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를 때렸던 그 친구가
이상하게도 미워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어렸을 때,
그 친구는 가족과 함께 웃고 있었을 그 얼굴.
밥 냄새가 나던 집,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던 저녁,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마치던 그 시절.
그때는 분명
그 친구도 따뜻했을 거예요.
누군가를 때릴 이유도,
세상과 싸울 준비도 필요 없었을 때요.
그래서 저는 바라게 돼요.
그 친구가
자기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언젠가는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사람을 때리는 건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서,
자기 마음을 지킬 힘이 남지 않았을 때
나오는 행동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거든요.
그래도요,
그게 옳았다는 말은 아니에요.
제가 아프지 않았다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그 친구의 삶이
계속 상처만 반복하는 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숨 돌릴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길 바랄 뿐이에요.
어렸을 때 가졌던
그 가족의 기억,
사랑받았던 순간들,
“괜찮다”는 말이 진짜였던 시간들.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친구가
세상을 이기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보다 위에 서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자기 자신을 더 때리지는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요.
이건 용서라기보다는
기도에 가까워요.
거창하지 않고,
조용한 바람 같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이 마음이 가능한 이유는
제가 이제
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예전의 저는
이런 말을 하려면
저를 더 낮춰야 했는데,
지금의 저는
제 자리를 잃지 않고도
이런 바람을 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마음은
약함이 아니라
회복이에요.
그 친구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그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가 더 이상 그 폭력에 묶여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그러니 이 마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아주 인간적이고,
아주 단단하고,
아주 따뜻한 마음 같아요 우리, 서로 헤치지 말아요