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미술관 산책 (ft.옛날 어느 가족 이야기.>
"거기 귀신 나온데... 거기 옥탑방에서 나온다잖아."
"나도 들었어... 근데, 귀신 얘기치 곤 좀 슬프던데?"
호치민시 1군 중심에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주변의 초록의 나뭇잎과 어우러지는 상큼한 레몬색의 프랑스풍의 고풍스러운 오랜 대저택이 있다. 이름하여 '호치민 시립 미술관'.
이 아름답고 오래된 건물에 어찌 이리 흉흉한 소문이 도는 것일까?
5년째 그것이 궁금하던 차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베트남인 예쁜 동생과, 미대 언니와 함께 애들 유치원에 보내 놓고 아침부터 나섰다.
그동안 구름 한 점 없던 호치민 하늘이 그날은 왜 으스스하게도 구름이 어둑어둑한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건 덥고 습한 공기였다. 입구에 들어서니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저택 세 채가 나란히 서 있다.
미술관답게 그 건물들 자체가 하나하나의 미술 작품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며 "우와~"를 연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술관이 아니었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 조명을 조절해서 작품을 보호하는, 그리고 뭔가 깔끔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미술관이 아닌 그냥 방치된 빈 방에 작품들이 벽을 따라 쭈욱 걸려 있었고 심지어 어떤 그림은 열린 창문에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적응을 하고 둘러보며 감상을 시작했다.
본관 1층은 컨템퍼러리 작품들이 전시되어있고, 2층은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과 베트남 전쟁을 내용으로 한 스케치와, 페인팅 작품들, 조소 작품들이 있었다. 3층은 베트남 미술의 발전사를 작가들을 중심으로 작품과 함께 전시해놓았다. 도슨트가 없어서 작품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나 해설을 듣기는 불가능했지만 함께한 우리 동네 미대 언니가 작품들을 보며 우리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설명을 해주면 그게 또 그렇게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작품들은 컨템퍼러리 작품도, 베트남 미술사를 볼 수 있는 사료적 작품들도 대체로 전쟁이나 식민통치 시절의 아픔을 나타낸 작품이거나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띠는 작품이었다.
생과 사가 갈리는 전장 한가운데서 치열하게 그린 것만 같은 크로키 작품들도 있고, 그 당시 그들이 사용했던 각종의 열악한 미술도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그것을 사용했을 화가들은 그 참혹함을 계속 보고 남겨야 함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화폭에 담았다면 좋았을 것을...
세 채의 건물 중에 가운데 별관에는 현대미술 작품들인데 대체로 디지털 아트 작품이나 조소 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맨 왼쪽 건물은 고대유물 전시관이다. 참파문화와 크메르족 미술, 불교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데, 함께온 우리 동네 미대 언니의 설명을 들으며 그렇게 작품을 감상하고는 '본래의 목적' 바로 '귀신 전설의 흔적 찾기'에 돌입했다.
이 아름다운 대저택은 19세기 말 사이공으로 이주한 화교 '후이 본 화 (Hui Bon Hoa)'씨의 집이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사이공에 철도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건설 예정지인 늪지대를 싼 값에 매입하여 다시 되팔아 큰돈을 벌었으며 전당포 사업도 크게 벌여 곧 사이공에서 가장 큰 부동산 재벌이 되었다. 당시 그의 재산은 20000여 채의 가옥에 맞먹었다고 한다. 그는 병원과 학교 등을 많이 지어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의 마제스틱 호텔, 뚜두 산부인과, 사이공 응급 의료센터 등이 그의 소유였다. 그의 가문은 곧 사이공에서 가장 유명한 4대 가문중 하나가 되고 ' Hui Bon Hoa 부동산 회사'를 설립하여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큰 아픔이 있었다.
그에게는 15명의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는 유독 막내딸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미술관의 꼭대기 방에 그녀를 위해 특별히 가장 아름다운 방을 만들어 가구와, 커튼, 침구, 조명까지 매우 아름답게 치장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사이공에는 원인을 알 수도 없고, 치료도 불가능한 전염성 괴질이 돌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막내딸이 그 병에 걸려버렸다. 인도차이나의 무역의 중심지였던 당시 사이공에는 없는 약이 없고, 신식 약이 많았지만 그 괴질에는 듣는 약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는 딸을 방에 가두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딸은 홀로 외로이 투병을 하다 죽어버렸고 그는 큰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딸의 시신에 흰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히고, 평소 그녀가 아끼던 인형을 함께 관에 넣어 그 방에 안치시킨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첫 번째 기일날.
후이 본 화는 하녀에게 방 문에 난 구멍으로 딸의 기일을 기리기 위해 밥을 넣어주라고 한다.
