에서만 나오는 빛을 부여잡고 있던 나는 아마도 내 것도 아닌 성공에 목매달고 있다 보니, 두려웠을 것이다. 어둠을 몰고 올 어제와 똑같은 가혹한 내일 아침이 두려웠을 것이다. 아침은 밝아왔지만 정작 성공이라 생각해 선택한 길은 여전히 어둡고 침침했으니. 차라리 어두컴컴한 사무실의 어둠이 더 친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형에게 질문을 내뱉기 직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성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는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네가 걷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이든, 어딘지 모를 너의 길의 종착점에 다다를 때까지 너는 '성장'과 함께하고 있을 테니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지금처럼 묵묵히 새벽의 어둠을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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