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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11. 2024

서울과 작별하는 중입니다

프롤로그

여행의 마지막 밤을 힘 껏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퉁퉁 부은 눈을 비벼대며 부랴부랴 짐정리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숙소에서의 마지막 샤워를 끝낸다. 여권은 잘 챙겼는지, 놓고 가는 것은 없는지, 소중한 이에게 줄 선물은 잘 챙겼는지 마지막 점검을 마친다. 캐리어를 끌고 방문 밖을 나선다. 

 깊은 한숨이 단전에서부터 밀려온다. 이내 메마른 목구멍을 타고 밖으로 뿜어져 나온다. 한숨과 함께 밀려오는 왠지 모를 '아쉬움'. 온 힘을 다해 즐긴 여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밀려오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다. 


'Thank you, See you later.'(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숙소 로비에서 직원이 체크아웃을 도와준다. 타지의 낯선이가 밝은 표정으로 작별을 맞아주는 것이 이리도 아쉬울 일인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는 무미건조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을 최대한 눈에 듬뿍 담아 두어야 한다. 언제 또 들릴지 모를 현지인들의 대화를 내 귀에 최대한 많이 담아두어야 한다. 다시는 먹어보지 못할 수도 있는 이곳의 음식을 마지막까지 꾹꾹 위장에 우겨넣은다.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모든 오감을 동원해 억지로라도 눌러야 한다. 

 자, 이제 공항이다. 수속과 출국 심사를 마친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내 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여행은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얼굴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비행기 창문으로 목을 쭉 빼 바깥 풍경을 담는다. 비행기의 바퀴가 땅에서 멀어져 간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어제만 해도 온전히 모든 것을 만끽했던 여행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간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다. 여행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재밌으면 재미있는 대로, 각자가 느끼는 아쉬움에 여러 이유를 붙인다. 다시 찾아오겠노라 확약할 수 없음을 마음속에 감춘 채로.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서울에서의 삶. 끝을 예정해두지 않았던 서울에서의 시간. 제주 촌놈이 서울 큰 도시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설렘은, 서울이라는 도시 특유의 삭막함과 텁텁함 그리고 각박하고도 활기찬 분위기와 한데 뒤섞여 다양한 감정으로 치환되어 왔다. 좌절, 우울, 격정, 분노, 쾌락, 희망, 희망, 환호, 환희 그리고 그 외의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까지. 

 23년 초가을 시원한 새벽 공기를 힘껏 들이쉬며 글쟁이를 남은 생의 운명으로 다짐하던 날,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미 이곳에서 내가 품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은 쉼 없이 품어 왔다고 확신했다. 그 순간, 더 이상 내가 이곳, 서울에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 버티고 있어 본들 무의미하다. 내가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내가 나를 무너뜨려야만 겨우 받아낼 수 있는 감정들이 예기치 못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 섞인 생각이 들 뿐. 그리고 이 생각의 끝자락에는 내가 서울에 그다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마지못해 내린 결론 또한 자그맣게 묻어나 있었다.



 여행이었다. 나에게 15년의 서울 생활은 출국 날짜를 예정해두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동안의 시간이 여행이었음을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서울에서 내가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은 이미 모두 품었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쉬움', '애틋함'이 밀려온다.

 청계천의 물줄기, 빌딩 숲 사이로 숨어드는 햇살, 서울 곳곳을 거니는 각자의 사연이 담긴 발걸음, 출퇴근 시간 속 부대끼는 영등포의 차선들. 여태껏 내가 외면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서울의 모습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곳을 최대한 눈으로 많이 담아보고 싶다. 귀를 기울여 모든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도시를 배회하는 숨들을 느껴보고 싶다. 

 서울은 그대로였다. 내가 설렘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온갖 잡다한 감정들을 열과 성을 다해 받아들이거나 감내했을 때도, 서울은 그대로였다. 변해 온 것은 나였다. 그 모든 감정의 씨앗을 심고 키워온 것 또한 나였다. 서울과의 작별을 고하고 나서야, 서울은 그대로임을, 내가 삭막했음을 겨우 알아차린다. 



그래, 서울과 작별하자. 

오늘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매일매일이 서울과의 기나긴 여행을 끝내는 마지막 날이다. 



하루하루를 서울이란 여행지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을 하면, 나의 곁에 존재하는 서울의 모든 것들에 애틋함과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여전히 나는 서울이라는 존재에 그다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듯 하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니, 아마도 예정되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작별은 예정해 두기로 한다.

 다만, 정말로 이 서울에서의 여행 마지막 날이 도래했을 때, 부랴부랴 서둘러 짐을 챙기며 아쉬움을 삼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길. 서울을 떠나는 로비 앞에서 서울이 내미는 작별의 웃음에 나 또한 편하게 웃음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길. 출국하는 공항으로 향하는 길 위의 모든 것들에, 아쉬움보다 애틋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길. 15년 간 살아온 서울이란 곳에서의 여정을 앞으로 살아갈 남은 생이 쉬이 압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나는 간절히 바라며, 


나는 오늘도 서울과 작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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