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추억 쌓기
"아버지! 저랑 같이 여행 가실래요?"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던 서른한 살의 어느 날. 문득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어 졌습니다.
어느 숙소를 가는 것이 좋을까, 어느 식당을 가는 것이 좋을까, 어디를 놀러 가는 것이 좋을까.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여행을 단 둘이 떠난 적이 거의 없긴 한데. 아버지께서 괜찮으시면 부자(父子)끼리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게 된 아버지와의 여행.
어렸을 적, 저희 아버지는 가족들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합니다. 그 희미한 기억을 지탱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여행을 자주 떠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여행은 그때의 오감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합니다. 그때의 날씨, 풍경, 내음, 소리, 그리고 추억 등. 저의 어릴 적 기억은 여행이라는 행복한 기억이 가득 차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 가족끼리 떠나는 여행은 그 빈도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가족보단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 혹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욱 편했습니다. 가족은 여행이 아니더라도 항상 곁에 있으니, 함께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은 그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죠. 그러던 문득,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사실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 전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난 경험은 있습니다. 열네 살 때 아버지와 둘이서 중국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 패키지여행을 떠났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중국어에 푹 빠지기 시작했던 그때, 아버지께 중국 여행을 가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 얻게 된 기회였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났던 적은 있었으니, 바로 대만여행.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제안하신 여행이었습니다.
"아들! 너는 중국어를 잘하니 통역을 해주면 되겠다!"
통역은 저의 몫이었고, 여행 계획은 거의 아버지께서 짜셨습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갔던 여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야시장을 둘러보고, 망고 빙수도 먹으며, 골목골목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늦은 밤, 아버지와 함께 대만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제주도 여행은 기존에 떠났던 두 여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를 타고 갔던 식당. 풍경 좋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그 시간. 바닷가 앞에서 찍었던 사진. 저녁으로 먹었던 흑돼지와 한라산 소주. 숙소로 가는 길에 솔솔 불어왔던 밤바람. 이 모든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저에겐 소중했고, 무엇보다 즐거웠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버지와 여행에서 제가 좋았던 것은, 아버지 얼굴에서 보이는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가족과의 여행은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어디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아버지와 아들, 부자(父子)가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이렇습니다.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서로 떠나고 싶지만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여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정말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아버지와 다시 한번 단 둘이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릴 적 저에게 주셨던 그 행복함을, 제가 다시 한번 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