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초이 Madame Choi Feb 04. 2023

Ep.14 사이공의 향기

<레트로 스타일의 'My Linh', 'My Tam'의 노래와 함께>

 사이공을 사이공스럽게, 사이공을 더욱 사랑스럽게 하는 향기들이 있다.

이 냄새들을 맡으면 난 언제 어디서든 내가 사랑하는 도시 '사이공'을 떠올리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향기들을 글로 그려가지만 오늘 이 순간 사이공에서 살고 있는 내 코끝의 기록쯤으로 해두자.

눈을 감고 나와 함께 사이공의 향기를 느껴보자고 얘기하고 싶지만 눈을 감으면 글을 읽을 수 없기에 눈을 뜨고 레트로 스타일의 사이공을 떠올리게 하는 'My Linh'과 'My Tam'의 노래를 나지막이 들으면서 음악에 기대어, 향기에 기대어 사이공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https://youtu.be/OhX33ifUhkM,

https://youtu.be/4XZTGtLOxrI 



 어디서든 가장 쉽게 맡을 수 있는 상큼 발랄하지만 우아함이 가득한, 왠지 마사지받고 싶게 만드는 레몬그라스 향.

비 오는 날의 동커이 거리를 닮은, 묵직하고 그윽하지만 알싸한 생강향.

주로 오전에 흔히 맡을 수 있고, 잠깐 맡으면 포근하지만 딱 5초 후부터는 머리 아픈... 엄마 파우더 향의 베트남 세탁세제 향.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쟤스민 향.

베트남의 날씨만큼이나 달큰 뜨거운 계피향.

눈송이처럼 작지만 그 작은 것이 힘껏 제 역할을 다해 천리까지 향을 낸다는... 밤마다 수줍게 피어나는 티엔리꽃 향.

거리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활짝 피어있는 프랜지파니(플루메리아) 향기.

자세히, 오래 맡아야 알 수 있다! 오렌지 쟤스민 향.

파인애플을 파서 그 안에 티라이트 캔들을 켜놓아 방향제로 쓰는데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달콤하고 진한 파인애플향.

윙훼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서 불어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바람에 스치어 날리는 오렌지 향기.

곳곳에 흔히 꽂혀 있지만 유난히 고고한 국화향기, 난초향.

천사같은 프랜지파니 꽃

 이쯤 해서... 해 질 무렵 저녁노을이 고개를 들 때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따라 사이공의 한 골목으로 가보자.

맨발의 아이들이 골목에서 공을 차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즐거워 보인다.


그 골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향들은

먼저 재스민 쌀로 짓는 향기롭고 다정한 밥 냄새.

화로나 숯에 굽는 고소한 고기 냄새.

아이들 땀 냄새만큼이나 꼬릿 한 늑맘(Fish sauce) 끓이는 냄새.

갑자기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쌀국수 육수 끓이는 냄새.

시큼, 상큼, 싱그러움 그 자체의 입맛 돋우는 라임과 라임잎 향기.

반쎄오(베트남식 녹두전)를 부치는지, 반컷(쌀가루 위에 새우를 얹어 바삭하게 부쳐내는 요리)을 구워내는 건지 코코넛 향 섞인 꼬소한 기름냄새.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코를 쏘는 맘똠(삭힌? 썩힌! 새우젓) 냄새.

우리네 부엌과 다르지 않은 생선 굽는 냄새.

시큼, 달큼, 매큼한 러우(베트남식 전골요리) 냄새.

매콤, 달콤한 샬롯 냄새.

가장 베트남 스러운 고수풀 냄새.

여기가 이태리 어느 골목인가... 잠시 헷갈리게 하는 마늘 100개쯤 볶는 냄새.

10미터 밖에서도 알 수 있는 두리안 냄새.

두리안 못지않은 잭프룻 냄새.

맡는 순간 피로가 가시는 새콤달콤 패션프룻 향기.

어느 집 노부부가 다정히 드시는지 은은한 연잎차 향기.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커피 핀에서 내려지는 달콤 쌉쌀한 베트남의 커피향기.

골목 노점 수레에서 구워지는 마른 한치와 버터구이 옥수수 냄새.

집집마다 널어놓은 말린 생선의 비릿 꼬릿 한 냄새.

뽀얗게 꼬소한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잡는 콩물 끓이는 냄새...

상상만 해도 각각의 향기가 코끝과 뇌를 스치며 기분 좋게 한다.

탐스럽고 싱그러운 라임

  그러나 어찌 좋은 향들만 사이공의 향기랴.

우기에 비가 한참 내리고 난 후의 물큰 개비린내.

건기에 더욱 심한 매캐한 오토바이 매연냄새.

수돗물 틀면 맡을 수 있는 강 냄새.

시내 중심가에서 가끔 마주하게 되는 쓰레기 냄새.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의 아이덴티티중 하나인 쿰쿰하고 습한 냄새.

집집마다, 가게마다 차려진 신당에 피워놓은 어지러운 향냄새.

호치민에서 택시를 타면 쉽게 맡을 수 있는, 고소함과 찌린내 그 어디쯤인 말린 판단잎 냄새.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며 얻어낸 사람들 저마다의 땀냄새. (이것은 향기라고 해두자.)


 좋은 향기든, 그저 냄새든, 나쁜 냄새든 그것들이 모두 모여 사이공을 사이공스럽게 만든다.

그저 사이공스러움...

이것이 나의 낭만 사이공이다.


#베트남여행 #레트로스타일 #해외살이 #베트남#여행맛집 #해외맛집 #여행 #브런치 #마담초이 #호치민 #사이공 #호치민맛집 #호치민여행 #레트로 #감성 #낭만 #동남아여행 #동남아맛집 #호치민살이 #베트남맛집 #베트남음식 #베트남커피 #동남아음식 #해외육아 #여행작가 #빈티지 #감성사진 #호치민카페 #일상




이전 13화 Ep13. 귀신 나온다는 그곳은 아름답기만 하더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