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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Sep 26. 2024

죽을 만큼 아파도 죽지 않는 병에 걸려 죽기를 바라는일

23.07.22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일 차


세상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나를 깨웠다. 왼쪽 어금니 뿌리 깊숙히 땅땅거리며 차오르는 고통, 평소 통증이 있어도 내성을 걱정하며 한 알씩만 먹었던 진통제를 두 알이나 입으로 우겨넣었다. 통증은 가라앉을 줄 모르고 하루 왼종일 나를 괴롭혔다. 참 운도 지지리도 없다. 하필이면 주말이라니.  날 먹은 진통제만 하더라도 6알, 번에 알씩 세번을 꼬박 챙겨먹었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택시로 15분 거리에 주말 저녁에도 문을 여는 약국을 찾았다. 턱을 부여잡고 있는 나를 보곤 약사는 바로 치통에 어울리는 진통제를 건네주었다. 약을 씹어먹을 기세로 비닐을 뜯고 비타민 음료와 함께 들이킨다. 나아지겠지, 괜찮을거야, 약사가 건넨 진통제보다 순간 밀려온 안도감의 효과가 어마어마 했다랄까.

 그 순간뿐이었지만.



23.07.23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5일 차


'오늘을 과연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한 여름 열기도 사그라들던 일요일 아침. 약을 오남용한 대가인지, 아니면 이미 시중 약으로는 손쓸 수 없는 상태여서 그런지, 잠시의 소강상태 이후 통증은 어금니 주변을 여전히 배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 것은 작금의 통증이 아니였다. 병원문은 월요일에 연다는 것.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려면 일요일 꼬박 하루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나 곧 다가올 게 뻔한 끔찍한 고통, 그리고 그 고통에 바둥거릴 나의 모습이 어금니의 통증보다 더욱 깊숙히 내 뇌에 뿌리 박혀 있다는 것. 있지도 통증을 만들고 공포에 몸서리 치는 나를 만들어 낸 것은 다름아닌 ''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꽤나 가혹했다.

 통증은 예상보다 매우 잔잔했고 하루를 견디기엔 나름 괜찮았다. 허나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머릿속을 공포가 휘집고 다니는 이상, 일요일은 결코 온전한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허상이 만들어낸 머릿 속 통증으로 두려움에 떨며 선 잠을 자다가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23.07.24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6일 차


일요일은 아무래도 태풍의 눈 안에 들어왔던 순간이었나 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일상이 주는 행복을 느껴보라는 치통의 자비였을까 아니면 경고였을까. 월요일 아침 치과를 찾아 마취제를 맞고 적절한 치료를 마쳤지만, 마취가 풀리며 오후 내내 통증은 지난 며칠보다 더욱 거세졌다. 하필 또 병원 문이 닫힌 시간에 맞춰서 통증이 몰려왔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도, 지난번 약국에서 산 약도 잠재울 수 없을만큼 거칠게 몰아붙이는 통증. 다가오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진짜 공포가 들이닥쳤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가 내 어금니를 렌치로 뽑아내고 깊숙히 패인 그 자리를 십자 드라이버로 끝없이 후벼파는 것만 같은 장면이 그려졌다.

 

 내가 밤을 견뎌낸 것인지, 밤이 나를 애처로워 지나쳐준 것인지도 모를 밤이 지났다. 그나마 얼음팩을 볼에 붙이고 있으면 통증이 꽤나 가라앉는 다는 것을 알았다.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얼음팩을 갈아끼워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내게 파고든 통증에 비하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아침이 되어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치아를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난생처음 멀쩡한 생니를 뽑았다. 생니가 뽑힐 때 주변 얼굴 근육도 함께 뽑혀 갈만큼 얼얼 거렸지만, 내 머리속에는 부디 생니와 함께 통증도 뿌리 뽑히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발치는 매우 빨리 끝났고, 의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이 이상 무언가는 손쓸방도가 없다는 사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면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야한다는 의사의 구태의연한 조언. 난생처음으로 진심어린 조언이 제발 쓸모없는 조언이길 바랐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조언에 복종해야만 했다.


 치아와 함께 뽑혀가길 바랐던 통증은 되려 내 턱을 유린했다. 발치 후 집에 돌아와 마취 기운에 잠겨 며칠간 제대로 붙이지 못했던 눈을 붙였지만, 마취가 풀리자마자 통증은 그동안 휘몰아쳤던 수준을 한참 웃돌며 내 왼편 얼굴과 목 주변을 침범했다. 잇몸에 머물렀던 염증이 얼굴과 목을 둘러싼 혈관 곳곳에 퍼지면서 얼굴이 탱탱 부었다. 얼음팩을 살짝 볼에 대는 행위가 나의 볼을 예리하고 날카로운 횟칼로 써는 짓과 같을만큼 이미 통증은 내 통제 밖에 있었다.


나즈막히, 입밖으로 꺼내기를 조심스러워 했던 본심을 한숨과 함께 내뱉는다.


'이대로라면, 이 통증을 하루 더 온전히 버텨야 한다면,,,

난, 죽고 싶다.'



23.07.25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7일  새벽



 통증의 해결책은 꽤나 간단했다. 서울에 몇 안돼는 치과 응급실에서는 의사가 주사를 넣어주고, 내 잇몸에 염증 통로를 만들어 염증을 빼내고 어림 잡아 세알려봐도 8종류는 되어 보이는 독한 약을 처방해주는 절차 하나로 근 나흘간의 통증을 잠재웠다. 일주일 간의 절대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끝으로, 올해 남들보다 빠르게 경험한 태풍 한복판에서의 시간을 끝냈다.

 내 얼굴을 어두운 먹구름보다 더욱 무겁게, 거센 돌풍보다 더욱 세차게, 그리고 차가운 빗줄기보다 더욱 냉정하게 파고들던 통증. 언제 다시 들이칠지 모를 공포감에 사로잡혀 만들어낸 허구의 단말마. 모든 것이 뒤섞여 죽음을 바랐다. 치통은 죽지 않는 병이었다. 그러나 나는 수없이 죽음을 고민했다. 소리 없이 죽음을 택하는 것만이 언제 끝날지 모를 치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이라면 감히 선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짧은 며칠간 끝없이 반복했다.





23.07.25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7일 차 아침


해가 뜬다. 따스하다. 바람이 은은히 왼뺨을 스친다. 시원하다. 공기를 마음껏 깊숙히 들이마신다. 이보다 신선할 수 있을까.


  죽지 않는 병에 걸려 죽음을 고민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여느때와 다를게 없는 이날을 감탄하는, 오늘이 잊힐 수가 없다. 밤의 습기를 머금고 동쪽 하늘에서 기지게를 펴는 아침 햇살,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에 감탄할 수 있는 오늘을 잊고 싶지 않다.

식은 땀으로 찌든 침대에서 벗어나 시원한 물로 땀을 씻어내는 일, 온전한 치아와 턱으로 단물이 나올때까지 밥알을 꼭꼭 씹어 목 넘어로 삼키는 일,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가는 아침을 맞는 일, 일터에서 마땅히 노곤해짐을 견디고 뜨끈한 방구석에 몸을 지지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일상에 감탄하는 삶을 살 수 있음에는 이 나흘이 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결코 잊히고 싶지 않다.


서울과의 작별을, 마지막 여행을 고하길 정말 잘 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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