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뮤즈는 여러 얼굴을 가진다
뮤즈는 여러 얼굴을 가진다
우리는 흔히 뮤즈를 영감, 아름다움, 가벼움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하늘의 수호신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럴 때 전면에 나서는 것은 다른 뮤즈다 — 거칠고, 치우치고, 거리의 소음과 흙먼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뮤즈.
이 뮤즈는 정원에 숨어 있지 않고, 영원의 조화를 노래하지 않는다.
그녀는 협곡을 헤매고, 무덤에서 슬퍼하며, 바리케이드의 총성과 「라 마르세예즈」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하늘의 영원보다 그녀에게는 불안한 도시가 더 소중하다.
그녀는 민중의 심장이 뛰는 바로 그곳을 선택한다.
시인은 그녀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다.
그는 깨닫는다. 이제 위로의 노래를 내려놓을 때가 왔다고.
대신 그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말해야 한다.
설령 그 길이 벅차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도 —
그는 그 목소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시인은 자신의 시민적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노래꾼이 아니라,
“인류의 사절”이다.
예술은 장식이기를 멈춘다.
그것은 의무가 된다.
달콤한 환상이 아니라, 냉혹한 진실로 마음을 치유하는 의무.
시인이 선택한 뮤즈는 곧 양심의 목소리다.
그녀는 고통과 죄책감을 잊게 하지 않으며,
악 앞에서 눈을 감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의 노래는 쓰라리지만, 바로 그 안에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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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뮤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아름다움으로 이끄는 뮤즈인가, 아니면 진실을 요구하는 뮤즈인가?
아마도 진정한 뮤즈는 언제나,
가슴이 가장 세차게 뛰는 그곳에서 울려 퍼진다.
비록 그것이 위로의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거친 목소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