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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타 Oct 27. 2024

사랑의 민낯을 보여주는 영화 세 편

사랑의 그림자 아래 서 있는 영화들

우리가 흔히 아는 '사랑'은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떨림과 희망, 약속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독한 권태와 상실의 절망 역시 가지고 있다. 필자는 애정과 열정의 불길이 선연하게 타오른 뒤 잿더미처럼 남는 후자의 것들 역시,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다소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모든 것들을 몽땅 겪어내는 그 시간마저도 사랑의 셈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랑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오늘 소개할 영화들은 사랑의 그러한 민낯을 응시하는 영화들이다. 달콤한 낭만이나 동화같은 이야기로 사랑의 빛을 예찬하기보단, 사랑의 그림자 아래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영화들이다. 


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이누도 잇신 / 로맨스, 드라마 / 1시간 56분

철부지 대학생과 걷지 못하는 여자의 사랑.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주인공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의 사랑은 결국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물고기. 우연과 필연. 만남과 이별. 


이 영화에서 츠네오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분)의 사랑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우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모든 사랑의 시작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연이 선사하는 선물에 경탄해 마지않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는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이 우연이라면, 헤어짐은 필연이다. 우연은 우리의 삶에 예상치 못한 것들을 가져오지만, 우리는 곧 예상가능한 현실과 미래의 조건들 때문에 그것들을 등지게 된다. 우리가 떠안았던 운명이 불가피한 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하지 않고, 사랑의 낭만과 이별의 고통을 소리높여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사랑에서의 우연과 필연의 관계성과 그 작용을 그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두 주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는 덤. 이별은 잔인하거나 비겁한 일이 아니다. 이별은 만남보다 더 당연한 결과이며, 선택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명이다. 


2. 투 러버스

2008, 제임스 그레이 / 로맨스, 드라마 / 1시간 50분

실연의 충격과 고통으로 자살 시도까지 감행한 남자. 만성적인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앓고 있는 남자. 그 남자의 앞에, 두 여자가 나타난다. 자신을 한없이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다정한 여자와, 첫눈에 반해버린 눈부신 미모의 여자.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남녀가 서로에게 동시에 반하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랑은 일반적으로 일방적인 관심과 구애에서 시작되니까. 또한, 연인이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크기 역시 각자 다르다. 한쪽이 더 사랑하면, 한쪽은 덜 사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심 자신이 반한 대상이 따로 있으면서도 고독감에, 혹은 고마움 때문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대상을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줄 수 있는 사랑과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타산적인 태도로 사랑에 임하는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여러 불편한 진실들을 이면에 품고 있다.


<투 러버스>는 사랑의 이러한 틈새를 파고든다. 하지만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아주 차분하고 고요하게, 예민하고 기민한 연출로 사랑의 민낯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국내 관객들에겐 <조커>에서의 과잉의 연기로 유명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이 영화에선 아주 절제되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인다. 주인공은 결국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를 보고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3. 블루 발렌타인

2010, 데릭 시엔프랜스 / 로맨스, 드라마 / 1시간 54분

<블루 발렌타인>은 여느 사랑영화들과는 다르게, 사랑이 차디차게 식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영화가 시작하면, 부부 사이에는 이미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보려 하지만, 사랑의 종말을 향해 발을 내딛을 뿐이다. 


사랑에 빛과 그림자가 있다면, <블루 발렌타인>은 명백히 그림자에 서 있다. 이 영화가 비참해지는 것은 그저 서 있기만 할 뿐 아니라 빛이 있는 곳을 계속 뒤돌아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랑의 낭만이 찬란했던 그때로 자꾸만 되돌아간다. 단순한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갈 뿐인데도 영화는 보는 이를 고통에 질식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민낯은 결국, 권태다. 우리는 불타는 사랑 뒤의 권태가 필연적인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늘 사랑의 폐쇄적인 사이클에 발을 들이고 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그토록 낭만적인 둘만의 노래가 초라한 싸구려 모텔 방에서 멋없게 흘러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맹세가 한낱 추억거리로 전락되리라고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블루 발렌타인>은 형식적인 기교 대신, 흡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실감으로 권태를 묘사한다. 지속적인 핸드헬드와 강박적으로 인물에 밀착된 카메라, 종종 엇나가는 초점. 찰싹 달라붙은 카메라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라이언 고슬링과 미쉘 윌리엄스의 묵직한 연기는 카메라를 넘어 보는 이까지 그 아픔에 동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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