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요한 밤,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찻잔을 손에 쥐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시간이 빚어낸 고즈넉함 속에서, 문득 잊혔던 페이지가 서서히 펼쳐지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10년 전, 내 삶이 가장 격렬한 질문들로 소용돌이치던 그 시절, 뉴욕의 익숙한 거리에서 스쳐 지나듯 다가왔던 한 노신사의 존재가 아득한 안개처럼 떠오른다. 60대쯤으로 보이던 그분은, 마치 오랜 시간을 살아낸 고목처럼 깊고 온화한 눈빛을 지닌 한국인 목사님이셨다.
"교회에 다니시는지요?", "신을 믿으시나요?" 그의 물음은 마치 나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 닿아있던 물음표를 건드린 듯했다. 당시 나는 삶의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방황하던 시기였다. 14세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상실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내 안에 깊은 공백으로 남아, 나는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혼돈의 시간이었다. 그러했기에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어떤 믿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진솔한 고백 속에는 길 잃은 영혼의 솔직함과, 동시에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이 스며들어 있었으리라.
그는 내게 짧고 알 수 없는 한마디를 건넸고, 놀랍게도 나는 마치 홀린 듯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한국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종교적인 배경도 없었던 나에게, 그 발걸음은 미지의 부름에 대한 순수한 응답과도 같았다. 낯선 문이 열리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 영혼의 표면에 스치는 듯한 기이한 안도감, 어쩌면 오랫동안 헤매던 자에게 비로소 허락된 '은혜'와 같은 평화가 물밀듯 밀려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 공간 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눈물은 오랜 시간 굳어졌던 내 안의 슬픔과 상처가 녹아내리는 강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나의 귓가에 조용히 스며든 한 곡의 노래가. 멜로디는 내 안의 모든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가사는 메마른 영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단비와 같았다.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그것은 단순한 가사가 아니었다. 혼돈 속에서 길을 잃었던 나의 영혼을 고요히 감싸 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평안을 선사하는 희망의 노래였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선율은 여전히 나의 심장을 울리고, 지친 마음에 깊은 위안과 놀라운 평온을 선물한다. 차 한 잔에 아로새겨진 그날의 기억은, 방황하던 영혼에게 던져진 한 줄기 빛이자,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이제 나는 그 순간이 나의 삶에 새긴 깊은 의미와 흔적들을 섬세하게 더듬어보고자 한다.
차 한 잔에 아로새겨진 그날의 기억은, 방황하던 영혼에게 던져진 한 줄기 빛이자,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첫걸음이었다. 이제 나는 그 순간이 나의 삶에 새긴 깊은 의미와 흔적들을 섬세하게 더듬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찻잔 위로 피어나는 김처럼 아련하지만 선명한 그날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며, 나는 깨닫는다. 어쩌면 삶이란, 거친 파도 속에서도 자신을 잠잠하게 지켜줄 단 하나의 멜로디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예기치 않은 만남 속에서 터져 나온 눈물과, 그 눈물을 위로하던 노래는, 방황하던 나에게 '나약함'이 아닌 '은혜'와 '평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치 '흐린 날'에 대한 에세이를 썼을 때, 흐린 날이 우리에게 나약함을 허락하고 진정한 자신과 가까워질 기회를 준다고 표현했듯이 말이야.
이 에세이는 단순히 10년 전 한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 각자의 삶 속에서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들에 대한 찬가이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홀로 헤매는 듯 느껴질 때, 우리가 놓치고 있었을지 모를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울리는 작은 위로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찻잔 위 몽상'을 통해 삶의 깊은 의미와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존재들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 길을 잃은 듯한 순간에 마주하게 될 예기치 않은 은혜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의 삶을 잠잠하고 아름답게 수놓을 멜로디가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