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106일째
2년 만의 출근길이다. 집 계약이 마무리되는 내년 4월 즈음엔 고향으로 내려가는, 본격적인 서울과의 작별 수순을 준비하려던 내 계획은 꽤나 순식간에 조정되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언제 업데이트했는지도 모를 링크드인의 프로필을 보고 나와 함께 일해보고 싶다며 걸려온 전화였다. 낯선 남자와의 통화 다음날, 낯선 장소로 들어가 낯선 이와의 면접을 보았다. 때마침 통장엔 돈이 메말라 가던 때였고, 나는 간단한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나의 과거를 헤아리고 현재를 함께하길 바라는 손길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낯섦에 이끌려 나는 얼마 후 입사를 결정했고, 그날이 오늘이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낯선 제안, 허나 그 제안에 손쉽게 끌려가는 나의 선택만큼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서울을 올라오고 나서 내 삶의 그래프의 변곡점은 항상 낯선 제안의 시작점과 같았다. 대학교 1학년, 동기의 삼촌이 운영하는 수학학원에 알바로 일했다. 생각지도 않은 옵션이었으나 덕분에 가르치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되어 군 제대 후 자연스럽게 수학학원 알바일을 했다. 학과 성적이 꽤나 좋았기에 그대로 대학원 랩실에 들어가서 교수로서의 커리어를 밟아보려 할 때, 다니던 수학학원의 원장님에게서 강사 제안이 들어왔다. 선뜻 원래 계획을 수정하고 학원계로 발을 들였다. 평생 분필을 잡고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학원 안에서 만난 선배의 제안으로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가 한 회사의 임원도 되어봤다. 5년 동안 나 자신을 갈아 넣은 결말은 권고사직이었다. 백수생활을 이어가며, 다시는 직장인은 되고 싶지 않다며 무력함에 젓어들 때, 17년 만에 만난 친구 덕에 헤드헌터라는 프리랜서 일도 해보았다. 낯선 제안을 따라 생경한 경험을 삶에 입혀가는 것이 내가 서울에서 택한 시간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갑작스레 찾아 온 낯선 제안이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가 선택해 온 필연들이 내 앞에 툭 던지고 간 익숙한 선택지 같았달까.
딱 하나, 이런 나의 낯선 선택지 속에 반례가 있다면, 올여름 결심한 글쟁이로서의 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느 누구의 제안도 아닌, 오로지 내가 선택한 가장 두렵고 설례는 길. 온전히 내가 내 힘으로 길을 걸어가야 하고 그 길을 길들여야만 하는 선택지.
24.09.25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35일째
입사한 지 일 년 되는 날을 약 한 달 앞뒀다. 그리고 나는 모래 퇴사를 한다. 만 1년은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 퇴직금. 서른 날만 더 근무하면 알아서 통장에 꽂히는 이 돈을 나는 포기한다. 미련이 없다는 말을 쉬이 할 만큼 배포가 큰 사람은 안된다. 퇴직금을 받고 퇴사한다면, 그 돈을 요긴하게 쓸 곳은 상당히 많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아쉬움을 애써 부정할 뿐이다.
내 인생의 반례, 글쓰기를 업으로 선포했다 하더라도, 작금의 나의 글이 돈으로 환산될 만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무모하게 낭만스러워지는 성격은 아니다. 나는 현실을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았다. 작년 11월 이곳에 입사하면서 나름 다짐한 일이 있다. '내가 맡게 될 일이 보편적 삶을 살기에 적당한 돈을 벌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라 생각하자.' '이 곳은 내가 창조해 낸 활자가 그 가치에 마땅한 노동의 대가로서 인정받을 때까지만 잠시 머물 곳이다.' '결코 이 일이 내가 길들여야 할 길을 압도하는 길이 아님을 잊지 말자.'
간과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부여된 합당한 책임감을 요구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각자 나름의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적정 규정 속도 안에서 가장 최솟값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의 실속만을 챙기기 위해서 주변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나에게 부여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었다. 비록 백수가 될지언정 나 자신을 위한 책임감을 무시하는 일이 본능적으로 거북스러웠다.
여태까지 내가 택한 모든 낯선 선택에 있어서 진심은 부재했을지라도 책임감만큼은 외면할 수 없었듯이, 이번에도 그 책임감을 억지로 거부하며 이기를 부릴만한 배포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책임감과 진심 모두를 택하고 일과 글 모두에 최선을 다할 만큼 역량이 높다고 근거없이 호기를 부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하고, 내가 여태껏 일에 쏟은 책임감을 진심이 담긴 일에 쏟고자 한다.
내가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이 진심이 담긴 길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퇴직금에 미련을 남기고 지금 퇴사를 한다. 이 의지를 뚜렷하게 해주는 것은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갈 난생 처음 느껴본 설렘 덕분이다. 내 삶이 나태함의 경계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줄 두려움 덕분이다. 퇴직금은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그 미련을 대가로 나는 내 길을 온전히 걸어갈 한 달이라는 풍족한 시간을 더 벌었다.
퇴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