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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Jul 02. 2024

26부 : 마지막 쿠데타 - 일본 제국의 마지막 날.

옥음방송의 송출을 막아라!

일본의 항복을 결정한 어전회의와 궁성사건을 다룬 영화, "일본의 가장 길었던 날"의 장면. 육군은 끝까지 항복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8월 9일은 일본 제국에게 가장 잔인한 날이었습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8월 9일 오전에는 중재를 기대하고 있던 소련이 만주를 침공해 관동군을 박살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련군에 대항하기 위한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 회의장에 "나가사키에도 신형폭탄이 투하되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쁜 비보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로 이 날 야심한 시각, 일본 정부는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항복의 여부에는 이미 반대가 없었습니다. 육군이 줄곧 나게 외쳐오던 "본토결전"은 이미 허상이었고, 신형폭탄과 소련의 참전이 이미 모든 희망을 깨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굉장히 격렬하게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항복조건"에 대한 논의 때문이었습니다.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외무대신을 위시한 파벌은 한시라도 빠르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 항복에 대한 일본의 조건은 단 한 가지, "국체 유지"였습니다. 즉, 무조건 항복을 하는 대신에 천황제만은 유지시켜 주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1차 세계대전 당시 패전한 이후 쫓겨난 독일의 카이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를 위시한 일본 육군은 이에 반대했습니다. 항복조건이 일본에게 너무나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군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연합군이 아닌, 일본군 주도하에 스스로 무장해제를 진행하고, 전범재판도 일본이 스스로 진행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회의는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본토 결전을 부르짖으면서도, 결국 대세를 뒤집지 못한 육군의 추태였습니다.

  회의의 결론이 나지 않고 격렬해지자, 내각총리대신 스즈키 칸타로(鈴木貫太郎)는 여기에서 천황에게 어떻게 할지를 물어보았고, 여기에서부터 종전 결정이 "천황의 성스러운 결단" 덕분에 내려졌다는 나름의 신화(?)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천황의 성단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던 일본의 전쟁이 드디어 끝을 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지이요.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로히토 천황은 이 결단에서 천황제 유지를 조건으로 항복하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어찌 되었건, 결국 천황의 의견을 들은 이상 더 이상 육군도 고집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8월 10일,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육군의 불만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육군은 계속해서 불만을 표출하였고, 항복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 일절 사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대항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히로히토 천황은 8월 14일, 항복에 찬성하지 않는 육군과 해군 군령부의 의견에 대해 더욱 강경하게 "결정"을 내렸고, 더 이상 일본 육군과 해군 군령부도 옥쇄를 고집할 수는 없었습니다. 천황이 공식적으로, 그것도 두 번이나 내린 명령에 대해 복종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궁성은 천황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위한 기술진들의 방문으로 어수선했습니다. 궁내성은 되도록이면 빠르게 항복선언문 낭독을 녹음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날 점심즈음까지도 천황이 "최종결정"을 내려야 할 정도로 우왕좌왕했던 일본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으며, 그날 저녁에는 "다음날 오전에 천황의 중대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라디오 방송이 전국에 송출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14일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각, 히로히토 천황에 의한 항복서 낭독 녹음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다음날 방송이 송출되면 모든 전쟁은 끝나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육군, 그중에서도 강경파 장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일본 육군 내부의 젊은 청년 장교들의 분노는 이미 극도로 올라와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였고, 육군대신에게 병력을 동원해 총리대신을 비롯해 항복에 찬성한 정부인사를 모두 제거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본토결전을 치르자고 주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일본의 가장 길었던 날>의 한 장면. 젊은 장교들은 항복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분통을 터트리며 쿠데타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군대신이 움직이지 않자, 이들은 인근 부대에 연락을 돌리면서 쿠데타에 동조할 부대나 장교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쿠데타는 조용히 움직여도 모자랄 판인데, 이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천황이 이미 항복방송을 녹음했다는 소식을 듣자 망연자실하고 말았습니다. 쿠데타 세력의 장교들은 궁성 인근의 제1 사단장을 찾아가 쿠데타를 종용했지만 먹히지 않자, 사단장과 참모장을 그 자리에서 살해하였습니다.

  목적을 잃은 장교들이 드디어 궐기한 것입니다.


  이들은 1 사단장의 이름으로 사단 내 모든 병력을 출동시키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방송국을 장악했습니다. 일단 항복 녹음 방송이 방송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항복을 주장한 정부 주요 인사를 살해하고 버티면 대세가 바뀔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세부적인 조율이나 세밀한 계획 따위가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이들은 녹음본 원본을 탈취하지도, 주요 인사를 제거하지도 못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엉성하기 짝이 없는 쿠데타였습니다.

  게다가 정신을 차린(?) 인근 부대들이 이 소식을 듣고 즉각 출동태세를 갖추자, 이성을 잃은 이들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궁성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천황의 침소까지는 차마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마도 2.26 사건때와 마찬가지로 천황에게 자신들의 "진심"(?)이라고 보고하고 동의를 얻고자 한 최후의 발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히로히토 천황도 결국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천황이 격분했다는 소식을 접한 쿠데타군은 더욱더 사기가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일은 점차 밝아왔고, 늦은 오전이 되자 쿠데타 군은 모든 희망을 버리고 주동자는 자결, 나머지는 해산하면서 일본 제국 군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궁성사건을 다룬 일본 영화의 한 장면. 너무나도 엉성한 쿠데타는 주동자들의 자결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러한 천황의 옥음방송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만, 세세한 설명은 차후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한 부분입니다. 당시의 천황은 지금처럼 단순히 "상징"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고, 프로이센의 카이저와도 같이 초헌법적인, 법률 위에 군림하는 절대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종전 결정과 패전 이후의 천황제 유지를 위해, 전쟁 책임은 "일본정부"에 있지, 상징적 존재인 천황에게는 아무런 의사결정의 능력도, 책임도 없다는 논지는 주의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전 시에도 천황의 재가는 분명히 있었고, 종전 결정에 있어서도 어지러운 정부의 다양한 의견을 한 번에 정리한 것이 바로 천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전회의에서 총리대신 스즈키 간타로가 천황에게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어본 것, 그것으로 인해 전쟁을 끝낼 성스러운 결단을 천황이 해냄으로서, 마치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일본을 구해낸 것과 같이 묘사되는 점에는 우리가 조금 더 혜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이렇게 "천황"이라는 존재의 뒤에 숨어서, 모든 전쟁책임은 일본정부 - 그중에서도 특히 군부 - 에게 있었다는 논리를 만들어 전후에도 전쟁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일종의 "설계" 였던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일본 제국이 항복하면서 공식적으로 모든 국가 간의 전쟁 상태는 평화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마무리 지어야 할 것들이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련과의 이상한 기류가 흘러나오는 것처럼요.



(마지막 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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