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전쟁, 그리고 협상.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벌어진 한국전쟁의 첫 1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장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전 초기의 불리함 속에서 낙동강 전선에서의 분투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압록강까지 올라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38도선 인근까지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서울을 재탈환 하였지만, 휴전선 인근에서 주요고지를 사이에 둔 고지전이 벌어지며 전선이 고착되자, 소련의 제의와 미국의 동의로 휴전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산군은 유엔군의 전력을 보고 적화통일을 위한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은 미국측 또한 3차 세계대전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휴전회담은, 결국 2년이나 더 길어지며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공산군은 휴전회담마저도 정치적/군사적 무기로 삼은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