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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묘지, 빗물 젖은 발자국

낡은 공원, 시간을 넘어선 벗의 속삭임

by 나리솔


기억의 묘지, 빗물 젖은 발자국


고개를 숙이고 발치만 바라본 채, 비바람에 잔뜩 세운 재킷 깃 아래로 스며드는 한기를 피해서, 나는 낡고 평범한 공원을 가로질러 서둘러 걸어갔어. 오늘은 지름길로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처음엔 정신없이 달렸지. 대도시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내일의 할 일, 상사에게 밀린 의무, 이 모든 걸 팽개치고 휴가를 떠나야 할 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 빗방울은 불쾌한 한기처럼 뚝뚝 떨어져 깃 속으로 스며들었지. 모든 게 늘 그랬어. 분주하고, 익숙하고, 새로울 것 없는. 그런데 곧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이 나를 감쌌어. 빗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고 있었지.


이 신비롭고 버려진 공간은 단순한 공원 이상으로 다가왔어. 발걸음을 멈췄지. 냄새, 소리, 모든 것이 낯설지 않았어. 마치 전에 와본 적 있는 듯한 느낌인데, 한편으론 이곳이 처음이라는 확신도 들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감각, 혹은 어렴풋한 예감 같은 것이 나를 붙잡아 세웠지.


삐걱거리는 벤치들 중에서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 것을 골라, 손으로 차가운 빗물을 쓱 닦아내고 앉았어. 순간,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지. 내 어린 시절 전부를 보냈던 그 공원이었어.


앙상하게 검은 나무줄기들이 서 있고, 부러지거나 오랜 세월에 쓰러진 벤치들이 회색 가을 하늘 아래 축축한 검은 땅 위에 흩어져 있었어. 지금의 공원은 십자가만 없을 뿐, 영락없는 묘지 같았지.


내가 본 이 음울한 풍경은 내 머릿속 과거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어. 그 많은 색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자꾸만 눈앞에 또 다른 현실이 끈질기게 떠올랐어. 우리의 젊음, 학창 시절... 20년 전,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공원 곳곳에 활기 넘치게 흩어져 있던 젊은 친구들의 화려한 웃음과 목소리에 둘러싸여 환영받았지. 이곳에는 한때 삶이 가득했어. 그때는 영원히 이럴 줄 알았는데...


"이봐. 너도 여기 있니?"


나는 뒤를 돌아봤어. 오랜 옛 친구가 내 뒤에 서 있었지. 아마 그때 이후로 본 적 없던 친구일 거야. 그는 내게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었는데, 빗방울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또렷하게 보였어. 그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았더군. 다만 그의 눈동자 역시 이 공원처럼 세월 속에 희미해져 있었어. 그는 희미하고 슬픈 미소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보게 되어 정말 기뻤어.


"안녕, 앉을래?" 나는 내 옆 벤치에 고인 작은 물웅덩이를 손바닥으로 쳐서 한 번에 쓸어버렸어. 하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

"우리 둘 다 앉기엔 무리일걸!"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봤어.

"우리 공원이 어떻게 된 건지 좀 봐..."


그는 말이 없었어. 비는 점점 그쳐갔고, 주변은 완전히 고요해졌어. 그 순간, 나는 천둥소리처럼 또렷하고 분명하게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어. "우리 어릴 때… 기억나?" 그런데 갑자기, 나는 내 친구가, 바로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이 친구가 2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뒤를 돌아봤어.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어.


집에 갈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자리에서 일어나 축축한 낙엽을 발로 차며 공원을 벗어났지. 방금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럴수록 옛 친구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어. 아스팔트 위 맑은 물웅덩이를 발로 질척거리며 걸어가다, 그 안에 비친 오래된 공원의 거꾸로 된 모습을 보았어. 마치 내 지나간 삶의 뒤집힌 모습처럼, 유령 같은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말이야. 바람이 등 뒤를 불었고, 어디선가 날아온 까마귀들이 불안하고 위협적인 소리로 울기 시작했어.


나는 홀로 길을 따라 걸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유일한 친구였을지도 모를 그의 익숙하고 정겨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우리 어릴 때..."




이 에세이는 무엇에 관한 걸까?

이 에세이는 버려진 공원의 이미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의 조우를 그리는 작품이야.

기억과 시간의 주제: 주인공은 우연히 어린 시절의 공원을 발견하게 돼. 웃음과 생명으로 가득했던 젊음의 밝은 기억과, '묘지'처럼 황량하고 망가진 공원의 현재 모습 사이에서 강렬한 대조를 느끼지. 공원은 버려진 과거와 잃어버린 가능성들을 상징하는 은유가 되는 거야.

상실과 수용의 주제: 죽은 친구와의 만남은 이 에세이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야. 주인공은 처음에는 그를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이지만, 문득 그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지. 이 에피소드는 과거와 기억이 현재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며, 현실과 바람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지우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

고독과 실존주의의 주제: 마지막에 주인공은 홀로 공원을 떠나지만, 머릿속에는 친구의 목소리가 맴돌아. 이는 육체적으로 사람이 떠나도 그들의 존재는 기억 속에 남아, 기억만이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지.

이것은 이야기적 요소를 지닌,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성찰이 담긴 문학적(예술적) 에세이야.

스타일: 이야기 전체에 멜랑콜리하고 분위기 있으며, 서술적인 느낌이 흐르고 있어. 빗방울, 냄새, 고요함, 하늘의 색깔 등 감각적인 묘사들이 많아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네.

주요 의미는 다음과 같아: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이 에세이는 시간이 얼마나 가차 없는지 보여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물리적인 세계에서 과거를 찾으려는 시도는 실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공원은 파괴되었으니').

기억의 가치: 변함없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기억이야. 마지막에 주인공이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과거의 진정한 삶이 버려진 공원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

자기 이해: 과거와의 만남은 주인공을 "분주하고, 익숙하고, 새로울 것 없는"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줘. 이는 그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우선순위를 다시 돌아보고, 자기 안에서 잃어버린 부분(어쩌면 삶의 즐거움을 알았던 그 부분)을 깨닫게 해.

이 에세이는 현재를 소중히 여기되, 우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 모든 외부적인 것들이 허물어지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내면의 '기억의 묘지'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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