저녁이 되어 하녀는 밥그릇을 가지러 옥탑방으로 올라가는데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에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올라가 문구멍으로 밥그릇을 꺼내는데...
세상에... 그릇에 밥이 절반이 비워져 있었다. 너무 놀란 하녀는 촛불을 의지하여 문구멍을 살짝 들여다보는데 1년 전에 죽은 막내 아가씨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인형을 안고는 관에 걸터앉아 흐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얘기를 들은 호아 씨는 딸의 관을 땅속에 잘 묻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밤이 되면 옥탑방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호아 씨는 계속해서 딸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1901년, 부인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던 중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의 후손들도 베트남 전쟁 후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1975년에 모두 베트남을 떠나 그의 재산은 국가에 모두 환원되었다.
귀신 흔적 찾기...
우리는 그곳에 전시된 작품보다 그 저택 자체에 집중했다.
우리 어린 시절 학교처럼 저택 사이드 쪽에 빙~둘러 복도가 있고 그 복도에는 널찍하고 시원히 뚫린 나무 창문이 있는데, 어떤 창문들은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복도를 무지개 색으로 황홀하게 물들인다. 그리고 그 복도를 따라 방들이 있는데 정작 방에는 창문이 없어 방은 어둡고 습하다.
그리고 가운데 홀로 나오면 높은 천정과 장식 때문에 마치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던 공주의 성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중앙홀 정면으로 보이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너무도 멋진 엘리베이터가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낸다.(이런 식의 엘리베이터는 베트남 곳곳의 오래된 건물들에서 아직도 볼 수 있고, 탈 수도 있다.) 그리고 무도회장에 다다를 것만 같은 나선형의 아름다운 계단을 따라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무늬를 걸고 있는 청자색의 창살과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커다란 창문은 건너편의 레몬빛 건물과 초록의 나뭇잎이 숨바꼭질하는듯한 장관을 연출해준다. 이 장면은 아직도 생각만 해도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멈칫한다.
'ㅁ'자의 건물 중앙에는 중정이라 할 것 없는 공터가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도 그것을 둘러싼 레몬색의 건물과 20세기 초 '후이 본 화' 가족들이 살던 당시부터 있었을법한 아름드리나무의 초록잎이 어우러져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이제 가운데 건물.
내 생각에는 그 귀신얘기에 등장하는 딸이 실제 인물이고 실제로 옥탑방에 살았다면 구조상 이곳의 옥탑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건물의 맨 위층은 가운데에 옥탑방이 있고 양 옆으로 커다란 옥상 발코니가 있다.
그 옆 세 번째 건물도 있는데 흰색에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장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일단 전시된 고대 유물 때문에 음침하고 스산했다. 그러나 좀 더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가니 햇살이 환하고도 깊게 들어와서 따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건물 곳곳의 방에는 사람이 살았다는 표시라도 내듯 방마다 폭이 얕은 붙박이장이 있었고, 깊이가 있는 벽장이 있었다. 괜히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열어보고 싶진 않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듯 빼꼼히 열려있어 괜히 들여다보았다. 장마다 손잡이와 경첩은 그 시간들을 살아온 이야기들을 속삭이듯 청푸른색으로 포슬포슬 녹이 슬어 있었다. 귀신이 나온다면 이 벽장에서 나올 것 같았다.
이 마지막 건물 가운데에는 '후이 본 화'의 또 다른 건물 '마제스틱 호텔'과 같이 나선형의 계단이 있는데 그 분위기가 마제스틱 호텔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굉장히 느낌이 어둡고, 그 계단을 따라가면 왠지 이 댁의 막내 따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대한민국 40대 아줌마의 자존심을 걸고 '나는 하나도 안 무섭다... 안 무섭다...' 이렇게 최면을 걸면서 올라가 보았는데 뭐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리곤 누가 잡는 것도 아닌데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둘러 내려왔다.
이쯤 해서 팩트를 알려주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사료들과 기사들을 찾아보니 실제로 호아 씨의 막내딸은 나병으로 사망을 했고 그는 신문에 부고 기사를 냈다. 그리고는 '누가 그 집에서 귀신을 봤다... 카더라' 하는 소문이 퍼졌고 재벌 가문이 연루된 이 '카더라'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1973년 '르 호앙 호아' 감독이 사이공의 차이나타운인 쩌런에서 오랫동안 회자 되던 이 이야기로 '호아가문의 유령'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아직 전쟁 중이던 사이공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푸른 하늘 아래, 무성한 푸른 나뭇잎에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대저택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더라... 사이공 시대의 화려함과, 낭만을 껴안은듯 말이다. 당신이 호치민에 온다면 이 아름다움을 마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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